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없는 구멍

고통을 거절할 권리, 붙잡을 간절함

by HANA

작년에 18년을 함께한 강아지를 떠나보냈다. 그 아이를 보내고 올해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이 나를 통해 계속 숨 쉬길 바랐다. 사랑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형태가 달라질 뿐이니까.

2026년 설 연휴를 앞둔 토요일, 봉사를 마치고 가족에게 돌아가려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열이 많이 나서 응급실에 왔다고. 머리가 멍해졌다. 봉사도 좋지만, 정작 엄마가 응급실로 실려가던 그 시간에 나는 곁에 없었다. 독립을 하고 나서 죄책감이 마음 한편을 늘 갉아먹었다. 그 자리에서 3월까지의 봉사활동을 전부 취소하고 보호자 가방을 꾸려 병원으로 향했다.

처음 병실에 들어갔을 때 심장이 내려앉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는 엄마의 얼굴에 깜짝 놀랐다. 다행히 그날 밤 열이 떨어졌고 오랜만에 엄마가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죽는 것도 쉽지 않다고. 얼마 전에 거실로 나와보니 집이 너무 낯설다고 했다. 계속 집에 있던 엄마가, 거실에서 가장 가까운 방에서 살면서 거실이 제일 낯설다고 한다. 엄마표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은데,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다. 오랜만에 병상 테이블 위에 보호자식과 환자식을 두고 마주 보며 밥을 먹었다. 남들 맛없다는 병원밥이 그날은 정말 맛있더라. 난 엄마랑 이렇게 먹는 밥도 맛있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구나. 보호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후드득후드득. 굵은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유 없이 화가 난다. 내 마음속 구멍이 점점 더 커진다. 이 구멍을 메우려고 사랑으로 메워보려고 아등바등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바닥이 없는 구멍은 채워지지가 않는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했다. 엄마의 바람이 더 클지, 나와 가족과 의사 선생님의 노력이 더 클지 겨뤄보자고. 그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부디 당신을 붙잡지 말라고 하신다. 엄마에게 말했다. 요즘 내 일상 곳곳에 엄마가 있다고. 밥을 먹어도, 영화를 봐도, 길을 걸어도, 목욕탕을 가더라도. 그 모든 순간에 엄마가 있다.

삐까를 제대로 애도할 시간도 없이 엄마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고, 그러면서 내 삶도 살아가야 한다.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 모든 걸 동시에 견뎌야 하는데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오늘도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린다. 내 불안은 나의 것인데 두 발로 서서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한계다.

엄마가 드라마 이야기를 꺼냈다.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말기 암 환자가 오랜 친구에게 스위스 동행을 부탁하는 이야기. 극 중 상연이 은중에게 했던 것처럼, 엄마도 조용히 그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엄마, 난 밥을 먹어도 영화를 봐도 길을 걸어도 목욕탕을 가더라도, 그 모든 순간에 엄마가 있어. 엄마에게는 고통을 거절할 권리가 있지만 난 붙잡을 간절함밖에 없어. 매일 조금씩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하루를 삼켜내며 균형을 애써 맞추고 있어. 조금만 더 기다려줘.

제목을 입력해주세요..jpg


작가의 이전글폭풍이 지나간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