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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by 김추억

"세은아, 소녀방에 무슨 거미줄이야. 엄마가 빗자루로 쓸어낼 거야. 알았지?"

세은이 엄마는 세은이 방 천장 모퉁이에 거미줄, 그러니까 그 거미줄에 걸린 거미들이 못마땅합니다. 하나뿐인 딸아이의 방에 거미줄이 웬 말이며 또 거미가 바닥에 떨어뜨린 까만 거미 똥이 말라버리면 여간 닦기 힘들게 되거든요. 그런데 세은이는 그 거미줄을 절대 없애지 못하게 해서 한 번씩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게 되는 거지요.


"엄마, 나는 친구가 이 녀석들 뿐이에요. 앞으로 거미 똥은 엄마가 보기 전에 제가 수시로 물티슈로 닦을게요. 그래도 새끼를 안 낳는 게 어디예요. 엄마, 제발요. 그냥 거미줄 놔둬요. 네?"


친구가 없다는 세은이의 말에 세은이 엄마는 마음이 울컥하면서 세은이에게 또 져주게 됩니다. 세은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폭력을 당한 이후로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는 아이거든요. 어느 날 세은이 엄마가 퇴근 후 집에 왔을 때 세은이가 모든 창문을 이중으로 걸어 잠그고 집안의 커튼을 어둡게 다 치고 이불속에서 땀과 눈물에 범벅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날 학교 강당에서 여러 아이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었거든요.


세은이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안에 갇혀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아이예요.


"엄마, 왼쪽에 조금 통통한 거미 이름이 허송이고요, 오른쪽에 조금 얇실한 아이가 세월이에요. 엄마, 둘 이름을 합쳐 보세요."


"허송... 세월?"


"네, 이름 잘 지었죠? 허송아라고 부르면 허송이가 저를 쳐다보는 것 같고요, 세월아라고 부르면 세월이가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고마운 친구예요. 다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빗자루로 거미줄 쓸어버린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엄마만 제 방에 들어오면 허송이와 세월이가 긴장하는 것 같아요."

세은이는 엄마에게 거미들을 소개해 주고 엄마를 서둘러 방에서 내보냅니다. 세은이는 혼자 있는 게 너무나 편안한 아이가 되었어요. 다행히 허송이와 세월이가 생긴 이후부터는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속 마음을요. 엄마가 나가고 나자마자 책상에 앉아 허송이와 세월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세은이는 말을 꺼냅니다.

"오늘은 심리치료를 받고 왔어. 내 머리채를 잡고 나를 강당 바닥에 내동댕이 친 다현이를 점토로 만들었는데 다 만들고 나서 목이 가늘었는지 머리가 꺾였어. 나는 "어? 나쁜 짓 해서 벌받았았나 보다."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상담 선생님이 그 소릴 들으시고 웃으셨어. 그때 나를 할퀴고 주먹질하고 발로 밟은 아이들이 여전히 학교에 웃으면서 다니겠지? 이제 곧 교복을 입고 다닐 텐데...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싫은데 왜 그런 모습들을 상상하고 있을까? 허송아, 세월아, 나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너희들처럼 거미줄이나 치면서 방 안에 갇혀 허송세월을 보내고 싶어."




세은이는 한밤중에 창문을 엽니다. 방충망까지 엽니다. 그리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셉니다. 흐린 날은 겨우 인공위성 같은 것들이 몇 개 빛나고 있고 맑은 날은 희미한 빛까지 숫자를 세다가 포기합니다. 그 틈에 작은 날파리 같은 것들이 빛이 밝은 세은이 방으로 들어오곤 합니다. 누가 좋을까요? 네, 허송이와 세월이가 좋아하겠지요.

세은이는 가끔 허송이와 세월이의 먹이 사냥을 봅니다. 거미줄에 작은 벌레가 걸리면 쏜살같이 먹잇감에 달려갑니다. 자기 집을 부수면서 먹잇감을 취하는 거미의 모습을 보며 세은이는 잔인함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먹이사슬로 얽힌 생태계를 존중하고 또 허송이와 세월이가 굶어 죽을까 봐 늘 걱정입니다. 세은이는 허송이와 세월이를 보면서 읊조립니다.

'먹고사는 일은 조금 뜯기는 일이구나. 먹잇감이 걸려 거미줄이 어쩔 수 없이 뜯기듯이 말이야.'




여름이 가까워 오자 세은이가 방충망 열기가 고민스러워집니다. 모기 녀석 때문이죠. 그래도 방충망을 열어 봅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자면 되지 뭐.'

세은이는 그렇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달 표면의 얼룩을 관찰합니다.
그때였어요! 엄청난 크기의 나방이 세은이 뺨을 스치며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으악!!!"

세은이의 비명소리에 세은이의 부모님이 달려왔습니다. 난리도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나방 한 마리가 퍼득거리며 세은이 방을 사정없이 휘젓고 다닙니다. 세은이는 커다란 나방이 무서워서 울다시피 호들갑을 떨고 두 다리를 동동 구르며 아빠 뒤에 숨었지요. 그런데 세은이 아빠도 벌레를 무서워해서 순간 몸이 얼음이 되셨습니다. 세은이 엄마는 언제 빗자루를 들고 왔는지 훠이 훠이 창문 쪽으로 나방을 몰아 유인합니다. 그러다 나방이 그만 허송이와 세월이의 거미줄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퍼덕퍼덕 커다란 날갯짓 몇 번에 거미줄이 순식간에 파괴되었고 허송이와 세월이는 바닥에 떨어져서는 쪼르르 세은이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어버렸습니다.
세은이 엄마는 나방을 몰아내었고 세은이를 진정시킵니다.

"세은아, 놀랬지? 나방이 무슨 새 같았다 그치? 방충망은 앞으로 열지 마. 알았지?"

세은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곰인형을 꽉 끌어안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킵니다.

"엄마, 허송이와 세월이는 어떻게 해요."

"지금 허송세월 걱정할 때니? 알아서 잘 사는 게 허송세월이니까 걱정하지 마."

세은이 엄마는 이참에 잘 되었다 싶어서 아예 허송이와 세월이의 거미집이 있던 벽까지 걸레로 깨끗이 닦아 냅니다.




세은이는 다음 날 늦잠을 잤습니다. 일어나라는 엄마의 목소리도 듣지 않고 늦게까지 꿈을 꾸었지요. 엉덩이를 찰싹 때리는 엄마의 손길에 세은이는 눈을 떴습니다. 세은이는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키자마자 엄마 손을 잡고 울음을 삼키며 이야기합니다.

"엄마, 제가 꿈을 꿨는데요, 글쎄 꿈속에서 제가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어요. 예쁜 국어선생님께서 제게 무슨 발표를 시키셨는데요, 친구들이 제 발표에 웃기도 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발표가 끝날 땐 엄청 큰 박수를 춰주었어요. 처음 보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급식을 먹었고요, 아! 급식은 쫄면이랑 돈가스가 나왔어요! 그리고 체육시간에 피구를 하는데 제가 끝까지 살아남아 있었어요. 엄마, 꿈에서 깨어나기 싫은 꿈을 제가 꾸었어요."


세은이 말에 세은이 엄마는 가슴이 미어집니다. 가만히 세은이 머리를 쓰다듬고 껴안아 주셨어요.


"세은아, 세은이가 여기서 학교 다니는 게 힘들면 우리 다른 곳으로 이사할까? 거기서 세은이 상처도 낫게 하면서 다시 시작해도 괜찮을 것도 같아."




세은이는 아침을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오늘 공부할 책들을 정리하며 챙깁니다. 책상에 앉아 습관처럼 허송이와 세월이가 있던 벽 천장을 보는데 허송이와 세월이가 거미줄을 다시 치고 있었어요. 세은이는 물끄러미 허송이와 세월이가 거미줄을 치는 모습을 관찰하며 감탄을 합니다.
작은 몸에서 계속 쭉쭉 뽑아지는 거미줄이 신기합니다. 거미줄이 투명하고 신비하고 신선합니다.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큰 골격을 잡아 놓고 한 땀 한 땀 뱅뱅 돌며 거미줄을 잇습니다.
세은이는 허송이와 세월이가 기특하고 기쁩니다.
지난밤 집이 통째로 뜯겼는데도 망연자실 손 놓고 있지 않고 거미줄을 또 치는 모습을 보며 세은이는 읊조립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가는 거구나, 거미줄을 치는 너희들이 어떻게 허송세월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한 건데 말이야."

세은이는 거미줄이 뜯긴 일이 허송이와 세월이에겐 세계가 뜯기는 일이었겠다 싶었어요. 사는 건 뜯기는 일과 새 집을 짓는 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고 허송이와 세월이가 말해 주는 것 같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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