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들에게 나란 엄마는 어떻게 기억이 될까?
나는 피천득을 좋아한다. 혹 아직 살아계신다면 우연히라도 뵙고 싶다. 그의 정신이 좋고, 그의 간결하지만 깊은 그의 문체가 좋다. 그래서 가끔 그의 수필집을 읽는다. 그 중 그의 '엄마'라는 제목의 수필을 읽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그의 그리움이 내게도 전달이 되면서 '엄마'에 대한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그런가보다. 그래서 난 엄마가 정말 되고 싶었다. 아무리 야단을 맞아 토라져도 곧바로 엄마 품에 안겨 "엄마"하며 달려와 안겨와 좋아하는 존재, 그 멋지고 사랑스럽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오늘은 피천득의 '엄마'를 읽고 난 소감을 좀 적어볼까한다.
“마당으로 뛰어내려와 안고 들어갈 텐데 웬일인지 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첫 구절부터 내 마음을 애절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옆에 있어야 하는 줄 착각하는 존재인 엄마! 평소보다 일찍 유치원을 빠져나와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집으로 늦게 왔으나 엄마는 계시지 않았다. 어린 필자는 엄마를 찾아보았지만 엄마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러다 벽장 속으로 들어가 울다 잠이 들었다. 나들이 간 줄 알았던 엄마는 늦게까지 필자를 찾아 미친년마냥 뛰어다녔던 것이다. 이 경험은 현재 엄마인 내게도 큰 울림이 있었다. 그 때의 엄마의 마음을 100%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숨기까지 하니, 너 하나 믿고 살아가는데, 엄마는 아무래도 달아나야 되겠다.”
아~~ 이 절제된 대사말에서 어찌나 슬픔이 밀려오던지...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들이 다른 이의 어떤 상황에서는 두고두고 슬픔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나지 못한 때문이다.”
“내가 새 한 마리 죽이지 않고 살아온 것은 엄마의 자애로운 마음이요. 햇빛 속에 웃는 나의 미소는 엄마한테서 배운 웃음이다. 나는 엄마 아들답지 않은 때가 많으나 그래도 엄마 아들이다. 나는 엄마 같은 애인이 갖고 싶었다.”
“...왕자의 엄마인 황후보다 우리 엄마가 더 예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글귀들에서는 필자의 엄마를 향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그것도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맺는 인간관계인 부모-자식간에서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최고의 찬사이며, 크나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의 아들이 이런 말을 엄마인 나에게 해준다면? 그것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리고 피천득의 수필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대놓고 질문을 하지 않지만 질문을 받은 듯한 느낌이 되는 글귀들을 접할 때면 내가 지금 피천득 선생님 앞에서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 엄마가 왜 나를 금방 찾아내지 못하는지 나는 몰랐다.”
“...왜 그 구슬들을 내게 도로 주는지 나는 몰랐다.”
“..엄마는 내 종아리를 만지면서 울고 있었다. 왜 엄마가 우는지 나는 몰랐다.”
이 글귀들을 지나쳐 읽을 때면 내 눈의 발걸음을 멈추고, 피천득의 눈을 보고 대답하고 싶어진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어쩌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엄마는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영영 가 버릴 것을 왜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이 구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대답 대신 어린 피천득을, 그리고 어른 피천득 선생님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슬픔을 슬픔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것을 끊어 표현하는 것이 이리도 슬픈 것인지를 나는 이 수필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엄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비슷한 엄마와의 추억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표현하지도 않는 것은 아마 아직 나의 엄마가 살아계시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엄마인 나에게서 그런 마음을 갖지 않는 것 또한 아직은 내가 그들에게 살아있는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의 엄마도, 나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것이며 내 기억 속의 엄마가, 나의 아이들 기억 속의 나란 엄마가 피천득이 그리워하는 엄마처럼 기억이 되기를 바란다.
'엄마'라는 단어는 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애정하는 관계에서도, 서운한 관계에서도, 미워하는 관계일지라도 엄마란 단어는 귓바퀴를 돌다 스치듯 지나가는 단어가 아니다. 가슴에 박히는 단어이다. 누구에게나 엄마란 존재는 존재하는거니까.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내 아이들 기억 속에 남아있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표현될까? 나란 엄마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일까? 걱정이 많은 엄마? 아니면 배우기를 좋아했던 엄마? 잔소리를 많이 하는 엄마? 다정한 엄마? 궁금하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는 어떤 엄마일지...
난 그냥 '내 엄마'로 기억이 되고 싶은데... 절대적 내 엄마로 기억이 되고 싶은데... 내 아이들은 어떤 수식어를 붙여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