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쿠알라룸푸르
치과를 다녀왔다. 치과 선생님이 생각보다 너무 친절해서 놀랐다. 내가 걱정하던 부분을 모두 해결해 주시고 나의 다음 선택까지 도움을 주셨다. 어떻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으며 내가 가지고 있던 걱정들이 정말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 다시 자유를 향해 가야겠다. 그래도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유럽여행에서는 소매치기를 1순위로 조심했다. 인도에서도 물론 소매치기는 조심해야겠지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치아의 상태이다.
오늘은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이름은 모른다. 사진 한 장만 함께 찍었을 뿐이다. 여행지에서 만나서 현실까지 이어올 인연이 아니라면 굳이 이름을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말레이시아 사람이고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치과를 가려면 좀 멀어서 버스를 타야 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 타는 곳에 갔는데 어떤 버스인지 몰라서 앉아있는 친구한테 물어보았다. 그러니 어디를 가냐고 물어보고 이걸 타면 된다고 이야기해 줘서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리고 내가 버스 요금에 대해 물어봤는데 한국으로 치면 티머니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한다. 비자키드는 안되냐고 하니까 안된다고 했다. 돈을 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자 이 친구가 그냥 자기가 2명 찍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이런 선의를 받아서 그런지 굉장히 고마웠다. 내가 돈을 주려고 했는데 받지 않았다. 사실 이런 거에 돈을 받으면 별로 쿨 해 보이지 않긴 하다. 그래도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주려는 시도는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좀 더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돈은 사실 받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선물 같은 것일 것이다. 마침 지갑에 천 원짜리를 4장 들고 왔다. 여기서 이 한 장을 사용했다. 아마 가치는 버스 가격이랑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서로에게 전달된 감정이 있으니 서로에게 이득인 거래였을 것이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고 그리고 타고 가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영어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이것저것 물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유럽여행에서 느꼈던 여행의 가치를 느껴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친구가 살짝 헤매는 바람에 한 정거장 늦게 내렸다. 내가 바깥쪽에 앉았다면 후다닥 내렸겠지만 안쪽에 앉아있어서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다. 그렇게 버스를 내리며 그 친구와 작별 인사를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말 인상 깊은 만남이었다. 그 친구는 좀 쿨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머릿속에는 이 친구의 이미지가 말레이시아 청년의 평균 이미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도 한국에서 외국인을 대할 때 각자가 비공식 외교관인 마냥 한국의 이미지를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우리의 작은 도움이 그들에겐 한국인에게 받은 도움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말레이시아를 둘러보았다. 어제는 공항에서 좀 헤매어가지고 숙소 오니 늦고 피곤하고 해서 아무것도 못했다. 다낭에서는 이 일기의 제목이 그냥 자유였다면 말레이시아부터는 자유기행이다. 자유를 찾아가며 느끼는 것들을 적는 것이다. 느끼려면 움직여야 한다. 자유를 누리며 마음속 찌꺼기들을 다 버려냈다면 이제 나만의 자유를 찾아 자유롭게 단단한 나를 만드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내일부터 여행을 시작할 생각이다. 거의 1달간의 여행이 진행될 것 같다. 순탄하게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11/12 쿠알라룸푸르
비가 온다. 이번 여행에서 보는 비 중에 가장 무거워 보인다. 오늘 마침 유명한 동굴을 가려고 했는데 이런 상태로 동굴은 무리일 것 같아 일단 원래 저녁에 가려했던 쇼핑몰을 가야겠다. 거기서 비가 그칠 때까지 좀 기다리며 점심 먹고 하다가 근처 공원 구경하고 비가 너무 오면 그냥 숙소로 돌아와야겠다.
가장 무거워 보였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강한 햇빛으로 바뀌었다. 선크림을 안 바르고 나왔다. 나의 외면은 이 여행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 여행은 나의 내면에 대한 여행이다. 쇼핑몰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이 정도로 세련된 쇼핑몰일지는 몰랐다. 식사는 그냥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했다. 쇼핑몰을 나와서 보니 정말 발전된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이 정도로 크고 세련된 쇼핑몰은 물론 방콕에서도 꽤 있었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와 방콕의 차이는 쇼핑몰을 나와서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방콕은 관광산업의 발전으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든 쇼핑몰들이 모여있는 느낌이라면 이곳 쿠알라룸푸르는 그냥 발전된 도시처럼 보인다. 그 발전에 맞게 빌딩들과 쇼핑몰들이 생기는 것 같다. 마치 동아시아의 주요 도시들과 비교해 봐도 전혀 꿀리지 않는 도시인 것 같다. 그리고 이곳의 매력은 이런 도시의 모습과 동남아시아 특유의 느낌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통편이나 그런 것들을 보면 굉장히 체계적인 도시라고 느껴진다. 물론 싱가포르가 훨씬 체계적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억지로 만든 멋진 모형도시 같은 느낌이지만 이곳은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 있다. 동남아 도시 중에 만족도를 표현하자면 단연코 1등일 것이다.
바투 케이브에 왔다. 오랜만에 관광지를 온 것 같다. 여행객이 참 많다. 그렇지만 그만한 가치도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이곳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아서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그저 느낌만 보면 동굴이 엄청나게 거대하지는 않은데 이 동굴과 힌두교 신들의 조각들이 굉장히 조화로운 것 같다. 동굴이 밑에 있는 것이 이니라 산 위에 있다 보니 계단이 가파르다. 그래서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 올라와서 동굴을 보면 충분히 올라올만한 가치는 있다. 흔히 생각하는 동굴처럼 막 시원하지는 않지만 뭔가 신성한 느낌이 드는 동굴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원숭이가 엄청 많다. 길거리에 이렇게 원숭이가 많은 것은 처음 본다. 이 원숭이들은 관광객들과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관광객을 괴롭히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는다. 관광객을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 정도로 생각하는 느낌이다. 이제 내려가야 하는데 땀을 다 식히고 가야겠다. 정상에 있는 벤치에 한번 앉으니까 다시 일어나기가 힘들다.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