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2월 31일부터 흘러온 물길
오늘로 14331일이다.
결혼기념일은 아니다. 부부가 된 날도 아니다.
커플이 된 날, 1986년 12월 31일.
그해의 마지막 날, 엄마는 누군가의 대타로 그 자리에 나갔다. 다음 해로 넘어가기 전, 어떻게 엮일지 모르는 만남. 그날이, 14331일 전이다.
두 사람은 7년을 연애했다.
이십 대 후반에 결혼하면서 엄마는 의류회사에서 디스플레이 일을 내려놓았다. 아빠는 대학 시절 편입을 했고, 문과와 이과를 모두 거치며 졸업 이후 취업과 연애, 결혼을 했다.
누가 먼저 좋아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수많은 연애 이야기처럼 서로가 서로를 따라다녔다고 지금도 말이 엇갈린다.
어릴 적, 서랍장 안에는 편지들이 빼곡했다.
종이마다 글이 가득했지만 나는 그게 연애편지인 줄 몰랐다. 읽어도 이해되지 않아 대충 넘기기 일쑤였다.
지금은 그 편지들이 없다. 그때 알았더라면, 잘 보관해 뒀을 텐데. 두 사람이 7년을 버텨낸 언어들이 그 안에 있었을 텐데 하고 가끔 아쉬워진다.
엄마가 많이 아픈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아빠는 더 힘들어한다. 만났기에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사랑했기에 아프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안다.
만나지 않았더라면 덜 아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이 그 말 안에 함께 들어 있다는 것도 나는 안다.
요즘 주변에 결혼 소식이 많다. 친한 직장 동료 둘이 올해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매 점심시간에 새로운 체크리스트가 늘어난다. 알고리즘에는 결혼 관련 영상이 뜨고 오늘도 옆자리 동료의 소개팅 후기를 들었다.
부모님을 제외한 어른들은 내 솔로 생활을 걱정해 준다. 어느 순간부터 주말마다 결혼식과 집들이를 오가더니 이제는 출산 소식에 축하를 건네는 일이 이어진다. 내가 기억하던 나의 젊은 친구들이 어느새 부모가 되어 있다.
나도 지난 일 년 동안 처음으로 생각했다. 배우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돈을 버는 일도, 공부를 하는 일도, 아픈 가족 곁에서 버티는 일도 혼자 해내기엔 벅찬 날이 있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겨내기에는 너무 버거운 날들이 있다. 기꺼이 질 수밖에 없는 날의 감정은 오로지 내 몫이다. 배우가 있으면 내 몫을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주변에 새로운 가정들이 생겨나고 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세상에서 누군가는 선택하고, 누군가는 아직 모른다. 나는 아직 모르는 쪽이다.
다만, 1986년 12월 31일 대타로 나간 자리에서 시작된 14331일을 오늘 처음 세어보았다. 그들의 만남 위에 내가 태어났고 나의 삶은 또 다른 물길을 내고 있다.
고이지 않고 흘러가길 바란다. 누군가의 샘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좁아지기도 하면서. 어느 날 지하로 스며 찾아볼 수 없게 되더라도 나만의 물길은 계속 흐르기를.
어떤 길과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무서워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