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은퇴한 영웅의 주방 입성기
휴대폰에 아버지의 이름은 '대장님'이라고 저장되어 있다.
"누구를 가장 존경하나요?"
이 질문을 받을 때 어느 순간부터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와서도 아니고 내가 머리를 자른 것을 세심하게 알아봐서도 아니다. 그저 묵묵하게 책임졌기 때문에 존경했다. 혼자 지방에서 살면서 서울을 오가고 부산을 오갈 때도 아버지는 변명을 하지 않았다. 그냥 했다. 분명 쉽지 않았을 텐데 항상 최선의, 최선을 다했다.
작년 4월, 엄마의 재발 소식이 들렸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평생 해본 적 없는 주방일과 집안 살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답답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드려야 했는데 그 '하나'부터도 처음 아이가 언어를 배우듯 설명해야 했다. 1960년대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한복판에서 자기 취향조차 모른 채 묵묵히 일을 해온 경상도 사나이. 그에게 앞치마와 국자가 들렸다. 가장에서 보호자로, 그리고 주부로.
퇴직 후 아내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했던 그는 삶이 이렇게 바뀔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픈 배우자를 돌보며 힘이 부칠 때 아버지는 얼마나 소리치고 싶었을까. 나는 회사라는 도피처이자 나의 일상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집 안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하나하나 나에게 물어보고 때로는 타박을 듣기도 하면서 자존심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가장 괴로운 순간이 있다. 못난 나를 마주하고 그 시간을 견디는 것. 일에서는 누구보다 능숙했던 사람이 집에서는 초보가 된다. 익숙한 세계에서 날아다니던 사람이 가정 앞에서 초보가 된다. 계란 프라이 하나 못 구워서 나에게 물어보던 아버지가 이제는 주말마다 샤브샤브를 끓여주신다.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몇 주 전,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가끔은 눈물을 흘리고 싶은데 그 방법도 모르겠다고. 어느 일요일 미사에서였다. 비교적 쾌활한 성가가 울려 퍼지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고 했다. 미사가 끝나고 옆에 앉은 사람이 물었다.
"형제님은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버지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무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 안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참 낯선 것이었을 테다. 분명히 아버지와 친한데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한다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도 안다.
과자 취향도 안다.
음악도, 영화도 안다.
그런데 아빠는 아빠를 모르더라.
그래서 내가 옆에서 아빠를 알려드린다.
다급할 때의 아버지, 운전할 때의 아버지, 무언가를 결정할 때의 아버지, 웃을 때의 아버지. 아버지의 다정한 점, 나에게는 없는 점, 내가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나에게 해주셨을 그것들을.
아빠가 아빠를 모르니까. 내가 알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