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날을 열기 위한 재능 씨앗 키우기.

꾸준함, 끈기가 답이다!

by 골드가든


"자기야~ 내 재능이 뭔 것 같아?"

난 늘 내 장점에 대해 궁금해한다. 40년 넘도록 궁금해하며 살고 있다. 이토록 궁금해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난, 못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는 다룰 줄 모르고, 노래도 못하며, 춤도 못 춘다. 그렇다고 성격이 쾌활해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주도 없다. 공부를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돈 버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외모가 뛰어나게 아름답지도 못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셈에 능통하여 재테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운전을 좋아하거나 잘하지 않고, 물도 싫어해 수영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자전거를 잘 타는 것도 아니다. 못하는 것이 어디 이뿐이랴.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며, 성격이 썩 좋은 편도 아니다.

가끔은 나처럼 장점이 없는 사람도 없겠구나, 싶은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는 정말 재능이 없는 사람이구나, 나 뭐 해 먹고살지? 나 내 재능을 찾아 잘해보고 싶은데... 신세한탄을 하기 일쑤였다. 세상에 잘난 사람들이 부러웠고, 일하며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특히나 전업주부였다가 자기의 숨은 재능을 발견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여자들을 볼 때면 잠이 오지 않았다. 부러운 마음에 '그 사람은 무슨 재능이 있었기에, 어떻게 재능을 발견하고 키웠기에 그렇게 큰 성공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과 혼자에게 하는 질문으로 쉽게 잠을 잘 수 없었던 것이다.

재능 없는 나를 보면서 아이들은, 특히 딸은 나처럼 재능 없는 사람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 자식 잘 키우기 프로젝트"에 돌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식들은 내 뱃속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내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인 것이다. 내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기타를 가르치고, 우쿨렐레를 가르치고, 바이올린을 켜도록 하고, 발레를 배우게 하고, 수영을 배우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내 재능은 아닌 것이다.


자식이 아닌 나 자신을 찾고 싶었다. 내 안에, 내가 가지고 태어났을 재능을 찾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내 재능을 찾고 싶었다.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노래 잘하기, 악기 잘 다루기, 그림 잘 그리기, 운동 잘하기, 공부 잘하기 외에 흔하지 않은 재능들도 있다. 언젠가 한번 신애라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신애라는 자신에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재능이 있었더라."라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도 재능이라고? 어떻게 그게 재능이 될 수 있지? 그냥 재능이란 말을 붙이면 재능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얼마나 사랑이 많기에? 신애라 배우님의 그 말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재능이란 게 뭐야?

내가 생각해 온 재능이라는 것은 상을 받게 하는 것, 칭찬을 듣게 하는 것, 돈을 벌게 하는 것 등 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재능이라는 녀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난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을... 가장 가까운 내 남편부터 살펴보았다. 내가 본 남편은 참 다재다능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공부도 잘했고, 달리기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고, 말도 참 재미있게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린다.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는 처음부터 이렇게 잘했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물론 그건 아니지만, 재능이라는 건 타고나는 것이니까 처음부터 남들보다 더 잘했을 것 같아."

남편은 나의 말에 귀엽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 웃는 이유가 뭐지? 내 말이 그렇게 웃긴 건가? 이 질문이? 그럴 리가! 그럼 내 말이 어처구니가 없어 비웃는 거야, 설마? 웃는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내 얼굴을 일그러져갔다. 정말 궁금한데, 궁금해서 미치겠는데 말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냥 꾸준히 하는 거지."

꾸준히? 꾸준히 하는 것이 재능이라고? 그렇게 나는 내 생각의 울타리를 넘어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재능이라는 것,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재능이라는 것들은 "결과"를 말하는 것이었다. 난 과정을 보지 않았다. 잘 다듬어지고 잘 완성이 된 결과물을 보고 그것이 그들이 가지고 태어난 재능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사과씨의 재능은 사과 열매를 결실해 내는 것이었고, 대추씨는 대추 열매를 잘 키워내는 것이었고, 겨자씨는 큰 겨자 나무로 키우고 열매를 얻는 것이었다. 각 씨앗들은 그들이 가진 재능을 열매라는 것으로 보여준 것뿐이었다. 난 그 열매만 보고 그들이 싹을 틔우기 위한 고통과 줄기를 뻗어내기 위한 노력과 태풍에 버텨낸 그 끈기를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림을 그렇게 못 그리는 것은 아니다. 운동도 그렇게 못하는 편이 아니고, 피아노는 안 배워서 못 치는 것이지, 배웠는데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노래는 성대결절이 있기 전에는 적당히 고음을 냈던 것 같고, 공부도 적당히 했다. 요리도 적당히 잘하고, 청소도 적당히 잘하며, 아이들도 적당히 잘 돌본다. 컴퓨터 다루는 것은 해볼 기회가 많지 않아서 해보지는 않았지만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두세 사람들과 친밀히 소통하며 지낸다. 그런데 내게는 늘 끈기가 없었다.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빨리빨리'의 대표주자가 바로 나다. 나는 빨리빨리 익기를 바라고, 빨리빨리 자라기를 바라고, 빨리빨리 결과를 내기를 바랐다. 그 과정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했다. 특히 내 시간을... 내가 완성될만한, 내 재능이라는 것을 발현시키기 위한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했다. 조금 안되면 바로 이른 포기를 했다. 그러면서 내게 말을 했다.

"이것도 내 재능이 아니었군!"

그것이 재능인지 아닌지 확인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싹이 나오고 있는데 그 조그마한 싹을 보고는 열매가 열릴 것 같지가 않으니 뽑아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한 번도 내 때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



작년 봄 즈음이었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강낭콩 5알을 가지고 왔다. 그것을 집에서 키우고 관찰 일지를 작성하라는 과제가 있었다. 나는 집에 있는 작은 빈 화분을 흙으로 채웠다. 그리고 흙을 파서 그 강낭콩을 넣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딸아이가 그랬다.

"엄마, 그렇게 흙에다 바로 강낭콩 넣으면 안 된대."

"응? 그럼 어떻게 해?"

"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 싹이 잘 나오게 하려면 탈지면을 물에 흠뻑 적신 후, 그 안에다 강낭콩 씨앗을 넣고 퉁퉁 불리래. 겉껍질이 터질 때까지 불리고 나서 흙에 넣으면 싹이 더 잘 나온대."

우리 안에 있는 재능이라는 씨앗에도 물을 줄 필요가 있다. 말라비틀어진 씨앗은 땅에 심어도 싹을 틔우지 못하고 그냥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알아온 강낭콩 싹 틔우기 비법처럼, 우리 안에 있는 재능에도 물을 주고 햇볕도 주면서 그것을 불리기도 하고, 영양분을 주어서 키워야 한다. 그래야 강낭콩이 줄기를 뻗고, 잎을 내면서 더 자라고, 꽃을 피운 후 열매를 맺어 강낭콩의 시대를 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강낭콩 씨앗의 재능이었음을 비로소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난 나의 시대를 한 번도 열어보지 못했다. 퉁퉁 불려보지도 못했다. 그러니 지금은 작다. 아주아주 작다. 이제는 재능이라는 씨앗을 물에 흠뻑 적셔 불린 후, 끈기 있게 돌보려고 한다. 3년, 5년, 8년, 10년... 꾸준함으로 키워보려고 한다. 꾸준함은 과정이다. 그렇게 나의 과정에만 집중되니 주변의 성공과 비교도 덜 할 것 같다.

이제 나의 시대를 열 준비를 해본다. 꾸준함을 마음 팍에 새기며...


꾸준함은 재능이다. 그리고 꾸준함, 끈기는 재능을 키우는 햇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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