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다낭
7시 비행기를 타고 다낭에 왔다. 이 티켓을 나는 5시간 전에 예매했다. 이렇게 급진적인 여행을 한 적이 있는가? 사실 다들 머릿속에는 항상 이런 급진적인 여행을 꿈꿔봤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나도 사실 어제부터 고민했던 여행이었다. 여행에 대한 고민보다는 포기에 대한 고민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다녀와도 될까? 생각했고 그 고민의 결과로 나는 지금 다낭에 와있다. 다낭을 택한 이유는 적당한 시간대에 적당한 가격으로 갈 수 있는 외국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나에게는 한국을 떠나는 것이 중요했다. 아무한테도 나의 목적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목적지가 중요한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떠났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유현이라는 친구만 나의 목적지를 안다. 출발 직전 공항에서 통화를 했다. 그래도 나와 마음속의 이야기를 많이 하던 친구이기에 가기 전에 전화를 한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나의 목적지를 자꾸 꼬치꼬치 캐물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이 친구는 나의 여행의 유일한 연락책이 되었다.
짐은 캠코더와 백팩 하나이다. 옷은 3벌 정도 챙겨 온 것 같다. 짐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비가 오니 이 정도의 짐도 참 부담이 된다. 캠코더를 챙겨 온 이유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영상 찍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챙겨 왔다. 거창한 다큐 영화를 찍을 생각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나의 일상을 담아내는 다큐 같은 것은 시도해 보고 싶다. 보조배터리랑 슬리퍼를 안 챙겨 와서 예상치 못한 지불이 좀 있었다. 돈이 부족해지면 떠날 생각이다. 지금은 편도 티켓만 끊고 와서 귀국 편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기에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자유가 정말 쾌락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이 와장창 깨진 이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믿는다. 카톡과 인스타를 지웠다. 카톡은 지금도 너무나도 깔아서 한번 보고 싶지만 참는다. 참다 보면 무뎌질 것이다. 지금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오로지 집중해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3일 치 숙소를 잡았다. 호스텔인데 이 정도면 가격 대비 시설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주변에 너무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한국인이 너무 많이 보여 외국이라는 느낌이 많이 없다. 다낭이라는 도시를 흔한 여행지라고 생각해서 큰 기대를 안 했었는데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현지 느낌이 꽤 난다. 공항에서 자꾸 택시 타라길래 그냥 걸어서 40분 정도 왔다. 고어텍스 재킷이 있었기에 난 그냥 걸었다. 근데 좀 덥긴 했다. 하지만 나의 여행은 걷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머리는 묶고 다닌다. 뭔가 색다른 이미지로 보이고 싶었다. 어느 순간 싫증이 나면 삭발할 생각이다. 여권은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겠다. 지금 여권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이다. 아침으로 포켓몬 빵을 먹었는데 방금 스티커를 한번 뜯어봤다. 난 이런 것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이브이가 나왔다. 내가 포켓몬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브이는 내가 알기로 진화의 돌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진화하는 포켓몬으로 알고 있다. 뭐든 될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어찌 보면 마음의 변화를 위해 여행을 떠나며 얻은 스티커로써는 최고의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의 나를 잠시 내려두고 새로운 그림을 원하는 나는 이 새로운 도화지에 과감하게 붓칠을 시작해 보려 한다.
항상 처음 일기에는 이렇게 열정이 불탄다. 하지만 점점 식어가기에 “열”정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닐까? 항상 뜨거우면 고장 난 것이다. 열이 식기 전에 최대한 많이 앞으로 많이 전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식어버리면 다시 연료를 때우기 전까지는 정착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난 좀 뜨거워지고 싶다. 너무 차갑게 식어버린 나의 마음은 연료가 부족해 보인다. 지금까지 나는 전진을 위한 열정이 참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기에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제자리걸음 중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만큼은 과감하게 전진해 보려 한다.
비행기에서 잠을 안 잤더니 졸리다. 5시간의 비행이 참 애매한 것 같다. 자기도 그렇고 안 자기도 그런 시간이다. 그래도 싼 가격에 빠르게 도착했기에 불만은 없다. 빨리 숙소에 체크인하고 좀 자야겠다. 기껏 여행이나 와서 잠이나 자고 이게 무슨 여행이야?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여행도 자유여행도 아닌 그냥 자유이다. 여행을 즐기러 온 게 아닌 자유를 즐기러 온 나에게는 뭐든 가능한 상태이다.
11/4 다낭
2시에 자서 2시에 일어났다 12시간의 숙면을 취했다. 12시간을 잤다는 걸 떠나서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것이 나는 참 좋다. 짐승같이 살아가는 것 같다. 근데 지금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나의 현실의 캐릭터를 버리고 왔다면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최소한의 짐승으로써의 욕구 같은 것 아닐까? 생각한다. 최소한의 인간성만 지닌 채로 자유를 찾는 중이다. 코딩할 때도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코드를 수십 번 수백 번 봐도 해결 안 될 때가 있다. 그땐 적어둔 코드를 다 지우고 다시 짜보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나의 상태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비주얼 스튜디오까지 지우면 안 된다. 그것은 최소한의 인간성 같은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자유로워지니 술과 담배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외부의 쾌락적인 자극에서 벗어나는 것도 자유를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 같다. 근데 좀 많이 졸리다. 이건 왜 이런지 모르겠다. 분명 많이 잤는데 하품이 나온다. 아무리 짐승처럼 살아도 이 여행의 기간 동안 어딘가 나와서 글을 쓰는 시간은 꼭 가져야겠다. 물론 밥도 먹으로 나와야 한다. 여기는 보통 한 끼를 7,8만 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듯 싶다. 10만 동이 나오면 단위가 너무 커서 깜짝 놀라지만 사실 한국 돈으로 5,000원 정도이다. 요즘 한국에서 5천 원으로는 라면에 편의점 김밥 정도 먹는다. 돈에 대한 생각은 최소한으로 하려고 한다. 숫자에 너무 종속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내가 사치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왓츠앱을 깔아서 유현이와의 소통 창구를 만들었다. 살짝 비겁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주기적인 연락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생존 신고용 사진이나 한 줄 일기 등을 보낼 생각이다. 최소한의 연락을 통해 현실과의 통로를 최대한 줄이며 낯선 이곳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