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인연

by 재인

요즘 시절 인연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한때 가깝게 지냈던 회사 동료들, 같이 아이를 키우며 고군분투했던 학교 엄마들, 동네에 이웃으로 지내며 서로의 부엌을 오갔던 아줌마들이 이에 해당한다.

나에게도 결혼해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를 키우며 생존하기 위해 필요했던 인연들이 있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내 애, 니 애 할 거 없이 다 같이 키우며 공동육아라는 걸 하기도 했다. 시간이 되는 엄마들이 서로의 아이를 봐주고 밥을 먹이고 놀이터에 가서 놀아 주었다.


아이가 6개월이 됐을 때부터 다시 학원에 나가기 시작한 나는 비교적 그들의 도움이 많이 받았었다. 거의 모든 주말을 아이들을 데리고 그들과 함께 봄, 가을에는 간식을 한가득 싸 들고 좋은 곳으로 소풍을 다니고 여름에는 동네 수영장에서부터 강원도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워터파크에 가기도 했다. 겨울에는 눈썰매장이 개장하자마자 눈썰매를 타러 다니고 아이들이 좀 컸을 때에는 스키를 배우게 하고 싶어 스키장에도 다녔다. 간혹 비가 오는 주말에도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가거나 아이들이 언제나 좋아하는 키즈카페를 다녔다.


온갖 박물관이란 박물관은 다 다니고 아이들 교과서에 나오는 학습에 필요한 장소도 다 찾아다니고 과학관에서 하는 실험 수업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유아기에 만났던 아이들이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많이 설레었고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뿌듯했고 고등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에는 서로의 희비가 엇갈였다.

이제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그동안 나에게 스쳐 지나간 인연도 많고 떠나간 인연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그 낯선 곳에서 어렵게 가진 아이를 같이 키우고 나에게는 힘들었던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내가 주말마다 여기저기 밖으로 나돌 때 친구들은 좋은 말로 체력도 좋다고 했다. 그 시절 나는 집에 있는 것이 많이 불편했고 시어머니라는 큰 벽이 나를 가로막아 집에서 가져야 할 안정을 찾지 못했었다.


그때 나를 따라 같이 밖으로 나돌아 준 그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나는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로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그곳에서 나는 오로지 나이고 나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그들은 내가 누구의 엄마인지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심지어 내가 몇 살인지도 모른다. 그들과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공유하고 얘기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


이 새로운 인연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또 시절 인연이 될지 모른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면서 여러 인연들과 관계를 맺고 헤어지고 그렇게 반복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삶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시절 그 인연들을 만났던 것이 나에게는 축복이고 행복이며 삶의 일부였듯이 지금 이 인연들도 나에게는 삶의 기쁨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낭독 연습을 하고 녹음을 하고 책을 읽고 독서회 발제문을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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