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간 붙잡혀 있던 담배에서 해방된 이야기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던 형님과 친구들이 종종 우리 집에서 담배를 피웠다. 어느 날 형들이 돌아간 자리를 정리하다, 남겨 둔 담배를 한번 피워보았다. 처음에는 뻐끔담배를 피우다가, 형들이 하던 것처럼 담배연기를 "후욱~" 들이마셨다.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눈앞에 별이 보이는 것처럼 핑~ 어지러움을 느꼈다. 잠시 후 콜록~ 콜록~ 기침을 하고, 입안에 침이 고이고, 연기에 눈물이 나고, 속은 매스껍고 역겹고...
한마디로, 아주 고약한 맛이었다. 이런 담배를 어찌 그리 맛있게 피울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며칠 후, 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숨겨두었던 담배를 꺼내 자랑했다.
"야~~ 너희들 담배 피울 줄 아냐?"
"내가 형님들 피우는 걸 보고, 몇 번 피워봤어, 그런데 별맛도 없더라~."
나는 친구들 앞에서 한껏 폼을 잡고, 담배를 피울 줄 안다는 것을 자랑했다. 속이 매스껍고 별 맛도 없었지만, 친구들에게 멋져 보이고 싶은 생각에 담배연기를 마셨다가 후욱~ 내뿜었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흡연자'가 되었다.
그때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 '엄청 센 아이'로 보이는 줄 알았다. 고3 정도 되면 담배 피우는 형들이 많았다. 하지만 중학생이,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던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친구들은 신기하게 생각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못하는 걸 할 줄 안다고, 어른처럼 담배를 피우는 것이 멋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이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줄곧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담배 피우는 모습을 선생님들에게 들키지 않아야 하고, 가끔 실시하는 가방검사에 걸리지 않아야 하고, 부모님과 형들한테도 숨겨야 했다. 담배와 라이터를 사면, 비닐에 둘둘 말아, 동네 골목 으슥한 곳,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길가 모퉁이나 벽돌 틈에 숨겨두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이걸 꺼내서 골목이나, 운동장 구석 헛간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고3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하면서, 운동장에서 별을 쳐다보며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시간은 가장 달콤한 휴식이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담배를 떳떳하게 피울 수 있었다. 캠퍼스에서, 연극 동아리방에서, 학교 앞 선술집에서, 당구장에서, 어디든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군대 생활하는 동안에도 담배를 많이 피웠다. 당시에는 현역 군인들에게 국가에서 담배를 배급해 주었다. '은하수' 또는 '한산도' 담배를 하루 반 갑, 한 달에 15갑 배급을 주었다. 담배를 안 피우는 병사들에게는 돈으로 지급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담배로 받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 담배를 안 피우는 사병들도 배급을 받아, 다른 사병에게 팔기도 했다.
나는 기관지가 좋지 않았다.
평소 잔기침을 하고, 가래도 종종 나왔다. 대학생이 되어 흡연량이 많아지면서, 기침과 가래가 심해졌다. 하지만 담배 때문이 아니라, 원래 기관지가 안 좋아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담배를 피운 이후 불편한 것 중 하나는 고약한 입냄새였다. 공무원 초년병 시절, 윗분에게 보고를 드리는데, 얼굴을 찌푸리면서, 손으로 코와 입을 막으셨다. 나는 당황해 몸 둘 바를 몰랐다. 최대한 내 숨결이 그분에게 가지 않게 하고, 호흡을 작게 하려고 애를 쓰면서 겨우 보고를 마쳤다. 이후, 윗분에게 보고를 들어가기 전에는 1-2시간 담배 안 피우기, 양치하기, 가글 하기 등 온갖 수단 방법을 총동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사는 내 앞에서 항상 코와 입을 가리고 보고를 받으셨다. 담배를 끊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금연한 지 한 달이 지나도, 내 옷에서 담배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담배를 피울 당시에는 그 냄새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담배로 인한 입냄새 때문에 회사에서 힘든 일을 겪은 후,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윗분이 코를 틀어막던 사건 이후 서너 차례 금연을 시도했는데, 2-3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
가장 길게 성공했던 것이 미국 유학시절 1주간 금연 성공한 것이다. 회사엘 안 나가니 스트레스도 없고, 금연하기 좋은 기회다 생각해, 금연패치도 붙이고 손쉽게 성공하는 듯했다. 그런데, 금연을 한 지 1주째 되는 날, 기말시험을 대체하는 보고서를 10페이지 작성해야 하는데, 이틀째, 한 장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담배생각이 간절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은 한대 피고 보자"
근처 가게에서 담배를 사 와서 한대 맛있게 피웠다. 그리고는 다음날 보고서를 모두 마무리했다. 담배를 끊고 있는 동안 그리도 안 써지던 보고서가, 담배를 다시 피우고는 너무 잘 써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아~~~ 유학 끝나고 한국에 귀국하면, 다시 회사 업무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보고서도 많이 작성해야 할 텐데, 담배를 끊고 생활하기는 힘들겠다"
이 사건 이후, 몇 년간은 금연을 시도도 하지 못했다. 귀국 후 계속되는 업무 스트레스, 술자리, 이어지는 담배 흡연으로 내 몸은 지치고 힘들어져 갔다.
그동안 수차례 금연을 시도하면서 의문이 생겼다.
"담배를 끊고 싶은데, 왜 이리 힘들까?"
"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을까?"
계속되는 금연 실패로 고민하던 그때, 중학교 친구를 만났다. 나보다 담배를 많이 피우던 친구였는데, 담배를 끊었다고 자랑을 했다.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책을 읽고서 금연에 성공했다고 한다. 친구가 추천하는 책을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었다.
영국사람 '알렌 카'라는 분이 쓴 책, '스톱 스모킹'에 내가 궁금해하던 질문의 답이 있었다.
저자, 알렌카는 33년간 매일 5갑의 답배를 피우던 '헤비 스모커'였다. 흡연 때문에 수차례 이혼위기까지 갔던 그는 마침내 어렵게, 어렵게 금연에 성공하게 되면서 결심하게 된다.
"나 같이 골초인 사람도 담배를 끊었는데, 이제부터 전 세계 모든 사람을 비흡연자로 만들겠다."
이후 그는 회계사 일을 그만두고, 금연 건설턴트가 되어 금연학교를 운영했다. 폐암 말기이면서 담배를 끊지 못하는 환자, 십 년 이상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여자 등등.... 많은 이들의 금연을 도와주고, 때로는 금연에 성공하지 못해 다시 담배를 피우는 신청인들을 만나며,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책으로 썼다.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은 중독성이 있는, 그러나 그 중독성이 심하지는 않은 마약이다.
처음 담배를 피울 때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 역겨운 맛과 냄새에 기겁을 하고,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그는 담배 속 니코틴의 갈고리에 걸려들었기에,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중단할 수 없는 흡연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우리가 강한 의지로 담배를 끊고자 할 때, 이 작은 악마는 우리를 속인다.
담배의 그 달콤한 맛을 포기하지 못할 거라고, 한 달이고, 1년이고, 십 년이 지난 후에라도, 단 한 개비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 작은 악마, 니코틴의 갈고리가 다시 우리를 낚아챈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면서,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
"아~ 그래서, 내가 담배를 끊기 힘들었구나"
"아~ 그래서, 내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구나"
이 모든 걸 알고 나니, 너무도 억울했다. 담배에, 작은 악마 니코틴에 속아 나의 청춘시절을, 담배연기로 채우며 살아온 것을 깨닫고, 억울하고 분통이 났다.
"2010년 6월 1일, 비흡연자의 행복한 삶을 시작한다."
하루 밤을 꼬박 새워 책을 읽은 후, 그 책 첫 장 빈칸에 이렇게 썼다.
그리고 그날부터 바로 시작했다, 행복한 비흡연자의 삶을. 이후로는 담배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담배의 유혹, 작은 악마 니코틴이 어떻게 나를 속여왔는지를 알기에.
니코틴의 유혹은 이후에도 1년 이상 지속되었다. 때로는 술자리에서, 때로는 무료한 시간에, 때로는 한때 맛있게 담배를 피웠던 낚시터에서.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나를 다독였다.
"속지 마라, 한 개비는 없다. 27년간 나를 힘들게 하고, 악취가 나던 흡연자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절대 속지 마라!"
이렇게 나는 15년째 행복한 비흡연자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더 이상의 갈등이나, 흔들림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