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수요일

by 재인

오늘은 출근도 안 하는 날이고 들으러 갈 수업도 없는 모처럼 한가한 날이다. 낭독 수업에 독서회 모임에 글쓰기 수업까지 다니다 보니 조금은 바쁜 봄날이 되어 버렸다.


오전에는 도서관 두 곳을 돌아 책을 반납하고 상호대차 신청한 책들을 대출해 오고 나간 김에 장을 보고 올 계획이다.

동네이지만 너무 추레하지 않게 옷을 입고 선크림에 립크로스만 바르고 귀에는 무선 이어폰을 끼고 출발한다. 어제는 비가 오고 온종일 흐리고 쌀쌀하더니 오늘은 해가 쨍하니 비추는 다시 봄날이다.


언덕을 올라 우선 아차산 옆에 위치한 아차산 숲 속도서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나만 알기 아까운 너무 이쁜 장소로 숲 속에 둘러싸인 그야말로 숲 속도서관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2층 높이에 층고가 높고 아득하여 집중도 잘되고 책을 읽기 정말 좋다.


도서관 뒤편에는 숲 속에서 책도 읽고 가만히 앉아 숲을 느낄 수 있는 숲 속 책 마당이 있다. 앞에는 무더위 쉼터와 어울림 정원이 있는데 앉아서 책을 보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야외 테이블도 있다. 여기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며 책을 읽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지나치고 말았다.


도서관에서 어울림 정원을 지나면 왼쪽으로 가면 워커힐 호텔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짧은 숲길이 나온다. 이 길은 우리 동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기도 한데 요즘 같은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진한 초록 향기가, 가을에는 알록달록 단풍이, 그리고 겨울에는 소복이 쌓인 눈이 반기는 길이다. 사계절 언제라도 예쁜 길이다.


길 끝에는 광진 숲나루 공원이 나온다. 이곳도 작은 규모이지만 전망대도 있고 시니어들이 커피를 내려주시는 작은 카페도 있고 옆에 구의야구장에서 가끔 아이들이 야구 경기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마침 초등학교 아이들이 경기 중이었는데 어느 한 팀이 우승을 했는지 갑자기 우렁찬 함성 소리가 들렸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한적한 공원을 가득 메우는 그 소리에 내가 우승이라도 한 양 기분이 좋아졌다.


언덕을 내려와 다음에는 어린이 영어 도서관으로 갔다. 이곳은 이름처럼 영어 원서가 가득 한 어린이 영어 도서관인데 내가 주로 상호대차 신청한 책을 빌리는 곳이다. 이 도서관은 어린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라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아이들이 신발 벗고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영어 프로그램들도 많다.


책을 빌리고 잠깐 앉아 한숨을 돌리며 이어폰을 켜니 라디오에서 마침 내가 어릴 적 좋아했던 이문세의 소녀, 변진섭의 숙녀에게, 듀스의 여름 안에서 노래가 나온다. 그 순간 얼마나 반갑고 얼마나 행복하던지.


옛 성인 공자는 화(천하에 통하는 도)를 이루기 위해 조화의 예술인 음악을 항상 접하고 몸에 익혀야 한다고 했고, 우리의 다산 선생도 개인의 수양은 물론 세상의 화평을 위해서도 음악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하셨다.

음악이 없는 세상은 분노와 원망을 풀지 못해 세상이 혼란스럽고 형벌이 가중되고 전쟁이 자주 일어난다.라고도 했는데 왠지 미국의 대통령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음악이 아닐는지.

마트에 들러 간단히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매일 다니는 이 길이 오늘따라 너무 평온해 보인다. 별것 없는 오전인데 나를 깨우는 밝은 햇살 때문인지, 불쑥 젊은 시절로 데려간 음악 때문이지, 오면서 들은 아이들의 맑은 함성 소리 때문인지, 너무 예쁜 벚꽃 때문인지 나의 마음이 행복함으로 가득 채워진다.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의 존 카밧 진 교수는 현재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판단 없이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것, 즉 자기의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것이 불교 수행 전통에서 기원한 심리학적 개념인 ‘마음 챔 김’이라고 했다.

나는 오늘 마음 챔 김 개념을 깨닫고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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