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쁜 엄마

업그레이드

by 동네줌마쓰리

“야! 조용히 좀 하라고.”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엄마! 쟤 좀 조용히 시켜줘.”

“싫은데. 싫은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게! 진짜!

“엄마! 형아가 내 머리에 지우개를 던졌어. 어디를 맞췄는지 알아? 정확히 여기를 맞췄다고.”

“너 지금 폭력을 사용한 거야?”

“이게 무슨 폭력이야? 나도 지우개가 거기 맞을 줄 몰랐다고.”


둘째가 뒤통수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여주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고는 맞출 수 없어 보이는 부분에 지우개를 던진 첫째는 열렬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오늘도 우리 집은 중1 중2 아들 둘로 인해 시끄럽다.


“말로 해. 말로.”

“말을 해서 안 들으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지우개를 던져!”

“엄마도 예전에는 말 안 듣는다고 막 때렸잖아.” 첫째가 갑자기 나를 기습한다.

“하기야. 그때 많이 맞았지. 나는 엄마가 안 때린다 그랬어도, 그날부터 진짜 안 때릴 줄은 몰랐다니까.” 둘째가 갑자기 형에게 연합한다.


그래. 상황이 이렇게 흘러야 우리 집이지.


하지만 화를 낼 수가 없다.


다 과거의 사실을 바탕으로 맞는 말들을 하는데 화를 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화는 난다.


그러니 마음이 힘들다.


화는 내선 안 되는데 화는 나니까.


그 힘든 마음을 아이들에게 풀지 않고 삼키기 위해서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나날들과 가장 잘했던 일 한 가지를 떠올려 본다.


폭력의 시작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글을 떼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서 비롯되었고, 폭력의 끝은 코로나 시절 가정 보육을 하면서 이런 식으로 때리다가는 아이들을 잡겠구나 싶은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6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한글을 읽고 쓰게 만들겠다는 엄마의 목표를 위해, 공부라고는 처음 해보는 아이들의 저항을, 일방적인 무력으로 진압하고 달성했던 과정이었다.


살살 달래가며 가르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를 구워삶을 재주도 없고, 인내로 기다릴 성품도 부족하여, 힘으로 내리 눌렀던 것 같다.


한번 매질을 시작하자 아이의 맷집도 세져 갔고, 말을 듣게 만들기 위한 폭력의 강도도 점점 세져 가서, 등에 손자국이 날 정도로 때린 적도 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른이 될 때까지 의지할 수밖에 없는 부모에게, 아무리 저를 위한 일이라도, 저항할 수 없이 당하는 매질은 상처로 남았으리라.


지금은 사춘기가 됐고, 힘으로 억누르려고 해봤자 더 이상 먹히지도 않을 나이라서, 협상하고 있다.


억지로 내 뜻을 이루려던 바보짓은 과거로 충분하기에, 요즘은 내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다 싶으면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려고 애쓴다.


점점 심해지던 폭력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 팬데믹 덕분이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가고 학교 못 가는 시기가 길어지면서, 애들과 24시간 붙어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지옥같이 느껴졌다.


떠드는 거, 말 안 듣는 거, 먹이는 거, 흘리는 거, 모든 게 스트레스로 여겨졌고 집이 감옥 같았다.


예전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예전처럼 때리니 그 빈도와 강도가 점점 심해졌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고, 학교를 못 가는 시간이 다시금 연장되자, 갑자기 덜컥 겁이 나더라.


이렇게 때려서는 애들도 나도 언젠가는 죽겠구나 싶은 위기감이 들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을 버티고 집에서 계속 함께 있으려면 이런 식의 폭력은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 깨달음을 느낀 바로 그날부터 폭력을 끊었다.


자로 때리든 손바닥으로 때리든 때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아이들도 그런 날이 지속되자 엄마가 더 이상 때리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폭력을 끊으면서 함께 지내는 시간도 견딜만해졌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아이들 말 듣게 하는 법이 많더라.


대화가 가능한 나이라 용돈, 먹을 것, 좋아하는 걸 사용 할 수도 있었다.


그때 정신 차리고 폭력을 끊지 않고서 지금까지 계속되었다면 중학생이 된 지금쯤은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코로나 시절이 학교도 못 가고 집 밖을 나가기도 조심스러운 힘든 시간이었지만, 폭력을 끊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와 아이들에게는 전화위복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난 어떨 때는 엄마가 차라리 때리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해. 때리지 않고 말로 하니까 안 끝나. 혼나는 시간이 너무 길어.”

“나도. 어떨 때는 차라리 한 대 맞고 끝났으면 좋겠어.”


네버, 절대, 결단코, 엄마는 아니다.


나는 너희를 때리지 않게 된 지금의 내가 더 마음에 든다.


그날 이후로 너희가 나를 덜 무서워하게 된 것도, 더 편하게 여기는 것도 좋다.


자식을 키우면서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을 생각하다 보면 엄마이기를 포기하고 숨어 살아야 할 지경이지만, 앞으로도 너희가 어른이 될 때까지 해줘야 할 일들이 많다 보니 평생을 살면서 갚기로 한다.


그래도 다행히 애들이 큰 말썽 없이 무난하게 자라준 것을 보면, 첫째와 둘째의 성품이 나 보다 업그레이드돼서 나온 게 분명하다.

월요일 연재
이전 12화09 눈 쌓인 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