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리 집 인기쟁이.

가족을 웃게 해 준다는 것...

by 골드가든

"엄마,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괜히 짜증이 나네."

"왜? 무슨 일이 있었어? 갑자기 그러지는 않을 거 아냐. 이유가 있을 텐데..."

7월 어느 때인가...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가 그날따라 짜증을 애써 참는 모습이 보였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인상을 쓴 표정, 그리고 굳게 다문 입, 뭘 해도 귀찮다는듯한 손짓, 눈빛만 봐도 불만이 가득한 사람 같았다. 하긴... 사춘기 호르몬이 나오기 시작할 때이니 자신의 것인 감정이 자기 뜻대로 통제되지 않기 시작할 때이기도 하다. 불혹의 마흔 살 넘은 나도 내 감정을 내가 통제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10대는 오죽할까 싶은 마음에 괜히 안쓰러웠다. 하지만 난 짜증이 잔뜩 난 이 아이에게 뭔가를 해주는지 못했다.

난 남을 웃길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난 짜증이 난 사람을 안정된 상태로 가라앉힐 수 있는 재주가 있는 사람도 아닌 것 같다. 난 내가 편안하지 못한 상태의 상대에게는 편안함을 먼저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단 말인가? 난 아이의 짜증에 편안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만큼 도량이 넓은 엄마도 아니다. 아이의 짜증과 나를 분리해서 생각할 만큼 이성적인 엄마도 못된다. 그렇다고 같이 짜증을 내며 반응하는 엄마도 아니다. 아이에게 그 짜증을 조절해보라며 말을 건네는, 많이 서투른 엄마이다.


가끔 난, 내가 다른 사람을 웃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실없는 웃음이라도, 가볍게 스치는 웃음이라도 상관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나로 인해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내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만약 마법사의 지팡이가 있다면 난 이런 상태의 아이를 짜증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웃게 해주고 싶다.

짜증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난 기왕이면 즐겁고 싶다. 같은 시간일지라도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오느냐에 따라 기억이 다르다. 내가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잔향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의지를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이 절망만 했던 시간보다는 더욱 기억에 남는다. 난 내 아이들과 기억에 남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하지만... 난 아이가 짜증이 나 있거나, 화가 나 있는 상황에서는 쓸데없이 이성적이다. 머리보다 내 입이 먼저 이성적으로 나선다. 참 어설프고 서툴기 짝이 없는 엄마이다.




"띵동 띵동"

퇴근하는 남편은 늘 초인종을 누른다. 외벌이인 가장의 무게에 짓눌려 하루를 보내다가 비로소 잠시 쉬듯, 혹은 생색을 낼 수 있는 것이 퇴근길 초인종일 것이다. 자신의 퇴근을 반갑게 맞아줄 아이들과 아내의 모습을 그리며 매일 초인종을 누르는 남편이다. 초인종은 자신의 노고가 가족을 위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초인종을 누르며 안에서 가족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마인드셋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 왔어? 오늘도 고생했네."

"아빠~ 이제 왔어?"

7시 20분. 남편의 퇴근 시간이다. 그 시간을 위해 아이들은 배고픔을 참아야 한다. 아빠가 와서 다 함께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배가 고플즈음이니 아빠의 퇴근은 아이들에게 항상 반갑다.

"응? 우리 딸은 왜 아빠가 왔는데 안 나와 있었어? 숙제하느라 바쁘구나."

책상에 앉아 이마를 찡그리며 책을 째려보는 딸아이에게 아빠는 가서 백허그를 해준다. 그리고 이마를 뽀뽀를 해준다. 딸은 다시 한번 찡그리지만 이내 웃는다. 아빠가 씻는 동안에도 딸아이의 짜증 섞인 혼잣말은 계속되었다. 가지볶음, 오징어볶음, 멸치볶음, 김치, 메추리알 장조림, 김치찌개를 메뉴로 저녁 상차림을 하는 나는 딸아이의 한숨과 약간의 짜증 섞인 신음과도 비슷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걸 보는 나 또한 한숨이 나왔다. "휴~"


"오~ 오늘은 기아의 쏘크라테스, 쏘크라테스, 워워워 어..."

샤워를 마친 남편은 휴대폰에 야구 경기 생방송을 틀어놓은 채 팀 선수의 응원가를 부르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우리 가족은 늘 웃는다.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다. 같은 말도 맛깔스럽게 하고, 재미있게 하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다. 어딜 가나 인기가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능력은 가족끼리 있을 때에는 더욱 빛을 발한다. 특히 딸아이는 그의 장난을 좋아하고, 그의 유머에 함박웃음을 짓거나 깔깔웃음을 터트리며 가지런한 치아를 다 드러내 놓고 웃는다.

오늘은 짜증이 난 아이이니 아빠의 이런 행동에도 웃지 않겠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혼자 짜증을 부리고 있었잖아. 식탁으로 오는 아이는 자신의 발을 툭툭 치고, 쿵쿵 찍으며 걸어오면서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내보였다. 1차 방어를 해줘야 할 딸아이는 아직 어려서 방어 실패했고, 2차 방어막은 쓸데없이 이성적이어서 아이의 짜증의 감정을 방어해 주지 못했다. 이제 3차 방어막인 아빠가 남았다.

남편은 감정을 잘 어루만져 주고, 깊이 공감해주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잘 안다. 일부러 공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이들의 마음을 안다. 난 독박 육아에 지친 사람이라 주관으로 물들어져 있어 아이들의 감정을 바로 보지 못할 때가 많은데, 남편은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육아의 고단함에 때 묻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본다. 그리고 아이들의 힘든 순간의 마음까지 알아차린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강력한 3차 방어막은 강하다.

3차 방어막은 아이의 짜증을 막아냈다. 기아의 선수 응원가를 부르며 등장하는 동시에 딸아이는 웃었고, 그가 힘들이지 않고 하얀 이만 보이며 씩 웃는 그의 웃음에 딸아이는 또 한 번 배를 잡고 웃었다. 난 남편의 이 능력이 참 부럽다. 짜증 난 아이에게 '왜 짜증이 났어? 오늘 무슨 일이 있었어? ' 등의 질문을 하며, 답을 예상하며 머리 아파할 필요 없이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는 저 능력이 참 부럽다. 반나절 동안 난 딸아이의 눈치를 보며 같이 한숨을 쉬고, 같은 공간에서 짜증이라는 먹구름 아래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눅눅한 기분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이게 불과 10분도 채 안되어 해결이 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남편은 나처럼 육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는 않지만, 우리 집에서 가장 인기쟁이다. 난 그런 그의 존재 자체가 고맙고, 또한 그 사람이 부럽다. 그리고 또한 깊이 배우는 것이 있다. 사랑의 표현 방법이 늘 진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난 늘 진지하게 아이들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고, 글로 전한다. 부드럽게 사랑 고백을 하듯

"엄마는 이 세상에서 널 가장 사랑해.",

"네가 엄마 딸이라서 정말 좋다.",

"어딜 가나 너희들 생각뿐이야."

"엄마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너희들을 낳은 거야."

"너희들의 엄마여서 너무 좋아."

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면 나의 사랑이 아이들의 마음 깊이 닿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난치듯 말하는 사랑 고백은 진실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처럼 말을 달콤하게 하지 않지만 아이들에게 아빠의 사랑이 닿는다. 가볍게 여겨졌던 남편의 사랑 표현, 애정 표현이 아이들 마음에 들어가 스며드는 것을 보면서 사랑의 표현 방법이 다 같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들을 웃게 만들어주는 것, 가볍지만 깊은 남편의 사랑법에 오늘도 감사하며,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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