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나는 공무원이다.
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공부했었는데 3학년 겨울에 실습을 가고 단번에 깨달았다.
나는 병원에서 일할 그릇이 아니라는 걸
다른 실습생들은 혈액 분석기계에도 관심 있고 조직도 잘 만지고 현미경을 보며 호기심에 찬 얼굴이었지만 난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종종 실험실에서 실험은 했지만 실전은 내 예상과 너무 다른 모습에 충격이 컸다.
첫 주에는 조직검사실을 돌았는데 수술 중 절단한 유방 조직을 보게 되었다. 여성의 한쪽 유방이 그대로 절단돼서 복숭아처럼 봉긋한 모양이었는데 담당 선생님이 유방을 뒤집자 새까맣고 몽글몽글한 암 덩어리가 노란 지방 사이사이 끼어있던 모습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샤워를 하다 말고 가슴에 멍울진 게 없는지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물론 위, 대장 조직은 말할 것도 없다. 그냥 우리가 아는 대창 곱창과 다름이 없었고 기다란 조직을 파라핀 처리해서 절단하고 나면 사람 장기인지 짐승의 장기인지 구분이 안 가서 일주일 동안 그것만 보니 나의 인간성을 잃은 것만 같았다.
보통 임상병리사를 가장 많이 접하는 건 채혈실인데 실습생한테는 당연히 채혈의 기회가 오지 않는다. 우리 조 5명이 서로서로 연습 삼아 채혈을 했었는데 한 번은 한 실습생이 다른 실습생 팔에 실수로 공기를 삽입해 혈관이 부풀러 1초 만에 시퍼런 멍이 부채꼴 모양으로 드는 걸 보고 경악하였다.
내가 3년간 공부했고 꽤 잘해서 학교에서 딱 한 명 뽑혀 서울대병원 실습을 가는 것에 뿌듯하게 갔음에도 실습에서의 한 달 반이 내 진로를 바꾸었다.
같이 실습했던 우리 조 친구들은 다 임상병리사가 되었을까
지금도 가끔은 궁금하다.
나는 충격의 실습을 끝내고 부산으로 내려와 남은 방학 몇 주간 고민했다. 뭘 하면 좋을까
답이 없네
처음으로 떠오른 건 아빠가 말했던 보건직 공무원이었다. 병원 말고 공무원이면 낫지 않을까
그래도 결국 채혈하고 소변 검체를 보는 건데 내가 즐겁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우선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공무원이라는 세계를 처음 접했다.
처음 공무원 시험을 알아볼 땐 국가직, 지방직 나눠져 있고 전형도 많고 직급도 다양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아졌었다. 나는 오래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일주일 만에 도전하기로 맘먹었다.
난 그때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했고 보건직은 하는 일이 너무 한정적이야, 이왕이면 9급보다는 7급이 멋있으니까 하며 7급 국가직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고 아빠에게 말한 뒤 그날 바로 휴학계 6개월을 냈다.
시작은 늘 그렇듯 창대하고 설렜다.
집에서 공부가 안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던 터라 대학교 내에 있는 고시원에 들어가서 인강과 숙박을 제공받으며 생활하기로 맘먹었다.
대학교 내 고시원은 정말 특이한 구조였다.
오래 고시를 준비했던 장수생 선배가 고시를 포기하고 고시원 총무로 남아 1층에 작은 사무실에 있었는데
그분이 열람실을 돌며 매일 아침 9시, 오후 1시 그리고 오후 7시에 인원 점검을 하는 구조였다
방은 딱딱한 2층 침대와 작은 캐비닛, 변기와 세면대가 따닥 붙어있는 화장실이 다였다.
그래도 씻고 열 걸음만 걸으면 큰 열람실이 나오는 곳이라 하루 종일 공부하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 여겼다.
다행히 고시원은 고등학교처럼 종소리는 없었고 어른임을 인정해주듯 인원체크빼곤 자율적인 곳이었다.
매일 9시부터 적어도 11시, 늦으면 새벽 2시까지는 공부했고 처음 3달은 인강 들으면서 시험을 익히고 그 후론 기출문제를 계속 돌렸다.
수없이 기출문제를 풀면서
틀린 비슷한 유형끼리 모아서 오답노트를 썼는데 아마 그때 쓴 오답노트 덕분에 글 쓰는 게 좋아진 걸 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면 비웃겠지만 내 오답노트는 내 생각을 돌아보고 나를 반성하는 일기와 같았다.
"이 바보야 이거 저번에도 틀린 거라고 왜 맨날 좁게 생각해!"
이런 걸 수도 없이 적었으니 나 스스로 나를 계속 바라보고 기록한 게 지금의 글 쓰는 나를 만들었을지도.
물론 혼자 공부만 한건 아니다.
고시원에는 공무원반, CPA반, 경찰반 등이 나눠져 있고 난 10명 남짓한 7급 공무원반에서 끼리끼리 친해져서 스터디도 했었다.
분명 사이가 좋았는데 모의고사를 치면 칠수록, 시험이 다가올수록 우리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고 시험을 2년 넘게 준비한 선배한테 매번 물어보던 게 당연했던 문화가 그 선배가 성적이 저조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묻는 횟수가 서서히 줄어들기도 했다.
그렇게 6개월을 공부하다 여름이 되었다.
학교는 방학이 되자마자 꼭 문 닫은 놀이공원처럼 사람도 차도 지나다니지 않았고 내가 그 놀이공원을 꼭 빌린 것처럼 안 가봤던 학부 건물들도 더위를 피하러 자주 들어갔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내 머리길이가 가슴을 넘어 길었다는 걸 깨닫고 머리도 좀 자르고 사람들도 만나러 밖으로 나가고 싶어 졌었다.
결국 나는 더 참지 못하고 2학기는 복학해서 학교생활과 공무원 준비를 병행하기로 결심했다.
그 복학이 자신감 넘치던 나를 휘청거리게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