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새로운 시작

by 재인

오늘도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사실 그리 이른 시간은 아니다.)

3월부터 새로 시작한 일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왜 좋은지 아직 설명할 순 없지만, 그냥 하는 것이 좋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낭독이다. 지난해 낭독 수업을 2번 이상 들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도서관에서는 낭독 봉사 동아리를 만들어 주셨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참으로 반가웠다. 우리는 한 달에 두 번 만나 낭독 연습도 같이하고 혹시 낭독이 필요한 곳이 연결되면 봉사도 하기로 했다. 우리가 같이 정한 계획대로 올 한 해를 잘 보내면 좋겠다.

두 번째로 새로 시작한 모임은 독서동아리 모임이다. 작년부터 독서동아리를 하나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맞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1년이 훅 지나갔다.


첫 시간에 선정된 책은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란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 가기 전부터 설레었다. 독서동아리 모임은 남자, 여자 포함해 총 11명이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을 비롯하여 쑥스럽지만 각자 자기소개와 동아리에 온 소감을 얘기했다.


11명은 생각했던 대로 연령대도, 나이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을 것 같았다. 서로 다른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오늘 책은 40대 남성이 화자로 나오는 단편소설이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있는 40대를 보내는 남자의 마음을 작가는 섬세하고 예민하고 조금은 쓸쓸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남성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 남성의 감정선을 잘 표현했네, 생각이 들었다. 책이 마음에 든 건 당연했다. 근데 서로 얘기를 나눠보니 대부분은 책 내용이 너무 우울하고 재미도 없어 별로였다고 했다. 난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왜 책의 진가를 몰라보지? 책을 잘 읽은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때 남자분이었던 것 같다. 그분이 자신은 지금 50대이지만 40대를 지날 때 생각해 보면 책 주인공이 느끼는 상실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하셨다. 서로 문화가 달라도 남자들이 하는 생각들은 비슷한 것 같다고도 하셨다. 그래도 한 분이나마 나랑 같은 마음이어서 다행이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마무리하는데 갑자기 독서동아리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은 즐겁겠지만,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들으니 또 나름대로 이해가 가서 그것도 좋았다. 아마 그들은 앞으로 내가 편협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일 년 동안 총 20권의 각 분야별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하고 각각 돌아가며 책의 발제문을 준비하기로 했다. 다음 시간 책은 장강명 작가의 책이다. 이분 또한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 벌써 기대가 된다.


마지막에 시작한 일은 바로 미술사 수업이다. 평소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해 신청한 수업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그림을 볼 때 그림의 배경이나 뒷이야기 같은 것을 알면 그림 보는 것이 더 즐거워진다. 그래서 어떤 그림을 보게 될지, 어떤 수업이 될지 너무 궁금했다.


드디어 첫 시간, 선생님은 나이가 좀 있으신 여자분이셨는데 은퇴 후 지금은 주로 이런 강의를 다니신다고 하셨다. 시간이 되어 수업이 시작하자 프린트를 나눠 주시고 돌아가며 읽게 하셨다.

나는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예전 학교에서 공부하던 모습이 생각나서였다. 선생님이 그날 주번을 불러 문제를 풀게 할 때도 있고, 그날 날짜에 해당하는 번호를 불러 책을 읽게 하실 때도 있었다. (지금도 주번이 있으려나? 아니 주번이 뭔지 알려나? 나 너무 옛날 사람 같다.)


돌연 공간이 바뀌어 나는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다. 큰 강의실에 빼곡히 들어찬 학생들, 우리는 지금 교양 미술사 수업을 듣고 있다. 나는 수업은 듣지 않고 열심히 친구들과 톡을 하고 있다. 별 중요한 내용도 아니다. 그저 끝나고 밥을 뭘 먹을지 하는 얘기이다.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에 웃기기도 하고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선생님의 수업을 따라가 본다.

선생님은 프린트 읽기가 끝나고 예시를 들어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그림들을 보았는데 하나하나 자세히 그림에 대한 설명과 배경 이야기도 빼놓지 않으셨다.


기원전 그리스 사람들은 회화를 모방으로 생각했으며 특히 소크라테스 제자인 플라톤은 화가는 실제가 아니라 가상을 모방한다고 했다. 또한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술은 기능성을 가진 기술이라고 인지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우리처럼 미술관에 그림을 보러 가고 연주회를 들으러 가는 행위는 18세기에 들어서야 시작되었다고 한다.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되면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특히나 신을 중심으로 한 신화 그림을 보면 뭔가 다르게 보일 것 같다.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당분간 수업에 숙제까지 바쁘게 지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어쩐지 즐겁게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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