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상하이

십 년 만에 상하이를 다시 찾았다

by HANA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동안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낯설지 않은 풍경인데 낯설게 느껴지는 감각. 내가 이 도시를 마지막으로 떠난 게 2016년이었으니 그 사이 상하이도 나도 꽤 많이 달라졌을 텐데, 이상하게도 이 도시는 그때와 같은 얼굴로 나를 맞아주는 것 같았다.


2016년 요녕사범대학교에서 연수를 하게 됐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연휴마다 매번 다른 국적의 친구들과 중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남방에서 온 친구, 북방에서 온 친구, 어쩌다 같은 숙소를 쓰게 된 유럽 친구들. 언어가 완전히 통하지 않아도 함께 기차를 타고 여러 풍경을 눈에 담았다.



학기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가기 전, 그때 방문했던 도시들 중 가장 다시 오고 싶었던 상하이에서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기로 했다. 학생증으로 미술관과 박물관 입장료를 반값에 살 수 있었지만 아르바이트비로 충당한 여행 경비는 어떻게 해도 빠듯했다. 난징동루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기 전 20킬로 짐을 끌며 40도 뙤약볕 아래 하루 8시간씩 걸었다. 짐을 풀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식사 대신 음료와 빵으로 버티면서도 매일 수백 수천 점의 작품들을 보며 참 행복했다. 지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도 행복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돈이 없어도, 다리가 아파도, 그냥 좋았다. 나의 뜨거운 여름을 들은 친구는 그 고생을 청춘이었다 해주더라.


다음에 올 땐 편한 숙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첫 번째 방문에서 남방 출신 친구와 일정을 마친 뒤, 혼자 남겨진 날이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에서 혼자 지도를 들고 걸어 다니는데 오로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말을 걸어오고 하루를 함께해 준 친구가 있었다. 헤어질 때 그 친구가 말했다. 꼭 다시 와.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고 하면 너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랬다. 재회는 하루 반나절짜리였다. 그래도 충분했다. 상하이 음악회에 데려가주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준 그 친구 덕분에 나는 이 도시가 더 좋아졌다.


그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또 있다. 디즈니에서 서로 혼밥을 하다 눈이 마주쳐 남은 상하이 여행지를 추천해 주던 홍콩에서 온 아저씨. 단동에서 반 친구들과 처음 마셨던 대동강 맥주를 상하이에서 다시 만나게 해 준 혀니의 선물 한 병. 인사이드 아웃의 코어 메모리가 불빛처럼 켜지듯, 크고 작은 기억들이 자꾸 겹쳐 떠올랐다.



세 번째 방문을 같이한 혀니가 숙소에서 방향제를 뿌리며 말했다. 예전에 내가 중국의 음식 냄새와 담배 냄새로 힘들어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난다고. 그 말을 들으니 그때 몰래 수제 향초와 향 제품을 보내줬던 친구에게 또 고마워졌다. 나조차 까먹었던 나의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 그때 나는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할 만큼 여러모로 예민했던 것 같다. 낯선 나라에서, 미래를 모른 채, 혼자 잘 해내고 싶었던 스물몇 살. 지금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첫 여행을 같이해준 친구와 열심히 걸어 다니며 나눴던 이야기가 있다. 난 언제나 나의 삼십 대가 궁금하고 빨리 그때로 가고 싶다고 했었다. 복학하기 전 정말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삼십 대가 되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았던 걸까. 아니면 그냥 지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복학 후에 공모전과 서포터즈 활동을 병행하며 취업에 대한 불안함을 달랬는데 이제 돌고 돌아 내가 진로취업 상담을 하며 잡서포터스 담당자가 되었다. 서포터즈들의 서포터가 되었다.


동방명주와 와이탄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술 한잔을 기울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호텔에서 쉬며, 같은 자리에서 달라진 것들을 눈에 담았다. 그때 다짐했던 대로 편한 숙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 도시를 다시 보고 있다는 게 묘하게 벅찼다.


오래된 기억과 지금이 겹치는 감각. 그때의 내가 원했던 삼십 대가 지금의 나인데 생각보다 덜 완성되어 있고 생각보다 더 괜찮다. 너무나 원하던 그 순간으로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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