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을 빌려오는 형
“내가 오늘 뭘 가져왔는지 아니?”
“헐. 또 빌려왔구만.”
“만화책이겠지.”
“그래야 니 형이지. 아님 외계인이지. 니가 피리부는 사나이야? 동생을 꼬드기게!”
“그래서 뭐! 내가 뭘 잘못했어?”
잘못했지. 그것도 크게.
오늘도 어김없이 둘째는 형이 빌려온 만화책을 보느라 숙제할 시간이 부족해서 피아노를 펑크 낼 것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원 숙제의 양도 많아지고 내용도 어려워져서 시간이 점점 부족해졌다.
중학생이 되니 수업 시간도 늘어나서 학교 끝나는 시간이 늦어졌고,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 틈새 시간에 가야만 하는 피아노는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숙제는? 너 오늘 피아노 갈 수 있어?”
“아니. 아직 많이 남았어. 피아노 못 간다고 말해줘.”
“그래서 엄마가 숙제 먼저 하고 놀라고 했지!”
“왜 나한테 뭐라고 해? 가져온 건 저기 엄마 근처에 있는 저분인데!”
뻔뻔하게 말대꾸하는 둘째를 째려보며 오늘도 나는 피아노 선생님에게 숙제를 다 못해서 피아노를 빠집니다 죄송한 문자를 보낸다.
“이럴 거면 피아노 끊으라고!”
“끊으려면 영어 수학을 끊어야지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를 왜 끊어!”
“신데렐라도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파티에 참석했다. 정신 차려라.”
“내가 여자야? 왜 자꾸 신데렐라랑 비교해?”
“요점은 신데렐라처럼 할 일을 다 하고 파티에 참석해야 왕자도 만나고 왕비도 되고 성공한다는 거 아니야! 할 일 먼저 다 하고 놀라고!”
“아휴, 엄마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 받아.”
첫째는 이러지 않았는데 만화책을 보든 딴짓하든 숙제 다 하고 해서 놔둘 수가 있었는데, 둘째는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자 적응하느라 힘들어했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없어, 과목이 너무 많아, 선생님이 다 달라, 수행평가 준비도 해야 해, 초등학교 때와는 다르다고 투덜거렸다.
형처럼 시간 관리를 잘하지 못하겠으면 해야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뒀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놀고 싶은 마음에 뒤를 생각지도 않고 형이 빌려온 만화책을 보다가, 숙제할 시간이 모자라기 일쑤였다.
봐도 봐도 끝이 없는 각종 콘텐츠가 사방에서 유혹하고 있으니 둘째 탓만도 아니긴 하다.
우리 때는 만화책과 티브이프로그램 정도였기에 하루를 다 날리기가 쉽지 않았는데, 요즘은 유튜브 영상만 봐도 하루가 모자라니 말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많은 세상에서 공부해야 했으면 나 또한 둘째처럼 힘들어했으리라.
피리 소리에 따라간 아이들이 잘못한 게 아니고 피리 부는 사나이를 배신한 부모들이 문제였고, 학교를 빠지고 친구들을 따라 놀러 간 피노키오의 잘못이 아니고 피노키오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꼬여낸 나쁜 어른들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작이 어찌 되었든 결국에 피해를 본 것은 아이들이었고 피노키오였기에, 함부로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아라, 공부보다 놀기 좋아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이야기에 담겨있으리라.
지금은 만화책을 빌려오는 형 뿐이지만 살면서 또 얼마나 많은 유혹을 받겠는가?
둘째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아이들처럼, 놀다가 팔려 간 피노키오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욕구를 잘 조절해서, 안전한 길로, 바른길로, 축복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언제나 지혜롭게 처신해서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책임의 무게에 허덕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