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감정일까, 본능일까

by 재인

셰익스피어 작품 중 “오셀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질투하기 때문에 질투하는 거라고요. 그건 스스로 생기고 스스로 태어나는 한 마리 괴물이랍니다.”


‘오셀로’에서는 ‘이아고’라는 인물이 자신이 바라던 자리에 오셀로가 ‘카시오’를 임명한 것을 질투하여 그에게 앙심을 품는다. 그래서 오셀로가 자신의 부인을 믿지 못하게 끊임없이 이간질을 하고 결국 오셀로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부인을 죽이게 된다. 후에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셀로는 후회하며 자살하게 된다.


이 비극은 결국 질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질투는 인간이 타인의 성공이나 행복을 보고 자신이 결핍되거나 열등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생긴다. 하지만 어쩌면 질투는 인간의 감정이기 이전에 우리의 타고난 본능이 아닐까?


질투는 나보다 훨씬 잘났다고 생각되는 사람한테는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연예인을 부러워하긴 하지만 질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주 가까이에 나와 많이 붙어 지내는 사람 가운데 질투의 대상이 숨어있는 셈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는 질투가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이 질투로 이어지는 것 같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아이가 좀 리더십 있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길 바랐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전혀 그렇지 않은 성향이라서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서 무대를 압도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 아이의 부모가 부럽고 질투도 나곤 했다.


40대가 되었을 때는 친구들이 다들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살았는데 그때는 남편이 승진했다는 얘기와 그래서 --- 사모님이라는 소리가 너무 부러웠다. 아니 너무 질투 나서 다시는 이 모임에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50대가 된 지금도 질투를 느끼는 것은 많다. 아는 지인이 가족 모두 유럽 여행을 다녀왔을 때에도 (돈이 도대체 얼마나 들었을까. 속으로 계산해 보곤 했다.) 부모가 도움을 주지 못해도 혼자서 노력해서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친구를 볼 때에도, 대학이 아닌 사회생활을 선택해서 당당히 사회인이 된 아이를 볼 때에도 나는 몹시 부럽고 질투가 났더랬다.

질투는 여전히 많지만 이제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질투를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하면,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질투는 언제나 남을 쏘려다 자신을 쏜다.”라는 맹자의 말이 있다.

질투는 타인을 향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결국 나를 향하는 칼날이다. 비교할수록 불안해지고 내면은 메말라간다.


강하다는 건 남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데 집중해 보자.

작가의 이전글기계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