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알어. 열심히 해봐!
나는 아직 성장하는 자식이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
내게 온 메일 한 통! 브런치팀에서 온 이 한 통의 메일에 나는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입틀막!!!! 캬오~~~. 이렇게까지 흥분할 일일까, 의아해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선물 같았다. 왜냐하면 내 메일함에는 늘 광고성 메일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입했던 쇼핑 사이트 혹은 카페 등에서 보내주는 메일 외에는 딱히 중요한 메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쌓여가는 메일함을 보고는 한숨을 쉬고, 그것을 삭제해가는 것이 일 중에 하나이다. 하루만 지우지 않아도 몇십 개가 쌓이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 내 메일함에 이런 반가운 편지가 도착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캬오~~~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나도 할 수 있는 거구나!"
늘 도전하고 시도하려는 내게 숱한 실패만 오는 것은 아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늘 뭔가를 해야만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다. 불안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목표가 없는 삶의 하루는 너무도 길고 지루하다. 전업 주부면 꿈이 없어도 되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늘 심장이 뛰는 걸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은 것은 전업 주부도 어느 사업가 못지않게 느끼고 싶은 감정이다. 큰 성공이 아닌 작은 성공일지라도 내 영역이 집 밖으로 뻗어나가고,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하는 내게 남편이 말을 걸었다.
"그래. 뭐라도 해보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아.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실패도 성공도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이 이야기를 들은 지 9년이 지난 것 같다. 난 이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이 말이 왜 내 뇌리에 꽂혔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난 그 말을 내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 시도도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실패도 없겠지만 성공도 없다!!
브런치로부터 받은 이 메일 한 통에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고, 그다음으로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중저음의 목소리는 친정 엄마를 닮았나 보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친정 엄마의 목소리가 유난히 낮았다. 기쁠 일도 슬플 일도 없는 70대의 노모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안부를 물어봐주는 자식이 있고, 그나마 시골살이에서 얻는 작은 수확들이 파동 없는 일상에 기쁨을 조금 더할 뿐, 크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메마른 감정에 익숙해진 삶이다. 그런데 유난히 저음이 된 날의 내 노모에게 나의 브런치 작가 합격 소식은 가뭄에 잠시 내려준 단비 같았나 보다. 기운 없던 소가 벌떡 일어나 기운을 내듯 목소리가 하이톤이 된 것이다. 그러더니 분주하게 움직이는 몸짓이 수화기 너머로 보였다. 아직 그럴듯한 책이 나온 것도 아니고, 등단을 한 것도 아니고,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친정 엄마는 신이 나셨다. 괜한 기대감을 준 것인가, 걱정이 될 정도로 들떠있는 엄마의 모습에 갑자기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찡...
마흔이 넘은 내가 아직도 엄마에게는 어린이구나. 자식은 늙어도 어린애라고 하더니, 내가 그렇구나. 브런치 작가... 아직 이름도 없고, 수익도 없고, 구독자도 없는 그런 상태인데 이게 뭐 크게 기뻐할 일이라고 누웠던 몸을 일어나게 할 것이냐 말이다. 내가 엄마가 되어 자식을 키워보니 자식이 학교에서 선생님께 칭찬만 받고 와도 기쁘더라. 내 일 잘 되는 것보다 내 자식이 받은 한마디의 칭찬이 더 기쁘고, 신이 났다. 그리고 자랑하고 싶어졌다. 아직은 초보 엄마이고 아직은 내 아이가 자라고 있는 중이라서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70이 넘은 우리 엄마한테 40이 넘은 나도 그런 존재였구나... 내 어린 자식들이 성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대견하고, 기쁜 것처럼 내 부모에게도 나의 성장이 기쁨을 주는 것이었구나... 자란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반드시 누군가의 자식이지 않은가? 주부가 되어 내 아이들만 보고 살고, 남편만 챙기다 보니 잊고 있었다. 난 우리 엄마, 아빠의 딸이었다. 우리의 부모들은 나의 성장과 발전을 누구보다도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는 분들이시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엄마, 근데... 지금은 아무것도 아냐. 너무 기대는 하지 마. 나 책을 낸 것도 아니고, 뭐도 아니야. 그냥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그뿐이야."
큰 기대에 실망감이 큰 법이라 혹시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렇게 얘기를 꺼냈다. 한껏 들떠있는 그 마음에 찬물을 끼얹듯 말이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친정 엄마의 말은,
"그래, 알어. 열심히 해봐."
그래, 알아! 그래도 열심히 해봐! 이게 내게 돌아온 엄마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