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어떤 엄마이고 싶습니까?

목표점이 있는 육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by 골드가든

고백하건대 나는 좋은 엄마는 못된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집에만 있기 갑갑한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한산' 영화를 보러 갔다. 마침 남편도 오전에는 쉴 수 있어서 우리 가족은 완전체가 되어 움직였다. 어린 시절의 남편에게 '이순신'은 영웅이었다고 한다. 영웅을 넘어선 '위인'. 존경하고 싶은 인물. 그 이순신을 읽고 느끼면서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그런데 8살짜리 아이에게도 '이순신'은 영웅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한산' 영화를 보는 것은 현재로 돌아온 이순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더운 여름이지만 실내의 어떤 곳은 고객을 너무 배려한 나머지 너무 추운 곳들이 있다. 영화관도 그중의 한 곳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바람막이 겉옷을 챙길 것을 권했다. 큰 아이는 5학년이고, 딸아이라서 그런지 그런 부분은 세심히 챙기는 편이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미리 챙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초등 1학년인 아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 "응"이라고 대답해놓고도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채 신발을 신고, 마스크를 썼다. 나는 말없이 아들의 바람막이를 챙겨 내 가방에 넣었다.

영화를 보는 영화관이 네모 박스처럼 느껴졌다. 닫힌 공간이 이토록 답답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유인즉슨, 영화의 사운드가 상영관의 크기에 비해 컸고, 에어컨의 바람과 온도가 살갗을 시원하게 하는 정도가 아닌 춥게 느껴질 정도로 세고, 낮았기 때문이다. 상영관의 크기가 조금만 더 컸어도, 혹은 사이드 공간이 조금만 더 있어도 이 정도로 고통스럽지는 않을 텐데 하고 느꼈다.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살이 없어 마른 두 아이들이다. 딸아이는 어느새 자기가 챙긴 카디건을 챙겨 입고 몸의 온도를 맞추고 있었는데, 아들은 아니었다. 조용히 아들의 바람막이를 입혀주고 안아줬다. 그러면서 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거봐. 엄마가 뭐랬어. 추울 거라고 했지?".

영화는 분명 너무도 감명스러웠다. 이순신의 신중함이 묻어나게 표현하는 박해일의 연기도, 그 당시 전쟁 상황도 너무도 실감이 났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이순신이 '의를 위해 싸우는' 그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으며, 감사한 마음에 이리 편하게 이순신의 삶을 엿봐도 되나, 싶은 마음에 죄송하기까지 했다. 그 감흥을 서로서로 얘기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위인이었던 이순신의 삶을 본 남편은 역시나 큰 감명을 받고, 가슴을 누르는 그 감동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몰라했다. 다 표현하지 않으면 또 어떤가? 점심 식사를 하는 중에도 우리는 이순신 앓이를 했다.

하지만 난 식당에서 아직도 춥고, 계속 앉아있는 것이 갑갑한 아들의 몸짓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왜 항상 남편보다는 내 눈에 더 잘 보이는 것인지. 계속 아이에게 경고를 준다. "그만 앉아 있어. 뜨거운 불이 앞에 있잖아." 춥다는 아이에게 "그러니 누가 반바지 입고 오래?" 하며 비난의 말을 쏟아내었다.


왜 그랬을까?... 참 나란 엄마는 좋은 엄마는 못되나 보다...



나의 거친 말과 비난의 말을 정당화시키며 남편을 설득하려는 내 모습이 참 못나기도 했다. 누구나 이 상황에서는 그럴 거라며 일반화까지 하는 엄마라니... 이런 나의 모습을 자책했다. 좋은 엄마 되는 것은 애초에 내려놓았다. 난 딱 60점, 혹은 65점 엄마만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이다.

왜 운전자 면허증을 따거나, 국가시험을 보면 커트라인이 있지 않은가? 60점. 그것만 넘으면 그래도 통과, 합격을 시켜주니, 혹 엄마 면허증이 생겨도 60점이 커트라인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딱 60점 엄마가 되기로 했다. 100점을 만점으로 생각하니 내 육아가 힘들고, 아이들이 거친 아이들처럼 느껴지고,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란 생각에 자책을 하게 되니 애초에 60점 만점으로 내려놓고 육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100점 만점으로 정해놓고 엄마 역할을 하려고 할 때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고, 아이들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떼를 부릴 때면 무너지곤 했었다. 하루 일과를 무질서하게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내가 아이들 관리를 잘못해서 그런 것 같아 이미 내 정신이 팬데믹 온 것처럼 혼돈스러웠다. 하지만 60점으로 내려놓으니 너무 속상할 때, 가끔 좀 화를 내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게 계속 괜찮지는 않았다. 내 육아를 편안하게 해 주지는 못했다. 왜냐면 결과적 점수, 그 알쏭달쏭한 수치는 내 육아의 목표는 되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도 내 육아에 점수를 매겨줄 수도 없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가 가고자 하는 목표 지점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목표를 정해야 내 육아- 아이들과 나, 남편 이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육아의 목표.... 오랜 고민 끝에 난 내 육아의 목표를 구체적 질문으로 세우기로 했다.


<< 어떤 엄마가 되고 싶습니까? 어떤 엄마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


오~~ 좋다. 이런 구체적인 질문. 단순하고 평범한 이 질문이 내 육아의 등대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수많은 육아서를 읽었던 이유 중 하나가 내 육아의 앞이 깜깜했기 때문이었다. 길이 보이지 않았고, 내가 어느 길로 걷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책임하게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지했던 내 부모님들처럼 방임하며 내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여러 역할을 보고 자라질 못했다. 죄송하게도 나의 엄마는 의식주만 해결해주는 엄마였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렇겠지만 육아에 큰 고민을 해보신 적이 없는 분이셨다. 그러니 난 의식주만 해결해 주는 엄마의 역할만 보았고, 그 외의 엄마의 역할은 잘 몰랐다.

난 적어도 '우리 엄마는 나를 낳아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셨어요.'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영역이라고는 하지만, 살아보니 그 정도로 한 인간으로서 만족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난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성취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이다. 의식주만 해결하는 범위에서는 몸의 성장만 있을 뿐이었다. 정신적 성장과 성취감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난 아이들에게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엄마'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몸으로 그 성장을 직접 보여주신 엄마'라는 답도 얻고 싶었다. 더 구체적으로 정해볼까?

* 내게 책을 읽는 습관을 갖게 해 주신 엄마였다.

* 내가 원할 때까지 기다려주셨던 엄마였다.

* 내가 고민하는 진로를 함께 공부하고 알아봐 주시는 엄마였다.

* 나의 자율성을 인정해주신 엄마였다.

* 내게 부모님의 꿈을 강요하지 않은 엄마였다.

* 내가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지켜봐 주셨던 엄마였다.

* 시간을 소중히 써야 하는 것을 알려주신 엄마였다.

* 경제적인 인간이 되어야 함을 알려주신 엄마였다.

*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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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마도 30개는 더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러고 보니 난 참 욕심이 많은 엄마였네. 이것이 나의 참모습인가 보다. 난 엄마의 여러 역할을 알고 싶고, 해내고 싶다. 이런 나였으니 내 육아에 길이 안보였던 것이다. 하얀색,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등등의 엄마의 역할의 길이 꼬이고 그것들이 난잡하게 섞이니 검은색으로 보여 깜깜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몇 개의 '되고 싶은 엄마'의 모습을 적고 보니, 길이 조금씩 보이는 듯하다. 혹... 나와 같이 육아의 길이 깜깜해서 보이지 않는 엄마가 있을까? 있다면, 과감하게 이 평범한 방법을 적용해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100점짜리 엄마 말고, 60점짜리 엄마. 점수로 매기는 엄마 말고, 구체적인 질문에 답을 하는 엄마로 육아의 길을 정해보라고 말이다.



feat.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자꾸..."우리 엄마는요... 그냥 우리 엄마였어요.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엄마" 라는 말을 더 듣고 싶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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