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쌓인 놀이터
“넓은 시간 긴 시간을 인간이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인간이 약해서이기도 하고, 외부의 힘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도 인생은 되는 대로 흘러가더라고요.”
즐겨 보는 짧은 영상으로, 이동진 기자가 한 말이다.
살면서 자꾸 일이 생긴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매일 생기는 일을 처리해 가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 같기도 하다.
간간이 애들의 부상이나 집의 누수처럼 스트레스 많이 받는 사건들도 생긴다.
극복하기에 버거워 보이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대개는 해결이 되더라.
병원 다니며 치료받다 보면 나아졌고, 외벽 방수 작업을 하고 집안 도배를 새로 하면 살만해졌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사태와 2024년 계엄 사태는 내가 노력한다고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외부의 힘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휩쓸려 가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는 특별히 사는 데 조심하려고 애썼다.
외부의 영향에 피해를 적게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말이다.
2023년 정상 등교까지 2020, 2021, 2022 삼 년 간이나 코로나로 인해 학교 수업이 지장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학교를 못 가는 대신 집에서 줌이며 구글 클래스룸이며 온라인 수업을 받느라 헤맸었다.
외부 활동이 줄었는데 먹는 것은 그대로니 살들이 많이 쪘었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애들의 눈도 나빠졌다.
마스크 대란 때는 재고가 몇 개 남았는지 검색하며 돌아다녔고, 원하는 코로나백신을 맞기 위해 하루 종일 검색했었다.
아이들 얼굴에 맞는 중간 크기의 마스크가 귀해서 웃돈을 얹어 사기도 했으며,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해서 두 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렸던 것도 생각이 난다.
코로나 시대를 사느라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들 둘을 학교가 아닌 집에서 교육 시키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첫째, 초3, 초4, 초5.
둘째, 초2, 초3, 초4.
초등학교 시절의 반이 코로나 시대였다.
마스크를 끼고 사람들 많은 곳을 피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학교도 못 가고 친구들도 거의 못 만나고, 삼 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러고 나서야 2023년 수업 정상화가 되었고, 이제 좀 편해지나 싶었지만, 그런 걸 느낄 틈도 없이 첫째의 6학년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코로나는 돌봄 시간이 늘어서 몸이 힘들었다면, 사춘기는 신경전을 벌이느라 정신이 힘들었다.
2024년에 계엄이 선포되었다가 계엄이 해제된 사건도 충격적이었다.
우리 집은 애들 때문에 평일에는 티브이를 안 보고 일찍 자는 편이어서, 다음 날 아침에 단톡방의 글들을 보고서야 밤새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독재 시대로 되돌아가 있을 뻔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계엄을 일으킨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새 대통령이 뽑히기까지 육 개월의 시간이 걸렸는데, 뉴스에 중독됐구나 싶을 만큼 챙겨봤고, 연예인 이름보다 국회에서 활약하는 여러 국회의원의 이름을 외우게 되었다.
선거는 꼬박꼬박 해왔지만, 정치는 주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계엄으로 달라진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아이들을 챙겨 먹여야 했고 공부를 시켜야만 했기에 넋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사는 건 한 순간도 호락호락하거나 쉬웠던 적이 없었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하루하루 무사히 넘기기도 버거웠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의 연속이었고, 일이 끝없이 생겨서 처리하면서 살아가는 것밖에 별 수가 없었다.
계속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는 문제를 떠안은 채로 살아가야만 했다.
거기에 코로나나 계엄 같은 것까지 끼어들면 진짜 “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눈을 감으면 어둠이 내린 놀이터에서 초등학교 2학년 3학년이었던 나의 아들 둘이 소복소복 내리는 눈을 맞으며 좋아라 놀던 장면이 떠오른다.
코로나가 시작된 첫해였고 함박눈이 펑펑 내려 발목이 잠기도록 쌓이고 있었다.
깜깜할 시간이었지만 주황색 가로등에 비친 낡은 놀이터는 하얀 눈에 뒤덮여 스키장처럼 밝았다.
그 놀이터에 우리 셋만 함께 있었다.
평소에는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진 놀이기구들과 움푹 팬 바닥들로 지저분했던 놀이터가 그날만큼은 온통 새하얗게 빛이 나서 눈의 왕국처럼 환상적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분리수거함에서 가져온 납작하게 펼쳐진 종이상자를 미끄럼틀로 끌고 올라가 썰매 마냥 타고 쌩하니 내려왔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알아서들 잘 찾아서 논다.
계속 내리는 눈에 녀석들 겨울 잠바 위에도 눈이 쌓이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면 싹 벗겨서 뜨거운 물에 씻기고 입었던 옷은 죄다 빨아서 널 것이다.
건물 안의 따듯한 공기를 만나면 눈이 녹아내리면서 잠바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리라.
스키장이나 눈썰매장도 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가지 못하는 처지인지라,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기분이 좋았다.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코로나 상황도 가볍게 느껴졌다.
코로나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안전지대에 있는 것만 같았다.
애들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날의 눈 쌓인 놀이터는 사진으로 남아있다.
혼자였다면 코로나든 계엄이든 그 불안했던 시간을 오롯이 감당하지 못했으리라.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 애들 덕분에 시간 하나는 빨리 지나갔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계절이 바뀌어 있었고 한 해가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