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을 하고 집의 현관문을 열자마자 집안을 스캔한다. 몇초만에 끝나는 스캔으로 예상 복구시간과 나의 에너지 소요등을 대략 계산한다.
청소를 하다가 가슴 아픈 지점을 만난다. 딸아이 침대에 놓인 내 티셔츠가 그렇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 온 딸에게 굳이 한 번 물어본다.
"하경아, 하경이 침대 위에 엄마 티셔츠 뭐지?"
"응, 거기서 엄마 냄새가 가장 많이 났어요. 엄마 냄새를 맡고 자야 잠이 잘 와요."
딸아이의 변천사가 그새 생겼다. 아이가 네다섯살일 때에는 엄마가 입원을 해서 떨어져 있게 되면 대성통곡을 하였고, 예닐곱살 때에는 가슴을 부여잡고 흐느꼈다. 자그마한 아이 몸통에서 그런 커다란 설움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엄마가 입원하면 병원밥을 뺏어 먹으러 오고 엄마 옷을 옆에 두고 잠을 자는 등 자기의 살 길을 잘도 터득했다.
후각, 사람의 감각기관 중에 후각만큼 추억을 진하게 몰고 오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장미향을 맡으면 장미향 속에서 같이 걸었던 친구 하나가 어김없이 소환된다.
자동차로 시골길을 내달릴 때 나는 거름냄새는 예전 시골집 송아지를 떠올리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시절을 통째로 소환환다.
스쳐지나가는 누군가의 지독한 향수냄새는 언니, 속까지 울렁거리게 향수를 뿌리고 다닌 언니를 추억하게 한다.
점심시각 무렵 쯤에 지나는 어느 백반집의 된장찌개 냄새는 미운 엄마생각이 난다. 고등학교 때 자취를 했었는데 집에 와서 엄마한테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던 어느 토요일 오후가 있었다.
엄마가 된장찌개를 끊이시던 중 옆집 아저씨가 오셨는데 내 된장찌개가 갑자기 옆집 아저씨의 술안주가 되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오랫만에 집에 온 딸의 자존감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저씨가 가신 후에 엄마한테 서운함을 토로하며 왜 그렇게 철없이 엉엉 울었는지, 나는 엄마에게 손이 안가는 딸이었지만 그 날은 왜 그렇게 폭발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도 된장찌개에 대한 결핍이 있고 누가 밥을 사준다고 하거나 뭐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라고 하면 무조건 된장찌개를 말한다.
된장찌개 냄새만 맡아도 그 날의 추억이 소환되는 것이다.
몸이 아프고 나서 시력도 청력도 많이 나빠졌지만 이상하게 후각은 더욱 발달해져서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냄새에도 비위가 상하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은 무향無香이다. 좋은 향기속에서도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지만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는 상태에서 나는 평온함을 느낀다.
그런데 딸아이는 엄마 냄새에서 안정감을 느끼나 보다. 딸아이에게 굳이 또 물어 보았다.
"하경아, 엄마 냄새는 무슨 냄새야?"
"엄마 냄새요? 응, 엄마 냄새는 화장품 냄새."
나는 감성적인 답변을 기대하고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모든게 무색하게 되었다.
소소한 행복을 느낄 때에 감사할 줄 알고 더 바라지 않아도 됨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었다. 더 큰 감동을 바라는 욕심 때문이었는지 이전의 감동과 행복마저 살짝 웃기게 되었다.
내가 남겨지게 된다면 누군가의 후각속에 머물고 싶다. 향기로 남겨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