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대화를 잠갔다

사람 엄마의 컨디션이 가라앉을 때는...

by 골드가든

하늘에 투명 천이 있다면 아마 몇 군데를 빼놓고는 다 구멍이 나 있는 모양이다. 비가 내려도 참 많이 내린다. 빗줄기도 굵고 또 거칠다. 하늘은 그레이 빛이고 끝없는 빗줄기에 마치 물속 세상에 빠져 살고 있는 축축한 기분이다. 습도가 몇 도가 될까? 90%쯤 되려나? 살갗에 물이 직접 닿는 차가운 느낌은 아니지만 공기 중 수증기가 내 팔, 다리,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다. 눅눅하다. 물 비린내가 코 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후각에 예민해서일까, 아니면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계절이라 그런가? 별스럽지 않은 일에도 짜증이 난다.

짜증도 그냥 오는 것은 아니다. 끈적거리면서 더운데 아이들이 자꾸 말을 안 듣는다던지, 짜증이 조금 나 있는데 일이 잘 해결이 되지 않는다던지... 늘 원인은 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짜증이 나는 것은 극히 드물다. 전업 주부에게 주원인은 역시나 집안 정리 및 아이들 문제, 시댁 문제, 남편 문제가 크다.

나의 경우에는 주로 아이들 문제로 마음이 복잡해지고, 이해할 수 없거나 답답해서 짜증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늘 이쁜 것은 아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줘야 한다지만 실생활에서 매 시간을 그렇게 보내지는 못한다. 처음에는 자책을 했었다.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닌가 보다며 스스로를 많이 책망했다. 내가 문제라며...



"네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그렇지. 아! 스트레스받아. 야! 너는 스트레스가 뭔 줄 아냐?"

"알지. 누나는 내가 그런 것도 모르 줄 알고?"

"스트레스가 뭐야? 정의해봐."

"엄마가 누나 카톡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거."

"그게 정의냐?? 그리고 내가 뭐 카톡을 많이 했다고 그래. 너는 핸드폰 생기면 안 그럴 것 같냐?"

"안 해. 나는 카톡도 안 하고, 게임도 안 할 거야. 그냥 엄마랑 통화하고 카메라 찍을 거야."

초등 5학년 딸아이와 초등 1학년 아들의 대화이다. 조용히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는 대화인데, 문제는 날씨가 참 지랄 맞다. 눅눅하게 바람 든 과자처럼 흐물거리는 것이 뭘 해도 퍽퍽하다. 뭘 들어도 좋은 감정으로 상쾌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딸아이는 얇고 고음이니 조금만 소리를 높여도 날카로운 소리로 들린다. 그나마 아들이 중저음이긴 하지만 깐죽거리는 것은 둘 다 같다. 그러니 그 투닥거리는 소리가 내게는 귀에다 대고 징을 쳐대는 소리처럼 들린다. 딸과 아들, 자기들끼리의 장난마저도 곱게 보이지 않으니 이것을 날씨 탓으로 돌리면 속이라도 편하겠다.

곱게 보이지 않고, 불편한 감정으로만 끝나면 좋으련만, 난 결국 잔소리를 했다.

"야! 너희 둘 조용히 안 해! 둘 다 똑같이 성질 돋우고 있잖아. 시비 거는 건 둘 다 똑같잖아. 자꾸 이렇게 시비 걸듯 얘기하고 싸움하듯 얘기하면 엄마 가만 안 있어!"

"...."

나의 큰 소리에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내 승리인 것처럼 보였다. 표면적으로는, 그리고 몇 분간은!


그런데 이것은 승리가 아니다. 난 단지 나의 대화를 잠겄을 뿐이다. 대화가 하기 싫었다. 내 몸과 마음이 육아에 지쳤고, 날씨가 내 마음을 활짝 펴지 못하도록 했으며, 저기압이 내 기분마저 가라앉게 만들었다. 모든 게 귀찮게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대화를 닫도록 만들었다.

머리로는 안다. 아이들이 다툰 게 아니라 그냥 단순한 말싸움이었음을. 그리고 이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편만 들어주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내 이성과 내 감정은 따로 움직였다. 감정이 이겼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가만 안 있어. 혼날 줄 알아!"라고 끝맺음 지었다. 이건 '나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이다. 오늘 대화의 문은 잠금입니다, 라는 뜻인 것이다.

나도 사람인데, 나는 매일 긍정적일 수 없다. 엄마도 사람인데 매일 아이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공감해줄 수 없다. 엄마 사람도 컨디션이 나쁠 때가 있다. 물 밑으로 가라앉아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땐 그냥 '퉁명스러운 엄마' 하려고 한다. 내 에너지가 그것밖에 되지 않은걸, 억지로 에너지를 펌프질 해 사용하다가 충전되지 못할 정도로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싶지 않다. 잠깐 대화의 문을 잠가도 괜찮다. 문제없다. 사람 엄마가 먼저 충전이 되어야 대화의 문도 다시 열 것 아니겠는가?

잠시 휴식하자. 잠시 자신만 돌아보자. 사랑도 사람 엄마인 내게 사랑 연료가 있어야 사랑도 나눠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위로도 사람 엄마인 내가 위로받아야 위로를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일단 쉬자. 그리고 활짝 핀 대화의 문을 열어보자. 긍정으로 활짝 꽃이 피고, 끈기로 열매를 맺은 대화의 문 안으로 아이들을 초대해보자. 잠깐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잠깐 퉁명스러워도 괜찮다. 엄마들도 사람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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