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간의 우애에 숨겨진 경쟁

by 이경보

“엄마, 동생 나왔어?”

출산 예정일이 두 달 남짓 남았을 때부터, 큰아들이 저녁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묻던 질문이었다. 내가 “아직”이라고 대답하면, 그는 내 배에 손을 얹고 “뭐 해? 빨리 나와!”라고 외치곤 했다. 그만큼 동생이 태어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두 아이는 동성이라 어릴 때부터 함께 잘 놀았다. 형은 동생을 아끼며 늘 잘 챙겼고, 동생은 그런 형을 잘 따랐다.

하루는 작은아들을 유치원에 데리러 갔을 때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얘는 형이 우상인가 봐요. 하루 종일 형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아요. 애들하고 놀 때도 ‘우리 형이...’, ‘우리 형이 말하기를...’ 하면서요.”

늘 형과 놀면서 형에게 배운 것들을 반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작은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자연 과목 시험에서 80점인가 75점을 받아 왔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을 먹는 자리에서 형이 동생에게 호되게 꾸짖기 시작했다.

“시험이 장난이냐? 시험 볼 땐 집중해서 진지하게 풀어야지!”

평소 형에게 대들기 일쑤였던 동생이 그날 아침엔 울면서 형의 꾸지람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동생이 영어 학원 시험을 앞둔 날이면 형은 직접 영어 문제지를 만들어 동생을 연습시키곤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물론 두 아들은 싸울 때도 많았다. 다른 집과 다를 바 없이, 사이좋게 놀다가 싸움으로 번지면 결국 엄마나 아빠가 말려야 끝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날도 둘이 놀다가 금세 싸움으로 번졌고, 나는 간신히 둘을 떼어 놓고 작은아들을 욕실로 데려갔다. 땀으로 범벅이 된 아이를 씻기려 하면서, 기진맥진한 나는 작은아들에게 무심코 말했다.


“엄마 요즘 흰머리가 많이 생겼네, 이것 봐.”
'엄마 힘들게 해서 미안해.'라는 말을 기대하며 꺼낸 말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나를 빤히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 다 그런 거지, 흰머리 나면 어때? 신경 쓰지 마!”
5살짜리 아들에게서 인생철학을 배우는 순간이었다.




우애 좋았던 두 아이 사이에도 변화가 찾아온 것은 형이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부터였다. 어느 날, 형이 팔꿈치로 동생의 등을 박는 장면을 목격했다. 순간 섬찟 놀랐다. '어머, 중1은 정말 무섭구나!' 싶었지만, 나는 그냥 보고도 모른 척했다. 그 상황은 형이 공부 중인데 동생이 노크하지 않고 갑자기 들어와 수다를 떨려고 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내 방 들어올 땐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형의 성난 목소리가 방 밖까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아들이 흐느끼며 내게 와 호소했다.
“엄마, 형이 사람이 변했어. 날 때렸어.”
동생은 맞은 곳이 아픈 것보다, 형에게 맞았다는 사실에 더 서글퍼하는 것 같았다.

“그래, 형 변했어. 중1이 되면 변하는 거야. 너도 중1이 되면 변할 거구. 그러니까 형 방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말고, 노크한 후에 기다렸다가 형이 들어오라고 하면 그때 들어가. 그리고 형이랑 얘기할 때 예의 지키고. 엄마도 이제 형이 무서워졌으니까, 너도 스스로 조심해.”

형의 사춘기라는 홍역은 1년 반 정도 지나서야 서서히 가라앉았다. 중학교 2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형이 어느 날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아이는 사춘기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사실 유치원 때부터 사춘기였던 것처럼 보였으니까.




동생에게 형은 절대적이면서도 경쟁의 대상인 듯하다.
"엄마, 내가 대단해? 형이 대단해?"
동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중학교까지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질문이 올 때마다 내 머리는 시동이 늦게 걸리고, 동생은 기다리다 못해 스스로 답을 내린다.


"어, 타임 오버! 형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니야, 너희 둘 다 대단한데, 그 대단함이 달라. 그래서 단순 비교가 참 어렵구나."

여기서 대화가 끝나면 좋겠지만, 동생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어떻게 다른데?"
"형은 집중력이 좋은 반면에, 너는 머리 회전이 빨라. 형은 말을 잘하는데, 너는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형은 사교성이 있지만, 너는 관찰력이 뛰어나."


내 머리를 풀가동하며 하나하나 설명하는 동안, 동생은 내가 말하는 항목들이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검토하고 있다. 납득이 가면 씩 웃으며 수긍하는 것이다.

동생은 태어나 보니 이미 형이라는 존재가 있었고, 형을 보며 성장했다. 자연스럽게 형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경쟁의식을 느낀다.




성장 과정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존재의 가치는 시간이 흐르며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언젠가 먼 훗날 두 아이가 "엄마, 우리는 형제가 있어서 참 좋다."라는 말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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