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에 대하여

by 재인

오늘은 결핍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결핍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내가 태어난 1970년대만 해도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는 아니었다. 우리 할머니 세대는 직접 전쟁을 겪으셨던 분들이 많기에 그분들은 하루 세끼를 든든히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우리 엄마 세대로 오면 이제 웬만하면 하루 세끼를 든든히 먹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는 내 기억에 엄마들이 자식들 교육에 열을 올리셨다. 그 당시에는 초등학생들은 거의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5학년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엄마들이 동네 아이들을 모아 대학에 다니는 한 친구의 이모를 불러 과외를 시키셨다. 이른바 그룹과외였던 거다. 나는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가 초등학교 때는 보통의 아이들보다 조금 느린 아이였다고 한다. (내 기억엔 없지만) 그래서 그룹과외 할 때 잘 못 따라간 것 같은데 나만 여자아이라서 좀 못해도 선생님이 혼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이모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야 해서 그룹과외는 2~3달 정도 했다.


어느 날 피아노가 너무 치고 싶어서 피아노 학원을 가게 해달라고 졸랐었다. 사실은 바이올린도 첼로도 배우고 싶었는데 차마 어린 나이에도 그것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결국 엄마는 나를 피아노 학원에 보냈고 내가 피아노를 열심히 쳐서 대회에 나가 곧잘 상도 타오자 큰맘 먹고 집에 피아노를 들이셨다. 그리고는 동네 엄마들이 집에 마실 같은 걸 오면 나를 불러 꼭 피아노를 치게 하셨다.


어릴 때 악기 배우는 것 외에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것을 내가 20대에 비로소 직장에 다니고부터 하나하나 해보게 되었다. 수영을 배우고 스쿼시, 테니스, 방송 댄스, 요가를 배우러 다녔다. 요리를 배우러 다니고 영어 회화반도 꾸준히 다녔다. 그렇게 내가 가진 어린 시절 결핍을 커서 조금씩 해소해 나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정말 뭐든지 최고로 부족함 없이, 결핍이란 것을 느끼지 않게 잘 키우고 싶었다. 멋 모를 때 아이가 서 너번도 입지 못할 우주복을 사고 아이가 막상 입으면 불편해하는 예쁜 옷들을 사들었다. 해외에서 유행한다는 비싼 장난감도 사들었다.


부족한 실력으로 아기를 재울 때 자장가는 꼭 영어로 불러주고 기저귀 갈 때도, 목욕시킬 때도 가급적 영어를 쓰도록 노력했다. 초등학교 때는 교과서에 나오는 학습에 필요한 장소를 미리 답사를 다니고, 없는 아이디어를 짜내 과학 실험 보고서를 쓰게 하고 책을 많이 읽게 했다.


중학교 때에는 시험 과목이 많다 보니 역사나 도덕, 기술 가정 같은 과목들은 내가 먼저 공부하고 요점 정리해서 설명해 주기도 했다. 정말이지 극성 엄마였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은 내 어릴 적 충족되지 못했던 결핍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뭐든지 부족함 없이 키우는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성향과 우리 아들의 성향은 무척 다르다는 사실을.

내가 노력으로 만들어 내어 누리는 모든 것에 대해 아이는 감사함을 모르고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결핍을 느끼지 못한 거다. 결핍을 느끼게 하지 않게 키워 놓고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전에는 결핍을 무조건 나쁘게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느 정도 결핍을 겪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완벽한 부모, 더할 나위 없는 환경, 좋은 친구들 등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세상에 사는 아이는 없을 거다.

누구나 어떤 점은 부족하고 결핍을 느끼면서 산다.

하지만 그 결핍을 잘 활용하면 원하는 목표로 가는 커다란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시절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