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고아
뮤지션과의 만남은 거리 문제로 인해 무산되었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기대했지만 운명이 살짝 빗겨나간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몸이 여유로우니 마음도 여유로워지는 것 같다. 이 여유로움을 즐기기 위해서 머리를 최대한 쉬게 해 줘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으려고 한다.
12/3 고아
고아에서 마지막날이다. 내일 코치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 주변 숙소를 잡았다. 내일 새벽 5시 50분 기차이다. 기차시간은 13시간 정도이다. 지금까지에 비해 긴 건 아니지만 밤이 아니라 낮에 가는 것이기에 어떨지 잘 모르겠다. 이번엔 3등석을 예매했다. 12월이 성수기라 그런지 기차표를 잡는 것이 정말 힘들다. 3층침대라는데 나는 이것을 해군에서 이미 경험해 봤기에 별 두려운 것은 없었다. 지리를 고르라길래 중간자리로 골랐다. 군대에서는 3층 침대의 중간자리에서 자기 위해서는 거의 4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클릭 한 번으로 이토록 바랬었던 중간자리를 얻었다. 그때의 4개월의 기다림이 허무하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마드가온이라는 곳이 기차역이다. 여기까지 가는데 버스가 없어 빙빙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택시를 타면 바로가지만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굳이 바로 가는 방법을 꼭 찾아야 할까? 빙빙 돌아가는 것은 더 힘들지만 더 가치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없을 수도 있다.
모든 게 무너진 것 같아서 시작한 여행이 이제 일주일 남았다. 무너진 것을 복구하지는 못하였다고 생각한다. 더 깔끔하게 무너뜨리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 <데몰리션>을 보면 나온다. 건축의 영역에서 건설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을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벽돌을 쌓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던 벽돌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마음이 많이 편안해진 것을 보면 불 필요했던 벽돌들을 꽤 치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면 벽돌을 쌓을 준비를 해야 될 것이다.
12/4 코치
아직 코치에 도착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기차 안이다. 중간침대가 가장 좋을 줄 알았던 나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해군에서의 침대보다 크다 보니 중간지역은 올라가기도 애매하고 높이도 애매한 그저 모호한 자리였다. 그래도 다행히 어제 잠을 자지 않았기에 타자마자 꿀 잠에 들 수 있었다. 코치는 내가 가는 마지막 도시이다. 이 다음에는 인천으로 간다. 인천으로 가는 것이 기다려진다. 여행에서 귀국이 기다려지는 느낌을 받으려면 확실히 1달 이상 해야 하는 것 같다. 오늘이 딱 출발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성장했는가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훨씬 가벼워졌다. 무언가를 더하는 여행이 아닌 버리는 여행이었기에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것에 기대감과 두려움이 함께 있다. 미안해할 사람도 많고 고마운 사람도 많다. 이렇게 돌아가는 생각으로 가득 차면 마지막 일주일을 그냥 허송세월 보낼 것이 뻔하다. 그러므로 다시 이곳 인도에 집중해야 한다. 일단 코치에 도착해서 마지막 도시의 분위기를 느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