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스러움과 사랑스러움 사이

내 성장 한 스푼, 취미 생활

by 골드가든

나도 이제 그림 그리는 여자야~!!

나는 딱히 특기, 취미라는 게 없었다. 취미, 특기가 뭐냐고 묻는 질문이 많았던 20대 때는 지어내는 것이 참 곤욕스러웠다. 왜 묻는 것이지? 취미랑 특기가 없으면 안 되는 건가? 없는 사람이 진짜 나 밖에 없어? 늘 이렇게 생각을 하였지만 굳이 따지며 물을 군번은 아니었다. 늘 을의 입장이었으니... 미래의 언젠가는 꼭 갑의 입장이 되어서 내게 취미와 특기를 묻는 사람들에게 되물어보고 싶었다.

"그런 거 없는데요. 꼭 있어야 해요?"

최대한 까칠하게 물어보리라, 마음먹었었다.


내가 취미, 특기가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아주 정상적이었다. 나는 간신히 과자 몇 개와 라면, 컴, 초콜릿, 음료수, 아이스크림을 파는 1.5평 남짓되는 작은 슈퍼 1개가 있는 아주 조그만 시골에서 자랐다. 흔히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말하는 분식점 하나 없었고, 문방구 하나 없었다. 우유는 학교에 들어가서 먹어봤으니 슈퍼에서는 유통기한이 짧은 유제품은 팔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학원이라는 것은 구경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시골에서 무슨 취미 생활을 하고, 어디에 내봐도 그럴싸한 특기를 익힐 수 있었겠는가? 취미 생활을 공기놀이, 양말 꼬매기라 적을 수 없고, 특기를 소 똥 치우기, 고무줄놀이라고 적을 수는 없었다. 피아노를 배워본 적은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버스를 타고 30분이나 걸리는 읍내에 가서 배웠는데 그것도 한 8개월 배운 것이 전부였으니 취미도 특기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사람이 어디 나 한 명뿐이겠는가? 도시에서 자랐다한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적을 특정 취미나 특기가 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들도 나처럼 그 칸을 적는 게 힘들었겠지? 난 특기는 늘 '없음'으로 적었고, 취미 칸마저 심심하게 방치할 수 없어 만만한 '독서'라고 적어오곤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책을 1년에 2년 정도 읽으면 참 많이 내 안을 채웠구나, 하며 만족하는 단계였다. 그리니 취미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뭐라도 장식해야 나란 사람을 알릴 수 있으니 말이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 교과 과정들만 따라 바보스럽게 성실하게 살아온 탓에 공부 외에는 뭐하나 잘하거나(뭐 그렇다고 공부를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좋아해서 시간을 따로 들여본 적이 없으니 '독서'라도 적어야 그나마 빈칸으로 내버려 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난 지원서, 이력서, 자기소개서의 특기, 취미란에 뭔가를 고민 없이 쓰는 사람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난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난 그동안 뭐를 했나? 리코더라도 열심히 연습할 걸...

나도 취미, 특기란을 적고 싶다.





난 미술과 음악에 자신이 없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없으니 더 멀리했다. 연애 시절, 남자 친구였던 남편이 미술관을 가자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 뭐야. 이 사람 뭐지? 왜 미술관을 가자고 하지? 고흐의 작품전을 한다는데, 그건 미술 이론 시험을 보면 바이 바이 끝내는 사람 아니었던가? 연애 시절이었기에 난 말없이 따라나섰지만 미술관에서도 다리만 아플 뿐 딱히 관심이 가질 않았다. 자신이 없으니 난 미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음악이라고 다를 건 없었지만 미술은 특히 접근하기 어려운 세계였다.


그런 내가 지금은 취미로 초벌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40을 앞두고 육아에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이었다. 매일 재미난 일도 없이 반복되고 짜증스러운 육아의 쳇바퀴 속에서 남편에게 아이 둘을 맡기고 홀로 마을 여기저기를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마음이 좀 편해지리라 생각했다. 내게 매달리는 아이들 없이, 넘어질까 혹은 차에 부딪힐까 날이 서 아이들을 감시하며 걷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내 홀몸에만 신경 쓰며 걷고 싶었다. 몸이 고생하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좀 정리되겠지, 싶은 마음에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걷다 갑자기 나도 뭔가를 배우고 싶어졌다. 동네 검색을 하다가 '세라워크'라는 곳을 찾게 되었다. 토요일에도 근무를 한다고 하였다. 당장 전화를 걸었던 게 인연이 되었다. 그렇게 일일 체험을 하고 나서 나는 도자기 핸드 페인팅 과정을 수강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수강생이다. 코로나 시국에는 완전히 쉬었으니 배움의 시기가 더 늘어졌다.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동안 내가 가장 못하고 자신 없다고 생각하는 영역인 미술에 도전을 했고, 이제는 싫지 않고, 자신이 없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겠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

자신에게 늘 자신이 없는 부분, 늙어 죽을 때까지 내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고, 못할 것 같은 영역을 뚫고 내 것으로 만들어본 경험을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가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아는가? 이제는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공방에 가서 그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숱한 유혹을 이긴 흔적이 있다. 그동안 거부해 왔던 영역이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는다. 좋아하지 않은 것을 좋아하게 만들고, 잘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유혹들을 이겨내야 한다.

이게 밥 벌어 먹이는 것도 아닌데 이쯤에서 포기할까? 뭐 해도 느는 것 같지 않은데 그만 포기하자,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걸 지금 한다고 뭐 내 삶이 크게 달라지겠어? 이런 수많은 생각들이 공방을 가기 위해 마음먹을 때면 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누가 커피라도 한 잔 하자고 하면 이 때다, 핑곗거리 생겼다, 하며 안 가려고 할 때도 많았다. 잘하지 않은 것, 자신 없는 것을 할 때는 그렇다. 그 결심이 꼭 바람 앞에 선 등잔불 같다. 하지만 이런 약한 의지라도 붙잡으면 그건 이미 그날의 성공을 이룬 것이다.





부담스럽지만 늘 이 부담감을 이기려는 나의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는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실력이 늘고 이제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도 될 실력이 되었다. 수제로 그린 그릇이라며 그 정성에 감동을 받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의 작은 의지가 빛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나 빈말이라도 "어쩜 이렇게 잘해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의 허점이 나의 특기로 변경되고, 내가 한층 더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기도 했다.

이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나의 취미는 사랑스러움이 되었다. 내게 없는 재능 중 하나여서 너무도 부담스러웠던 것이 이제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가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큰 성공이지 않은가? 이 도전이 내게는 참 의미가 있다. 일단 나를 취미와 특기가 있는 사람이 되게 했고, 그리고 그 고급스러움과 사랑스러움 사이에서 나를 한 뼘 자라고 치장하게 했다. 무엇보다 이 작은 성공으로 인해 난 의지가 약한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난 아직 못하는 여러 영역을 도전해볼 마음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찾지 못해 우울했던 날들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취미라는 것이 이런 것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왜 이력서에 취미, 특기 칸을 적어 넣는지 말이다.

취미와 특기는 끈기이며, 그 사람의 생활의 활기를 냄새 맡고자 하는 칸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