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다낭
다낭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날 지금까지 중 가장 큰일이 생겼다. 신경치료를 하고 온 부분에 끼워둔 왁스가 빠진 것이다. 이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신경치료 중이었다. 사실 내가 포기하고 온 것들 중 가장 걱정했던 한 가지가 이 치료 중인 상태의 치아를 여행의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가? 였다. 걱정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이 치료 중에 끼워둔 왁스가 양치하다가 툭하고 빠져버렸다. 갑자기 여행이 끝나는 느낌이었다. 사실 1주일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학교로 돌아간다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다닐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돌아가서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들을 수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가기가 너무 싫다. 이렇게 돌아가면 내가 더 위축될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 여행에서 경계하는 수치적인 부분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숙소, 벵갈루루행 비행기를 모두 예매해 둔 상태였다. 처음엔 이 왁스가 빠졌을 때 이게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운명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니 어제 낮에 내가 왜 벵갈루루행 비행기를 예매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원래는 쿠알라룸푸르를 가서 예매하려 했는데 별생각 없이 갑자기 예매했다. 한국행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에 이 벵갈루루행 비행기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운명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내가 쉽게 타협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해 둔 것 같다. 그래서 포기하고 주저앉기보다는 일어나서 해결책을 고민해 보았다. 쿠알라룸프르에서 치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왁스 정도는 얼마 하지도 않을 거고 그곳에서의 치과비용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치료를 하고 올 때보다 절대 비싸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급하게 쿠알라룸푸르 치과를 찾다 보니 한국인이 하는 치과를 찾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거기를 가기로 했다. 이걸로 어느 정도 치아에 대한 나의 걱정은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이걸로 또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임시 크라운과 새로 부착할 임시 왁스가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게 떨어진다면 그때는 정말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한국으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이런 걱정을 줄이고 이 부분의 치아에 접촉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다. 마음을 많이 비워 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스트레스가 생겨버렸다.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또 움직여야겠다.
저녁을 먹고 왔다. 스테이크를 먹었다. 엄청 대단한 걸 먹은 건 아니지만 여기 와서 먹은 거 중에는 가장 큰 소비를 하였다. 그래봤자 한국에서 2만 원도 안 되는 돈이긴 하다. 그래도 마지막을 스테이크로 장식하니 괜찮은 것 같다. 다낭에서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면 뭐 별거 없다. 그저 먹고 자고 폰게임 하고 넷플보고 침착맨 보는 것들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나의 쓸대없는 걱정들을 내려놓고 하니 정말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런 삶을 일정 기간 이상 반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 움직이기 시작하려는 것이다. 나름 쉬었으니 이제 일어나 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어제 일어난 치아 문제로 다시 주저앉을 뻔했다. 주저앉지 않도록 운명이 나를 이끌어주면 좋을 것 같다.
일하던 카페에서 10월 월급이 들어왔다. 뭔가 생각보다 더 들어온 기분이다. 일일이 계산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사실 돈이 안 들어와도 할 말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챙겨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정말 주변사람 복이 참 많은 것 같다. 이것은 누가 봐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나의 주변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내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떠나기 전 나는 자기혐오에 빠져있던 것 같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들은 씻어내고 건강한 마음으로 그저 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11/10 쿠알라룸푸르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쉽지 않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지하철은 굉장히 잘 되어있지만 거스름돈을 주지 못하는 기계라서 돈을 딱 맞추어서 티켓을 사야 한다. 지폐로만 환전을 해온 상태라 코인이 없어서 잔돈을 위해 빵을 사 먹었다. 결국 어떻게든 이곳 체라스에 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할렘가 느낌 나는 동내이다. 이런 느낌의 동남아는 처음이다. 방금 나가서 나시고랭을 먹고 왔다. 제대로 갖추어진 식당은 주변에 딱히 없지만 이렇게 푸드코트 같은 느낌의 식당이 꽤 있다. 콜라에 나시고랭 먹는데 11링깃 정도니까 3,500원 정도이다. 이 정도면 적당한 한 끼가 가능하다. 확실히 이빨에 대한 걱정이 가득 차있어서 식사량이 줄었다. 그리고 이곳 숙소도 심상치가 않다. 뭔가 굉장히 낡은 숙소인데 신기하게 체계적이다. 나를 조금만 내려둔다면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인도를 가기 전에 청결에 대해 내려놔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이곳에서 살짝 맛보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짧게 적고 내일 치과를 가야겠다. 사실 이번 여행 중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잘못되면 허무하게 돌아가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저 내일의 운명에 나를 맡기며 나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