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한 알, 샷 추가 커피, 그리고...

- 전업 주부인 내게 꼭 필요한 것

by 골드가든

난 목구멍이 작은 사람이다. 목구멍? 너무 유아스러웠나? 그럼 유식하게 의학 용어로, 식도가 평균보다 작은 모양이다. 약 넘기는 것이 힘들다. 한 알의 약을 먹기 위해서 물 한 컵이 필요하다. 종이컵으로 한 컵이니 120cc쯤 필요한 것 같다. 다행히 잔병치레를 많이 하지 않는 건강한 체질이라서 약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어쩌면 약을 먹을 기회가 적으니 약을 넘기는 것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30대 후반쯤 되니, 아는 사람들이 비타민C를 비롯하여 종합 비타민제를 먹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남편도 좋은 비타민이라며 비타민 한 알을 날마다 챙겨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권했다. 만성 피로 증후군인 나를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랬나 보다. 하지만 캡슐 한 알 넘기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지... 아무리 좋은 비타민이라고는 하지만 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녀석을 매일 밀어 넣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냥 좀 피곤하지 뭐. 그리고 소변 색이 호박꽃처럼 샛노랗지 않으면 또 어떤가! 지금 내 식도 상태가 이런 것을...

비타민도 먹을 수 없고, 먹는 것도 썩 즐기지 않으니 내 피로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렇다고 상쾌하지 못한 상태로 사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매번 한약을 먹을 수도 없고, 내 양만큼 잠을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커피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고 마시는 커피 한 잔과 점심때의 커피 한 잔, 그러다 오후 4시쯤 마시는 달달한 커피 한 잔이 그나마 내 정신을 붙잡게 해 주었다. 반드시 아침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커피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마지막 커피는 아주 달달하게 바닐라라테로 마셔야 힘이 난다.

하지만 이것도 불혹의 나이 마흔이 넘고 나니 소위 약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면 진짜 죽도 밥도 안 되는 생기 없이 시체 같은 삶을 살겠구나, 싶어 물을 많이 마시고 화장실에 갈 각오를 하고는 비타민을 먹기 시작했다.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왜 이렇게 비타민의 한 알은 굵은 것인지... 참! 이것저것 좋은 것을 잔뜩 넣으려다 보니 알의 크기가 커진 탓인지... 그렇게 일주일에 2번, 3번 챙겨 먹기 시작했다. 훈련의 영향력이 무서운 것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는 두려움이 큰 탓인지 비타민을 먹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도 비타민을 먹는 여자가 되었다.




주방에서 드립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어찌나 우아하던지, 그리고 홈카페를 만들어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내려먹는 사람들의 모습은 또 어찌나 멋있어 보이는지 모른다. 커피 향과 커피를 대하는 모습이 현대적이며 도시적으로 보인다. 대한제국 시절에 가베를 찾았던 단발머리의 양복 입은 신사와 같은 멋스러움이 있다. 커피의 향을 음미하는 광고 속 공유를 보는 것도 같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커피를 향이나 맛으로 마시지 않는다.

나도 커피를 꽤나 좋아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이유는 전혀 다른 이유이다. 나의 커피 사랑은, 오로지 잠을 깨기 위해서이다. 더 넓은 의미로 말하자면 각성하는 의미로 커피를 마신다. 그것도 샷 추가로! 그리고 진하게! 맛은 모르겠다. 부드러운지, 신맛이 나는지, 달콤한 향이 나는 커피인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처럼 말짱한 정신이라는 걸 갖고 싶어서 게걸스럽게 마신다.

주로는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편인데 어쩌다 카페에 가면 꼭 내게 묻는다.

"샷 추가하시겠어요? 진하게 해 드릴까요, 연하게 해 드릴까요?"

"네. 샷은 추가해 주시고요, 그리고 찌~~ 인하게 해 주세요."

언젠가부터 샷 추가는 기본이 되었다. 커피에 내성이 생긴 탓인지 아니면 내 몸의 피로감이 더 쌓인 탓인지 그 전후를 따져보지는 않았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난 샷 추가하는 여자이고, 진하게 커피를 요구하는 사람이다.

"왜 그렇게 살아요?? 그냥 좀 쉬면 되잖아요."

글쎄... 그냥 좀 쉬면 되는데... 나도 안다, 그냥 더 자고, 때때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조금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는 것을.




물론 그렇다. 쉬면 된다. 하지만 난 집착적으로 아이들에게 본이 되려고 노력한다. 코로나 시국에는 2년을 거의 24시간 내 살처럼 붙어 지냈고, 코로나 시국이 조금 완화되었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에 엄마도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억울해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는 것, 공부를 해서 어제보다 더 나은 나로 만들어 가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게 전업 주부인 내게 필요한 세 번째 에너지원이다. 아이들에게 본이 되고 싶다는 마음!!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요즘 여러 육아서에서도 집안 환경의 중요성, 본이 되는 부모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을 심심찮게 읽을 수 있다. 나는 이 육아서의 내용을 내 생활에 적용하며,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주변의 지인 중 몇 명은 왜 그렇게 애쓰며 사냐고 한다.

"우리는 자기들 나이에 이미 했잖아. 공부 열심히 했고, 그리고 대학도 가서 졸업하고 일도 했잖아. 그러니 엄마, 아빠도 공부할 때 공부했다고 하면 되지 않나?"

맞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내 어린 시절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엄마가 어린 시절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는지, 아닌지 그건 엄마와 아이의 신뢰의 문제로 돌려야 하는데,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엄마가, 자기보다 30살이나 많은 엄마가 엄마의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이렇게 정리가 되니, 내가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나는 워킹맘보다는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많은 사람이지 않은가! 그래서

아이들에게 어른의 본보기가 되기로 했다.



비타민 한 알, 샷 추가한 진한 커피,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른의 본보기가 되고 싶은 내 마음이 전업 주부인 내게는 매일매일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이것이 나를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성장하고 싶어 하는 전업 주부의 에너지원이다. 물론 워킹맘은 더욱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정말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리고 응원한다. 어찌 보면 전업 주부뿐만 아니라 모든 엄마들에게 비타민 한 알과 샷 추가한 찐한 커피와 아이들에게 본이 되고 싶은 마음은 마법처럼 매일 힘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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