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일 년에 세 번

장래 희망은 게임 폐인

by 동네줌마쓰리

“왜 저렇게 기분이 좋지? 아. 내일이 그날이구나.”


첫째가 어린이날 전날부터 노트북과 갤럭시 패드를 충전해 댄다.


일 년에 딱 세 번.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


하루 종일 마음대로 게임 할 수 있는 날을 준비하는 것이다.


중학교 남학생들이 가장 돈 많이 쓰는 곳이 피시방이라지만 우리 집 아들 둘은 못 가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시작한 고도 근시 억제 치료 때문이다.


한때는 그들도 눈이 빠져라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절을 지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급격히 나빠진 시력들로 인해서, 고정 시력이 되는 스무 살까지 참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하더라도 피시방은 생각조차 못 하고 집에서 게임을 하던 시절이니, 중학생이 돼서도 자연스럽게 피시방은 발도 들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고도 근시 억제 치료 방법 중에서 렌즈는 관리가 안 될 것 같아서 안약 치료로 받고 있는데 매일 잠들기 전에 눈에 안약을 넣는다.


가끔 너무나 게임이 하고 싶어서 참을 수 없을 때면 자기들은 평생 안경만 끼고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커서 라식수술이라도 받으려면 최소한의 시력은 유지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첫째의 진로 희망은 우리나라 최고의 게임 회사에 취직하는 것.


장래 희망은 게임 폐인.


마인크래프트를 하고 싶어서 벽돌 그림을 도화지에 그려대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관된 삶의 목표이다.


처음 희망 직업 게이머를 시작으로, 다음에는 게임 유튜버, 그 다음에는 게임 프로그래머.


진로진학상담 받으면서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는 공대에 진학해서 컴퓨터학과나 인공지능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싶어하게 되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게이머는 고도근시 치료를 시작하며 게임을 오래 못 하게 되어서 포기.


게임 유튜버는 공유학교에서 운영하는 유튜버 크리에이터 과정을 듣고 발표하면서 적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포기.


게임 프로그래머가 돼서 게임 회사에 취직하겠다는 목표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서 현재진행형이다.


자기가 무슨 육지 구경을 기다리는 인어공주도 아니고, 고정 시력이 되는 그날만을 꿈꾸며 게임 폐인처럼 살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기도 안 차지만, 첫째의 게임 사랑하는 마음만은 인정하게 되었다.


둘째의 진로 희망은 오리무중.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잘하는지 모르겠기에 못 정하겠단다.


중학교 들어가니 진로 적성을 찾기 위한 수업이 많아져서 자기한테 자꾸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는 통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둘째도 꿈이 있기는 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우주비행사,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무술 고수, 제과제빵사,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헤매는 중이다.


우주비행사는 자격요건이 까다롭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


무술 고수는 태권도 2단까지만 따고 힘들어서 포기, 제과제빵사는 형이 자기보다 손재주 더 좋은 것을 보더니 포기.


마인크래프트 때문에 벽돌공이 되고 싶어 하다가, 자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택배기사님도 고려해 본다.


“나 숙제 다 했으니까.” 첫째가 스리슬쩍 갤럭시 패드를 들고 티브이 앞으로 향한다.

“누가 보래.”

대꾸도 없이 전원을 켜고 갤럭시 패드를 조작해 유튜브에서 찾은 동영상을 티브이로 볼 준비를 한다.

“동생아! 얼른 와. 형이 허락받았다.” 둘째가 잽싸게 합류한다.

“헐? 자체 허락?”

나란히 앉아서 게임 동영상을 보는 형제의 표정이 밝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게임을 하지 못하는 대신에 오만 유명 게임 유튜버의 영상들을 섭렵하고 있다.


요즘은 관심을 넓혀서 웹툰과 웹소설로 만들어진 만화책과 소설책도 학교 도서관에서 곧잘 빌려온다.


둘이 서로 너는 몇 권 빌려와라 나는 몇 권 빌려올 테니 그러고 있다.


이러다가 웹툰 웹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문예창작과나 국문학과에 지원하라고 해야겠다.


무엇을 하든 대학교는 가줬으면 좋겠다.


중학교 1학년, 생일 전이니 12살, 둘째한테 진로를 정하라고 요구하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안다.


부모로서 조급하게 굴지 말고 뭘 하겠다고 하든 응원해 주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안다.


다 아는데도, 첫째와 비교해서 늦어 보이는 둘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엄마 아빠가 어떤 장래 희망을 품고 있었고, 어떻게 학과와 대학을 정했고, 그 이후 선택했던 여러 가지직업들과 삶의 여정에 관해서 말해준다.


딴짓 안 하고 가만있는 것을 보면 제대로 듣고 있는 것 같다.


엄마처럼 목표한 대로 살아와도 후회가 많고, 아빠처럼 그때그때 주어진 기회마다 충실히 사는 것도 장점이 많으니, 인생 살다 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 만족할 수 있는 네 길은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고 말해준다.


이 모든 것이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자식이 부모보다 더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해주는 말이니 참고해서 애들이 정말 인생 한번 잘살아 봤으면 좋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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