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육아는 아이와 함께 걷는거야, 조금 뒤에서
초보 엄마의 깨달음.
"남편, 남편. 내가 깨달은 게 있어."
알딸딸하게 취했지만 깨달음만큼은 너무도 또렷해서 기분이 좋은 탓에,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평상시 술자리 후 늦게 들어온 남편이 나를 깨울 때는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그걸 금방 잊어먹었다. 역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세상 편하게 자고 있는 그는 아마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다. 얼굴이 평온하다. 이 평온함을 깨는 것은 아닌데, 아닌데... 아닌 줄 알면서도 나의 깨달음이 스스로 기특하고 알리고 싶어서 온 몸이 근질근질하다. 내 손은 벌써 남편의 가슴팍에 대고 남편을 흔들고 있었다.
"있지, 내 육아가 힘든 이유를 알겠어."
"으음... 흠.."
불쌍한 남편... 내 거친 흔듬에 마지못해 실눈을 떴다. 그러고는 내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고는 토닥인다. 어서 자라는 뜻이다.
"많이 마셨어? 얼른 자."
"어. 많이 마시긴 했는데, 내가 내 육아가 힘든 이유를 알겠다니까."
"어. 내일 꼭 얘기해줘~"
들릴 듯 말듯한 속삭이는 목소리로 남편은 얘기하며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무슨 꿈을 꾸기에 이리도 현실로 나오기 싫은 것일까?
난 육아에 너무 힘을 들였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들 하지만 전업맘의 육아 또한 마라톤이다. 초보인 엄마는 그것을 이제야 깨우쳤다. 그리고 내 육아의 가시거리가 고작 3개월치 밖에 되지 않았다. 3개월 더 앞서기 위해서, 넉넉히 잡아 1년 앞서기 위한 육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육아는 내가 영원한 잠을 자게 되는 순간에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한다.
육아는 부모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먹이는 것, 재우는 것, 입히는 것, 안전하게 살게 해주는 것, 사랑해 주는 것, 교육시키는 것, 진로를 잘 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정신적인 지지자 역할을 하는 것 등 많은 것을 포함한다. 한마디로 육아는 내 아이가 건강한 성인으로 사회적, 관계적 역할을 잘하도록 키워내는 과정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령기 아이를 둔 부모들은 많은 영역의 육아 중 교육, 진로에만 너무 포커스를 두게 된다. 그리고 근시안적으로 방향을 설정한다. 나 역시 그렇다. 더 미시적인 눈으로 육아를 바라보았다. 영어, 수학, 국어.. 이 정도로만 육아를 규정하고 있었으니 내 육아가 힘들 수밖에... 나는 육아의 목적을 따로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공부 잘하게 해서 좋은 대학교 보내는 것, 학교에서 문제없이 크는 것 정도로 정해놓았던 것이다.
아침 7시 30분, 늦은 기상을 했다. 남편은 굿모닝, 하고 나오며 "어제 나한테 뭐라고 얘기하지 않았어?"라고 한다. 음... 좋은 꿈을 꾸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직 휘청거리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꿈속에서 이제야 벗어나려고 하는 모양이다. 파자마 차림의 남편은 습관처럼 화장실에 다녀온 후 식탁에 앉는다.
"어제 나한테 뭐라고 했었어?"
"응~ 기억은 나? 내가 자기 깨우려고 했던 거?"
"응. 그렇지. 뭐라고 했더라? 육아... 뭐시기 뭐라 얘기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꽤 집중하려고 애썼던 모양이다. '육아'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니면 짐작인가? 전업맘 둘이 만나 술을 마셔도, 차를 마셔도, 밥을 먹어도 육아, 애들 얘기만 한다는 것을 알아서?
"응. 내가 내 육아가 힘든 이유를 알았어."
"오~ 대단한데! 왜? 이유가 뭐였는데?"
"그건... 내 철학이 부족해서야!"
뭣이라! 이른 아침부터 잠도 깨지 않은 아이들과 남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철학이라니... 이건 니체나 쇼펜하우어, 칸트 같은 사람들만 하는 고리타분한 것 아닌가!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는 남편은 계속해서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드디어 내가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어떻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육아를 잘못 알았어. 애를 잘 키운다는 의미를 공부, 대학 쪽에서만 생각하고 있었어. 왜 이렇게 난 줏대가 없을까? 우리 애들 잘 키운다는 것은 결국 애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어른으로 커서 나한테서 잘 독립하라는 의미 하잖아. 자기 스스로 밥 벌어먹으라고. 근데 난 왜 그걸 공부만 잘하고 좋은 대학만 가면 밥 벌어먹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나도 SKY 못 나왔잖아. 그런데 난 잘 살아. 어렵지 않아. 무엇보다 나는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내 부모로부터 독립이 되어 있어. 힘든 일은 나 혼자서 고민도 하고 해결도 할 수 있어. "
이른 아침부터 쏟아내는 뜬금없는 나의 고해성사에 남편과 아이들은 그저 빵을 뜯으며 어색하게 잼을 바르고 있었다.
"그렇지.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우리 애들도 그렇게 살지 않을까?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면 저절로 할 수 있을까? 우리를 생각해봐. 우리 저절로 했나? 난 아니었던 것 같아.
어른이 되는 것도 연습하는 거야. 그리고 부모인 우리는 그 길을 함께 걸어주는 거야. 뒤에서!
부끄럽게도 난 아이를 3개월, 6개월 뒤의 결과점에 미리 가서 내 아이의 결과만 보려고 하고, 아이를 홀로 두고 있었다. 내게는 점수판만 있었다. 지금은 수학은 어디까지는 해야 해, 지금 영어는 토셀 하이 주니어 몇 등급까지는 되어 있어야지, 등등의 점수판만이 내 육아의 중심 목표였다. 그 과정을 걷고 있는 아이보다 훨씬 앞서 걸으면서 말이다. 아이가 내게 얘기하고 싶으나 서 있는 거리가 너무 멀어 아이는 내게 말을 건넬 수도 없었고, 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빨리 오지 않은 아이를 자꾸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는 먼저 걸어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과점에 먼저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커가는 시간을 함께 걸어주는 것이라는 것도. 조금만 뒤에서 아이를 밀어주며 함께 걸어주는 것이 내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 먼저 앞서 나가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