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V 체면

나의 주식 이야기 -3

by 바람처럼

이건 싸움이다.

돈이 먼저 무너지느냐, 내가 먼저 무너지느냐.


인생은 체면이고,

주식은 그 체면을 조용히 무너뜨리는 기술이다.


자, 얘기해 보자.

나는 ‘투자자’다.

그런데 왜 카카오뱅크 잔고는 깡통이고,

휴대폰에는 ‘평단가’가 죄처럼 찍혀 있을까.


1. 나는 분석하는 투자자였다


처음엔 그랬다.

재무제표를 읽었다.

PBR, PER, ROE, EPS… 줄줄 외웠다.

분기보고서 나오면 나보다 빨리 보는 사람 없었다.


그러다 애널리스트 보고서 한 줄에 무너졌다.


“목표가 상향, 투자의견 ‘매수’ 유지.”


그날부터 책을 덮었다.

아무리 공부해도, 결국 결정은 걔네가 하는구나 싶어서.


그 후부턴

“얘들이 뭐 사래?”

“얘들이 뭐 팔래?”

그것만 본다.


책상 위에는 워런 버핏 책,

핸드폰에는 종목토론방.

투자자 코스프레는 철저하다.


그래야 체면이 선다.


2. 나는 감정을 배제한 투자자였다


뉴스 보며 감정이 안 흔들려야 한다고 했다.

주가는 심리 싸움이니까.


근데 계좌 잔고에 파란 불 들어오면,

심장은 남의 것이 된다.

— 내 것이 아니야.

가끔 내 몸인데, 내가 날 못 말린다.


“더 떨어질 수도 있지 뭐. 어때.”

하면서도 손은 자동으로 ‘매도’ 버튼에…


이쯤 되면 감정이 아니라 온몸이 흔들린다.


그리고 팔고 나면? 오른다.

주식과 나는… 인연이 아니었던 걸로.


3. 나는 장기투자자다 (… 이긴 한데)


“저는 단타는 안 해요.”


어디서든 당당히 말했다.

근데 장이 열리면 손이 먼저 튄다.


‘단타는 안 해’

→ ‘오늘만 좀 보고 팔지 뭐’

→ ‘이 정도면 단타는 아니지 않나?’

→ ‘근데 왜 내가 저점이야?’


그래서 안 팔았다.

그랬더니 주식이

단타가 아닌 이유를 내게 가르쳐줬다.


세 달 뒤,

“이건 장기 투자용이었지.”

혼잣말을 입 밖에 꺼내며

계좌를 보지 않는다.


체면은 유지했다.

잃었지만 나의 철학은 지켰다.

…그래서 더 슬펐다.


4. 그래도 나만의 방식이 있다


솔직히 인정하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주식쟁이가 있다.


잃은 사람


아직 잃지 않은 사람


나는 잃고도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다.


이젠 하루도 안 오른 날 없던 종목이

오르면 의심부터 하고,

떨어지면 체념부터 한다.


누가 보면 인생의 내공이다.

근데 진짜로 내공은 쌓였다.


내 평정심 그래프는 코스피보다 잔잔하다.


5. 나의 체면, 나의 투자


요즘 난 누구에게도 주식 얘길 먼저 꺼내지 않는다.

누가 물으면,


“뭐 그냥, 배당 좀 받아. 친구 밥 사줄 정도?”


정말이기도 하고,

더 말하면 체면이 무너지기도 해서다.


그래도 지금,

조금씩,

정말로 내 주식을 찾은 것 같다.


그 종목은 내 속도에 맞고,

내 삶에 맞는다.

매일 오르지 않아도 좋다.


대신,

내가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6. 끝으로 한마디


투자란 이름으로 체면을 지키지 말자.

그건 돈도, 체면도, 기분도 다 잃는 길이다.


그냥 나답게,

내 방식대로,

조용히,

천천히 가는 거다.


아직 밥 사줄 만큼은 안 됐지만,

조만간 될 것 같다.


그때는, 밥 한번 살게 와.

내가 번 걸로. ^^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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