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목소리가 큰 육아 어떤가요?
자기 목소리 낼 줄 아이로 키우기.
"369 게임으로 하자. 난 369 게임이 좋단 말이야."
"야. 아까도 그거 했잖아. 배스킨라빈스로 해."
"아니~~ 그건 너무 누나 생각이잖아. 369 게임하자. 난 다른 거 잘 못한단 말이야."
토요일 오후 우리 집은 늘 시끄럽다. (사실 토요일 오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가 아프다. 의견을 나누는 것인지 싸우는 것인지 모르겠고, 장난을 치는 건지, 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 귀에 들리기엔 목소리 큰 한 가지 목소리일 뿐이다.
장난치며 웃을 때도 목소리가 크다. 서로 단순한 얘기를 나눌 때에도 아이들의 목소리는 크다. 잠자기 직전 서로 얘기할 때에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크다. 4살 터울 이 남매의 일상생활 속 목소리는 늘 크다.
가끔 난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큰 육아가 좋은지, 아니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작은 육아가 좋은지 말이다.
아이들 목소리로 육아의 질을 따지자는 게 사실 말이 되지는 않지만, 지금 마음으로는 가끔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작은 육아를 하고 싶을 정도로 우리 집 아이들은 큰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이다. 목청이 큰 아이들 틈에서 귀가 아플 대로 아프다. 가끔은 고요함을 기다리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내가 있는 반경 안에서 키우고 있다. 아이들과 남편만 두고 따로 나 홀로 내 시간을 가졌던 적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그냥 난 아이들이 내 옆에 있는 것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지난 10년 넘게 길들여져 온 것 결과 같기도 하다.
내 육아의 상황이 이러하니 난 아이들이 크게 웃고 떠들거나, 큰 소리로 말을 하거나, 혹여 말다툼이 있어도 그들 속에서 그들의 큰 목소리를 듣고 있다. 시부모님과 남편은 아이들이 밝아서 좋다고 한다. 왜냐하면 웃을 때도 큰 소리로 웃고, 놀 때도 큰 소리로 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다른 사람들도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저토록 큰 목소리인지 궁금해할 정도이다.
밝은 아이들... 아이 같은 천진함이 있는 아이들. 이것이 큰 목소리로 증명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일부분일 것이다. 큰 목소리는 유전일 수도 있겠지만 환경의 영향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다 보여도 되는 편안한 환경이기에 저렇게 크게 얘기해도 창피하지 않고,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서겠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적어도 이 녀석들은 자기의 목소리가 어떤 톤이며 어떤 색인지, 어디까지 내지를 수 있는지는 알겠구나 생각한다.
가령 4살 터울의 이 녀석들이 말다툼을 할 때가 있다. 늘 둘 다 억울한 상황이라며, 자기가 먼저 시작한 게 아니란다. 그럼 난 어김없이 "어떻게 된 일이야?"라고 이유를 묻는다. 그러면 큰 아이이건, 작은 아이이건 둘 다 "아니~~~ 이, 그게 내가.."라며 큰 소리를 내지르고 나서 자신의 변론을 시작한다. 절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우렁찬 소리로 얘기한다. 목소리에 자신이 있다는 것은 자신을 변론하는 이유에도 자신이 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난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려는 그 태도를 말없이 응원했다. 이럴 때면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자신을 보여주는 것에 감사할 때도 있다.
'어디 가서 억울한 상황에 닥치면 자신을 목소리 내어 지킬 수는 있겠구나.'하고 말이다.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 크게 자신을 표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사실 나는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을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 목소리를 내 본 적이 많이 없다. 우리 아이들과 같은 어린 시절에도 난 내 목소리를 높여 깔깔깔 웃어보지 못했고, 그리고 내 의견을 큰 소리로 내놓지 못했다. 늘 중얼중얼 이었다. 그 이유는 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종알종알거리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내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밥상 앞에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했다. 그때 아버지의 불호령 같은 소리가 나를 짓눌렀다.
"밥상 앞에다 두고 누가 이렇게 크게 얘기해! 조용히 얼른 밥이나 먹지 못해!"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순종적인 순한 타입의 아이였다. 눈치가 빠른 아이이기도 했다. 그러니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은 한 번의 야단으로 고치려 했다. 아버지의 야단 이후로 난 밥상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그리고 평상시에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재잘거림은 여전했으나 작은 소리로 변했다.
목소리를 작게 내다보니, 마음도 작아지게 되었다. 학창 시절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치고는 내 목소리를 못 내는 아이가 되었다. 그러니 리더십은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결혼을 하고 주관이 있고, 주체적인 엄마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겠구나,라고 깨닫기 전까지 내 목소리에는 힘이 없고 작았다. 늘 순응하는 목소리였다.
아이들의 큰 목소리에 내 귀에서는 피가 줄줄 흐를 것 같지만, 내 아이들이 어디에서나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을 좋고 싫음을 표현해 낼 수 있다면 내가 견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나의 육아법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단순 목소리만 큰 사람이 아닌 배려하면서 논리적이며 침착하게 하는 스킬들을 차츰 배워야 하겠지만, 어린 지금은 자기 목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내질러 보는 것에 안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