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함을 쫓아서
요즘은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는 세상이 아닌 렌즈를 통해 프레임에 새겨진 세상을 보는 것에 익숙하다. 이 프레임 안의 것들은 과연 실존하는 것일까? 우리의 눈은 세상을 1차 가공해서 섭취하는 중이다. 물론 가공해서 섭취하면 기억에는 더 오래 남겠지만 날것의 생생한 느낌은 이미 떠나가버린 뒤이다. 아무리 사진 기술이 좋아져도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세상을 느끼게 해 줄 사진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도 가끔 과거의 사진들을 본다. 추억에 잠긴다. 영상 속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 따뜻한 분위기 이것은 추억일 것이다. 행복했을까? 영상이나 사진 속 나는 항상 웃고 있다. 항상 함께하고 항상 즐거워한다. 10년 전의 나는 항상 행복했던 걸까? 우리는 추억만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과거의 사진첩은 나를 거짓 추억에 잠기게 하는 것 같다. 지나고 보면 후회든 추억이든 모두 과거일 뿐이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나의 시선을 프레임 안에 담는다는 것. 마치 허상을 쫓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허상이란 실제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뜻한다. 나는 이 허상을 허무함의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허무한 덩어리들을 찾아다니는 중이다. 과거로 남겨질 추억, 휘발되어 버릴 감정, 잊혀버릴 웃음과 같이 그때는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면 정말 허무함의 덩어리 그 자체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프레임 속 거울에 보이는 껍데기의 나는 허무함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껍데기의 나는 시간의 흐름, 감정의 흐름에 따라 풍화되어 가기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작 아끼고 가꿔야 할 것은 이 껍데기의 내가 아닌 내면의 나라고 생각한다. 나의 내면에 집중하고 나의 내면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렌즈가 아닌 우리의 눈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더 깊고 생생한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허상을 프레임 안에 담아내기 위해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마치 평범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수많은 감정들을 쫓으면서 살아간다. 이 감정들은 모여서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이 덩어리는 허무함이 되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 감정들의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허무함 덩어리의 이 감정들을 모아가는 순간순간이 컷과 컷으로 만들어져 이어 붙여지면 그것이 삶일 것이다. 이 컷들을 이어 붙여서 나의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이 컷들을 내면 깊숙이 보관해 두어야 할 것이다. 어떤 태풍이 와도 안전한 그런 공간 말이다. 그러기 위해 또 다른 허상을 쫓으러 발걸음을 움직인다.
2번째 영상이다. 시간은 확 줄였지만 좀 더 확장된 이야기를 담은 듯한 느낌이다. 사실 영상에 대한 구상을 끝내고 적은 글이라 조금 끼워 맞춰진 부분도 많지만 그게 뭐 어떤가? 그저 나의 생각을 담은 영상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중이다. 이 영상도 사실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허상을 쫓고 있는 사람은 영상 속 주인공이 아닌 뒤에서 이 주인공을 프레임 안에 담으려는 나 자신인 듯하다. 허무한 세상에서 허무함을 쫓아가며 나의 시선과 생각을 영상화하는 중이다. 이런 나의 영상촬영에 대한 열정도 어느 순간 휘발되어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다. 현실의 벽에 직시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무너지는 순간에 나의 손끝을 잡아줄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