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주식, 그 커피 한 잔
이십 대 초반, 나는 대기업에 다녔다.
정장 입고 땀 흘리며 지각하고,
점심시간엔 김치찌개에 줄 섰던 시절.
그 회사는 사내 복지로 자사주를 쐈다.
“이거 사두면 언젠가 쓸모 있을 거야.”
팀장이 그랬다.
나는 돈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아뇨, 전 그냥 사내카페에서 커피 한 잔 더 마실게요.”
팀장은 내 몫까지 사서 나중에 팔았다.
그래서 아파트 샀다는 소문도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셨고,
그는 배당을 마셨다.
그땐 몰랐다.
커피는 소화되지만, 기회는 안 돌아온다는 걸.
2. 대박은 항상 남의 것
세월이 흘렀다.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조금은 여유가 생긴 마흔 즈음.
주식을 다시 떠올렸다.
기아차, 대한항공—
들으면 괜히 뿌듯한 이름들.
내가 샀고,
얼마 안 있어 올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떨어졌다.
“아, 이거 아니구나.”
그때 나는 철이 들었다.
정확히는 철을 꺾고 팔았다.
당연히…
그다음부터 폭등했다.
기아차는 기세 좋게 질주했고,
항공사는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나는 땅을 팠다.
3. 전화의 유혹과 통장의 눈물
“고객님, 주식 좀 하세요?”
어느 날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익숙한 멘트.
수익 보장, 전문가 관리, 손실 없음.
“어머, 로또도 이렇게 친절하진 않겠네?”
처음엔 웃고 넘겼다.
그런데 그 전화가 하루에 두 번,
일주일에 열 번씩 왔다.
달력 한 장 넘길 즈음, 나도 모르게 말했다.
“...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죠?”
가입비는 몇백.
‘조금 손해 봐도 경험이라 생각하자’
그랬다.
처음엔 기분이 좋았다.
전문가가 시키는 대로 하니까
딱 하루 오르고, 딱 하루 내렸다.
그리고,
그 전문가가 퇴사했다.
“갑작스럽게 가족 일이 생겨서요...”
... 내 가족은 괜찮은데?
4. 애널리스트는 사랑을 남기고
그 후엔 다양한 전문가들이 들락거렸다.
이름도 특이했다.
‘하늘천사 82’, ‘황금손베어’, ‘매수는 예술’
그중에 한 명.
‘진짜 전문가’라고 소개된 사람.
말투도 믿음직했다.
“누님, 이건 진짜죠. 저만 믿으세요.”
... 그 말, 전에도 들어봤던 거 같은데?
나중엔 아예 월 10만 원 주고
개인적으로 같이 하자며 접근했다.
사람 냄새나는 게 나쁘지 않아서
그 애널리스트랑 1년 정도 연락을 이어갔다.
결혼할 땐 축의금도 줬다.
애 낳았을 땐 돌잔치 축하 메시지도.
그리고 어느 날,
그도 퇴사했다.
사람도, 수익도, 퇴사했다.
5. 드디어 깨달은 인생의 진리
이쯤 되니, 나도 공부를 시작했다.
‘재무제표가 뭘까?’
‘PER은 또 뭔데 이렇게 높아?’
아들이 주식책을 줬다.
“이거 보면, 이해 좀 될 거예요.”
“그래서 넌 벌었냐?”
그 한마디에 아들이 책을 다시 가져갔다.
그날, 거울을 봤다.
투자의 실패는 얼굴에 선명하게 남는다.
그리고 그제야 느꼈다.
주식은 돈보다도,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욕심 없이,
급등주 안 쫓고,
이자보다 조금 더 받으면 만족하자.
그래서 결심했다.
이젠 한 종목만 사랑하자.
6. 나의 마지막 종목, 그리고 꿈
그 종목은… 대한민국 망하지 않는 한 안 망할 기업.
(이름은 비공개. 아들에게도 안 알려준다.)
배당은 매년 꼬박꼬박.
주가는… 뭐, 가끔 내 기분 따라 오르내린다.
목표 수량을 정해두고,
내가 정한 가격에 조금씩 담는다.
하락장? “어서 와, 기다렸어~”
상승장? “가라, 내 몫 아니니라.”
그리고 꿈꾼다.
배당받은 그날, 친구들에게 소고기 사주는 날.
“야, 이거 배당으로 산 거야.”
그러면 친구들이 말하겠지.
“헐, 너 주식으로 성공했네?”
그러면 나는 한 마디.
“아냐, 난 실패 끝에 살아남은 거야.”
– 생존자만이 전할 수 있는 조언
이 글을 읽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거다.
“절대, 나처럼은 하지 마.”
그 말은,
한편으로는
“하지만, 나 아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