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한계치 없는 너!

꿈에 한계를 없애라. 무한한 아이들로 키우기.

by 골드가든

지난주까지는 여름치고는 시원해서 좋더니만 이번 주는 내내 에어컨각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는 에어컨을 켜는 것이 아까워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더위를 잊으려고 한다. 선풍기 바람은 참 선들선들하다. 각도를 잘 맞추면 내 몸통 전체를 시원하게도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선풍기를 만든 사람과 에어컨을 만든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이 더 든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면, 오늘과 같이 더운 날에는 집에 있는 선풍기 2대를 회전해 놓고 선풍기 따라 몸을 살짝씩 움직이거나, 동생과 부채 3~4개로 약, 중, 강풍 게임을 하며 바람을 만들며 여름을 이겨냈던 것 같다. 이마에 흐르는 땀,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땀은 여름이면 당연한 것이라고 듣고, 경험하고, 이겨내며 지냈다. 그러다 너무 더우면 10살짜리 아이 두 명이 겨우 들어갈만한 붉은색 동그란 큰 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첨벙거리며 놀았다. 어른들은 등목을 하며 더위를 이겨냈던 것 같다. 환경 순응적인 나와 우리 식구들은 그랬다.

아마도 선풍기와 에어컨을 만든 사람들은 적어도 환경에 순응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을 테다. 불편한 환경에 맞선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난 그동안 환경 순응적인 내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 잘하는 사회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리고 스스로 나란 인간의 한계치를 설정했고, 그리고 한계가 있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 나 특목고 가고 싶어. 과학고!"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가 내게 선전포고를 했다. 어디에서 특목고 얘기를 듣고 온 것일까? 기특하다고 말해줘야 할 상황인데, 난 의구심부터 품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알고, 현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꿈을 꾸는 것은 망상이나 비슷한 것 아닐까? 꿈만 꾸고 노력도 안 하고 있으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될 거야. 보고 있는 나도 잔소리를 하게 될 테구...'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머릿속에서 뱅뱅뱅 돌고 있는 것 같았다. 뭐라고 대답해줘야 하는데, 난 뜸을 들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 딸아이는 날 닮아 수학 머리가 약하다. 그리고 명석한 아이가 아니다. 물론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시간은 많지만 집중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집중을 하지도 못하는 아이이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도 아니고, 무엇보다 어렸을 때부터 참 늦된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과학고등학교를 꿈꾸다니...


"엄마, 나 과학고 가고 싶다니까."

간식을 먹은 식탁은 늘 지저분하다. 2가지 정도의 간식을 준비해 주었을 뿐인데도 나온 접시만 4개, 컵도 3개, 포크는 2개, 화장지도 왜 이렇게 많이 썼는지 식탁은 항상 지저분하다. 그걸 하나하나 치우는, 대답 없는 내게 딸아이는 한 번 더 얘기한다.

"아~ 과학고? 와~~ 좋다. 그런데 과학고는 어떤 애들이 가는 줄 알아?"

"공부 잘하는 애들."

"아는구나. 특히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고 잘해야 하는 건 알고 있어?"

"아니, 몰랐어. 친구들이 과학고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간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지."

"그럴 수 있지. 그럼 과학고를 나와서는 과학 연구원으로 일해야 하는 것도 알아? 예를 들어 로봇 과학자, 생명공학 연구원 등등..."

"그래? 난 의사가 되고 싶은데?"

헉!!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의사? 음... 꿈은 꿈일 뿐이지만, 이거 참.... 자기 능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워낙 느린 아이라서 학원도 다니지 못하고 있는데, 이거 참 어디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지? 그냥 다 찔러보는 것인가!! 꿈이라도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아~ 의사... 근데 의사가 되려면 의대를 가야 하는데, 의대를 가려면 공부를 엄청 잘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어."

"어. 나도 알아. 근데 과학고 나오면 의대 못가? 아이참."

속상해하는 아이는 얼굴마저 빨개졌다. 화가 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 대꾸가 마음에 안 들었다는 뜻이다. 딸아이는 내심 '니 꿈이 참 대단하다.'라고 칭찬해주길 바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난 내 아이가 그런 꿈을 꾸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메타인지가 부족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나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중학교에 가서야 공부라는 것을 해보았다. 아주 작은 시골 학교였기에 공부하는 아이들이 몇 없었고, 초등 시기에는 더더욱 공부하는 애들은 이상한 애, 취급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도 내성적인 나의 성격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대부분 놀았다. 그러다 중학교에 가니, 공부를 강조하고 약간의 공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때부터는 욕심을 부려 공부를 하였다. 그래서 전교 2등까지는 해보았다. 그리고 특목고에 대해서 어떤 선배에게 듣고는 나도 외고를 가겠다고 욕심을 부린 적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하는지 몰랐으니 교과서만 공부했다. 선행도 아닌 딱 적기 교육으로 중 3 학년 과정만! 그러니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난 그때 그게 내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일반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다 지방 국립대를 갔다. 그리고 2학년 때쯤 의대를 생각하며 다시 수능 공부를 했다. 열심히 했으나 의대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대신 간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핑계를 대라고 하면 여러 가지를 댈 수 있겠지만, 난 그게 내 한계라고 생각을 했다. 난 늘 내 한계에 대해 정해놓고 살았다. 그러니 나를 닮은 내 아이의 이런 꿈이 너무 크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읽어보니, 그들은 타고난 천재들도 아니었고, 대단한 부잣집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한계치에 늘 도전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계치라는 보이지 않은 선을 스스로 정하지 않고, 도전하고 끈기 있게 밀고 나간 사람들이었다. 나에게는 없었던 그 사실을 알고는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는데, 난 내 아이에게 보이지 않은, 아직은 생기지도 않은 한계치를 미리 설정해 놓고 있었다. 책으로 읽으면 무엇하랴. 책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을... 심지어 아직 피워보지도 않은 내 아이의 싹을 더 이상 크지 못하도록, 아이가 아닌 내가 설정한 한계치에서 분재로 키우려는 하고 있는걸.


이 깨달음 이후에는 딸아이에게 말해준다. "그래. 한번 해보자."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얘기한다.

"그래. 한번 해보자."

어쩌면 그동안은 내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이게 내 한계야'라고 얘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이 마흔이 늦은 나이라고, 내가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터무니없는 꿈이라고, 전업 맘인 내가 다시 돈을 벌 수나 있을까, 또 벌면 얼마나 벌겠냐는 것도 변명이요, 어쩌면 내가 설정해놓은 내 한계치, 보이지 않은 천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내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능력에 대한 천장이 내 아이까지 가두게 해서는 안된다. 한계치 없는 육아를 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믿음만큼 자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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