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유능해지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나를 키우기
나는 이적이란 가수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적의 어머니인 박혜란 선생님은 더욱 좋아한다. 그리고 난 박완서 소설가를 좋아한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그분들을 존경한다. 공통점을 알아차렸는지 모르겠다. 그분들은 나와 같은 주부에게 꿈을 주신 분들이시다. 전업 주부로 살다가 40대에 움직이신 분들... 물론 그들의 생활이 갑자기 40대에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싹이 흙 위로 봉긋 자신의 작은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그 새싹을 보지만 사실은 흙 안에서 얼마나 꿈틀거리며 자라고 있었겠는가! 그것처럼 아마 그들의 30대도 뿌리를 내리며 땅 위로 나오기를 기다렸던 시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으니, 난 그냥 혼자 추측을 할 뿐이다. 다만 그들이 공식적으로 말씀하시길 40대 때부터 공부하고, 등단도 하고, 일도 하였다고 했으니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내가 20대 때에도 박혜란 선생님과 박완서 소설가의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냥 막연하게 "와~ 대단한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가슴에 큰 감명의 울림은 없었다. 그냥 '멋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30대를 보내고 나보니, 40대에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가슴 벅찰 정도의 멋진 도전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역시 가장 큰 공감은 사람이 그 상황에 처해보는 것이다.
20대에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키우고 주부로 살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때를 기다리셨을 것이다.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개발시켰다. 자식이나 남편에게 자기 자신을 맡기지 않으셨다. 능동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킨 것이다. 말씀을 자세히 하지는 않으셨지만 그 과정이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전업 주부가 움직이면 집안 식구들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이전에 아내, 엄마가 해주던 부분들을 나눠서 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반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박혜란 선생님도, 박완서 소설가도 그런 과정이 없었을까? 그런데 그런 모든 과정들을 말로써 설득하기도 하고, 또한 스스로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감동을 주어 가족 스스로 설득당하게도 하셨을 것이다. 난 그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리고 감사하다. 멋진 여성으로, 멋진 엄마의 모습으로 살아주셔서. 존경할 수 있도록 살아주셔서, 그리고 롤모델로 정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내가 좋아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스타 강사인 김미경이다. 그녀는 늘 꿈을 얘기한다. 난 그녀의 강의를 들을 때면 눈물이 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꿈을 꾸고 싶고, 그 꿈을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왜 좋냐고 물으면.... 그냥... 좋다. '꿈'이란 단어를 듣고 있으면 내가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엄마로, 주부로만 있고 싶지 않다고 내 내면에서 소리치는 것 같다. 그리고 혹여나 일상생활에 지쳐 꿈이란 걸 멀리할까 봐, 종종 김미경 강사의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서 듣기도 했다. 때로는 그냥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울고만 있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겠다. 꿈이 조금씩 똑똑해져야 하지 않을까? 꿈이 조금씩 자라야 하지 않을까? 내 꿈인데 내가 성장시켜주지 못하면 누가 내 꿈을 성장시켜줄까? 꿈을 발현시키고 싶었고, 내 꿈에게 칭찬해주고 싶었고, 내 꿈에게 위로도 해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도, 환경을 탓하는 것도 그만하기로 했다.
사실 꿈을 꾼다는 게 마냥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설레고 좋지만은 않다. 때때로 밀려오는 '네가 어떻게 그걸 해?', '넌 이제껏 주부로 지냈잖아. 할 수 있겠어?', '잘나고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등의 내 설렘을 좀 먹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구마구 든다. 그럴 때면 꿈을 꿔서 올라간 기분의 4배만큼은 지하로 떨어지기도 한다. 혹시 조울증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간혹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이런 불안정한 이 상태는 내 꿈과 내 현실의 갭이 너무 크기에 일어나는 부조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이 갭을 줄일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부터 해나갔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처음에는 '나는 애만 키우는 사람이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자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가 아니기에 그 아이들에게 내 꿈을 이뤄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도 자신의 꿈을 찾는 설렘과 절망감, 또 이겨내면서 얻는 쾌감, 유능감 등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자신의 꿈을 찾는 과정, 이루기 위해 준비해 가는 과정, 이루는 과정을 겪어보지 않고 자라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인생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큰 후, 내 아이들에게 '너희들 돌보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라고 얘기하며 후회하고, 죄책감이 들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힘들 아이들인데...
그다음으로는 돈을 버는 사람이고 싶었다. 남편에게 의지해서 돈을 받아쓰는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작은 돈이라도 내 노력과 내 시간과 내 능력을 투자해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자기야~ 나도 돈 벌었어."라고 말이다. 경제적 인간으로 당당히 서 있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번 돈으로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싶었다. 내 아이들에게 멋진 신발 한 켤레 사주고 싶었다. 남편 돈이 아닌 내가 번 돈으로, 그것도 생색내며!! 나 생색 내보고 싶다.
세 번째로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었다. 동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접하는 그림책, 동화책을 나도 써서 내 아이들, 내 손자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고 했다. 내가 미래의 어느 날 죽게 되어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라도, 책을 통해 내 이름 석자가 내 아이들과 내 자손들에게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러기에 글만 한 것이 없겠다 싶다.
네 번째로는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나 또한 생계를 할 수 있도록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싶다. 어쩌면 나는 이걸 가장 이루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난 가르칠 때 기쁘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가 도움이 되어 누군가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고, 보람된 일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해보니 내가 해야 할 일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글을 쓰는 장점이기도 하다.) 나는 당장 도서관으로 갔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많은 책들을 읽다 보면 내게 답을 명확하게 주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방학 기간에는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도서관에 가보니 참 책이 많았다. 어쩜 이렇게도 많은 책이 있을 수가 있을까? 놀랬다. 더 놀라운 건 이렇게 많은 책들이 대부분 처음 보는 책이란 사실이었다. 일 년에 2~3권의 책만 읽었던 나였다. 그것도 육아서로만. 그러니 난 "애들 엄마로의 나"만 꺼내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기 계발서들을 마구 읽기 시작했다. 폭식하듯이 읽어댔다. 그동안 지식을 먹지 않은 상태여서인지 책의 내용들이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다 깨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움직이고 싶어 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내게 얘기했다. "일어나 움직여. 뭘 망설이는 거야. 지금이 가장 젊어. 이루지 못할 것은 없어. "라고. 난 습관에 관한 책들,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에 과한 책, 마인드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식이 깨어나고, 준비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직접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아이의 글쓰기도 봐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꿈을 갖는 거,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 책을 읽는 것은 그나마 쉬운 단계였다. 수동적인 면도 있었다. 하지만 글을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는 것, 아이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넘어짐의 연속이다. 힘들다는 얘기이다. 오늘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에는 '글쓰기 재능도 없는데 내가 괜히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나 봐.'하고 자책을 하고 짜증을 내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나도 잘하지 못하면서 아이에게 왜 그것밖에 못쓰냐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한다. 자책도 윽박지름도 결코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나를 키워가고 있다. 조금 더 유능해지고 싶어 져서 나를 구체적으로 다듬어 가려고 한다. 이렇게 움직이다 보니 조금씩 길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기대도 하게 된다. 이 발걸음이 나를 어디로 안내하게 될지 말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이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먼저 초라한 꿈이라도 꾸자. 그리고 움직여보자. 도서관도 좋고, 공원도 좋다. 학원이라도 상관없다. 그러다 보면 그 움직임이 우리를 우리가 이루고 싶어 하는 미래로 데려가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