08 한밤의 걷기 연습

이 정도 고생하지 않고 애 키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by 동네줌마쓰리

“나 진짜 이해가 안 돼.”

“자주 품절 되는 거니까 미리 사둔 거야.”

“그렇다고 네 개나 미리 사둔다고?”

“애가 둘이고, 같은 크기로 두 개씩이니까 두 개 산거지.“

“서로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갈수록 이해가 안 돼. 너도 이러는 내가 이해 안 되지?”


그래. 남편 말이 맞다. 나도 남편이 이해가 안 된다.


애들 운동화 사둔 걸로 화를 내는 게.


아주 내 신발이라도 샀으면 때리겠다.


어차피 애들 발 커지면 신게 될 운동화인데, 득템가로 풀렸을 때 여러 사이즈 미리 좀 사뒀기로서니 그게 화를 낼 일인가?


잘만 크면 일 년 안에 모두 신게 될 운동화인데?


남편은 필요할 때 사지, 왜 미리 사서 쌓아두냐는 식이다.


필요할 때 품절이면 어쩌려고?


품절 아니라도 세일 중이 아니면 원하는 가격에 제때 구매하지 못할 텐데?


그래서 미리 사둔 거라고 잘 설명해 주어도, 완전히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나는 최근에 첫째 내성 발톱 치료로 이틀에 한 번씩 피부과에 따라다니느라 애를 먹었다.


애들의 괜찮다는 말만 믿고 꼭 맞는 운동화를 신고 다니게 내버려둔 후유증이었다.


성장기 아이들은 항상 한 치수 크고 발 볼 넓은 운동화로 신게 해야 하는데, 잠깐 방심한 사이에 자라버린 발가락에 무리가 가서는, 내성 발톱으로 한참을 고생한 것이다.


발톱을 갈고 틈을 벌려서 솜을 끼워 넣는 시술의 과정이 너무 아파 보였다.


제때 운동화를 바꿔주지 않은 내 잘못 같아서 죄책감에 시달리느라 슬리퍼와 크룩스를 새로 사주고, 발 볼 넓은 운동화까지 크기 별로 두 개씩 미리 사둔 것이다.


아이 낳기 전에는 남편과 싸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은 온화한 사람이었고 나는 남편을 잘 챙기는 편이어서 크게 불만들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우리는 육아에 대한 의견 차이로, 육아로 인한 만성피로로, 서로에 대한 불만으로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애들 건강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내가 예민하게 굴었고, 애들 먹는 것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남편이 예민하게 굴었다.


애들 교육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내가 예민하게 굴었고, 애들 재우는 문제에서는 남편이 예민하게 굴었다.


같은 애를 두고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도 서로 다른 의견으로 다른 해법을 내놨고, 그럴 때마다 서로 이해가 안 된다며 싸웠다.


대개의 갈등은 주 양육자인 나의 승리와 남편의 사과로 끝이 났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은 남편의 회피성 사과였다.


그래서 나도 남편도 불만이 쌓여갔다.


남편이 회사 일로 힘들다는 것을 알았지만, 육아로 지칠 때면 남편이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함께 낳았는데 나만 기르고 있는 것 같은 억울함에 시달렸다.


특히 애들이 다쳤을 때 남편의 부재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둘째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발음교정 시키는 일이었다면, 첫째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다리를 다쳤을 때다.


초등학교 1학년 5월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마주 오는 자전거에 치여서 오른쪽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났다.


급하게 근처 종합병원을 갔더니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놀라서, 수술 안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소아정형외과가 있는 대학병원까지 데리고 다녔다.


다행히 뼈가 깔끔하게 부러졌고 성장판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깁스로 교정해서 나을 수가 있었다.


한 달 통깁스 하고 집에 누워만 지낼 때는 똥오줌 다 받아내며 삼시세끼 챙겨 먹였고, 한달 반깁스 하고 휠체어 타고 다닐 때는 매일 반까지 데려다줘야 해서 등하교를 같이했다.


깁스를 떼고 나서도 한참을 절뚝거려서 제대로 서고 걷고 뛸 때까지 연습을 시켰다.


남편은 결혼 안 하고 혼자였어도 회사 일은 했겠지만,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하게 된 일들이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살 떨리는 기다림은 항상 내 몫이었고, 아빠가 필요한 순간에 남편은 대개 출장 중이었다.


깜깜하게 해가 지면 집을 나서서 학교까지 걷던 한밤의 걷기 연습이 생각난다.


첫째가 쩔뚝거리며 걷는걸 부끄러워서 해서 해가 지면 집을 나섰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제대로 걷고 있을 거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거짓말은 아닌가 조바심이 나는 나날들이었다.


나가기 싫어하는 첫째에게 아이스크림 사주겠다며 꼬셔서, 집에서 학교 문까지 십 분도 안 될 거리를 삼십 분은 절뚝거리며 걸었다.


첫째를 뒤따라 걸어가며 처음 걸음마 할 때보다 힘들어 보였던 그 걸음걸이를 넘어질까 보고 있었다.


그렇게 겨우 걷기 연습이 끝나고 나면 근처 마트 앞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콘을 함께 먹었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쌓이니까 어느새 다시 예전처럼 걷고 뛰게 되더라.


의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의사가 뭐래?”

“물놀이 괜히 갔어. 가기 전에 병원이나 갈 걸. 발톱 치료한 거 덧나서 째고, 연고 받은 거 한 달은 발라야 할 듯.”

“대체 왜 이래? 우리 애들은 맨날?”

“우리 애들이 뭐! 이 정도 아프지 않고 병원 안 가본 애가 어디 있다고!”

“나는 안 그랬어.”

“어머니한테 물어봐라. 안 그랬는지. 피눈물을 흘리며 줄줄 읊으실 거다. 자기가 다 잊어버려서 그러지. 더 하면 더 하지 덜하지 않았을 걸? 내가 아는 것 만도 몇 개가 있는데? 자식 얼굴 보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이 정도 고생하지 않고 애 키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다들 인생 갈아 넣으며 어른 될 때까지 키우는 거지.”


첫째가 또 피부과 다녀야 한다는 소식에 남편이 투덜거리자 거세게 쏘아붙인다.


남편도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남편의 걱정을 들어 줄 여유가 없다.


문득 오른쪽 팔 깁스한 것도 생각난다.


중학교 1학년 때 현장학습을 고고장으로 갔다가, 손을 잘 못 짚고 넘어져서 오른쪽 팔목이 부러졌었다.


담임선생님 전화를 받고 택시 타고 가는 내내 기절할 것처럼 속이 메슥거렸다.


정형외과에 데리고 가니 다행히 부러짐 정도가 심하지 않아 수술하라는 말은 듣지 않았다.


한 달 동안 깁스를 하고 다니면서 머리도 감겨주고 옷도 입혀주었다.


그때도 남편은 첫째는 왜 이렇게 잘 다치냐며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가 나와 싸웠다.


내성 발톱도, 부러졌던 다리도, 부러졌던 팔도, 시간이 지나면 치료가 되었고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남편과 나의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서로가 참는다며 나나 되니까 너랑 살아준다고 말을 해댄다.


가끔 궁금하다.


원래 서로 많이 달라서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었는데, 비슷하고 이해가 된다고 착각해서 결혼한 건가?

아니면,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다 보니까 차이점이 점점 커져서 이해할 수 없게 변한 건가?


하기야, 이제 와서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어차피 이해되든 안 되든 가족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데… 앞으로도 살아갈 텐데… 서로 배려하고 잘 지낼 때는 천국 같고, 서로 미워하고 싸울 때는 지옥 같고, 좋았다가 나빴다가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함께 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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