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방학이 되니 감정 혼수에 빠졌다.

전업맘의 방학 육아 전쟁-잔소리 대잔치, 육아의 긍정의 힘

by 골드가든

방학이라 그런가? 요즘 매일매일 붙어지내는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늘었다. 아이들은 매번 했던 말을 또 하게 만드는 희한한 재주가 있다.

밥 먹고 나서 양치질은 했니? 얼굴에 로션을 발랐니? 에어컨 틀었는데 왜 모든 문들은 다 열어놓고 다니니? 밥 먹고 나서 자기 자리는 좀 치워주겠니? 벗은 양말은 빨래통에 넣어주겠니? 오늘 연산은 다했니? 숙제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돌아다니니? 하루에도 수없는 잔소리에 왼쪽 가슴이 쪼이듯 아프다. 심장병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아이들과 거리두기가 없는 요즘 정말 아침부터 밤까지 내 입에서는 좋은 말보다는 잔소리가 나간다. 이걸 듣는 아이들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한 번은 내가 야단을 치는데 큰 아이가 자신의 귀를 막아버렸다. 그때 "아차!"하고 그만뒀어야 했는데, 난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어른 앞에서 무슨 버릇없는 행동이야?"라며 혼을 냈다. 그러면서도 절제할 수 없는 내 상태가 위험하게 느껴졌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칭찬을 해주기보다는 딱딱한 말투로 야단을 치는 횟수가 많아지고, 내 가슴에 답답함이 쌓여가니 이놈의 답답함이 독소가 되어 꼭 간성혼수가 오듯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야단을 치고 있다.


이성적이어야 할 때, 가장 이성적이지 못한다. 언제나 이성을 이기는 것은 감정이다. 그런데 지금은 내 감정이란 기계가 고장 상태이다. 고쳐야만 문제가 해결될 텐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코로나 2년도 아이들과 잘 버텼는데... 고작 방학하고 2주가 조금 넘은 이 시기가 힘들다. 이건 감성 혼수상태이다. 그동안 조금씩 쌓여있던 전업맘, 독박 육아의 감정 스트레스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내 감정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 슬슬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제 이성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한계치는 넘었다.


매번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잔소리를 하면서도 '이건 아니지. 이건 진짜 지옥이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문제인지, 아이들이 문제인지를 따져본다. 솔직히 '내 문제가 아니라 난 피해자이길...'하고 생각도 해보지만, 이건 내 문제이다. 내게 속한 문제이니 나만 이렇게 괴롭지 않겠는가. 아이들은 크게 변화가 없다. 나의 감정만 널뛰고 있다. 생리 전 증후군도 아닌데 말이다.


이럴 땐 역시 긍정의 힘이 필요하다. 감정 혼수에 빠져 긍정의 힘을 놓치고 있었다. 난 일찍 감치 어느 누군가에게 감정의 수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독박 육아로 위경련이 일어나 몇 날 며칠을 못 자고 아파할 때에도 혼자서 일어나야 했었고, 아이들이 아플 때 병원을 다닐 때도 홀로 감당해야 했었다. 그럴 때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셀프 긍정의 힘이었다.


"괜찮아. 힘들면 좀 내려놔도 돼. 아이들 덜 챙기면 어때. 완벽하지 않아도 되잖아."

"진짜 애쓰며 살고 있다. 진짜 대단하다. 엄마 역할해내느라고."


지금도 나는 셀프 긍정의 힘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없애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의 시간과 내 시간은 다르지 않는가. 아이들의 몸과 내 몸의 리듬이 다르지 않은가. 아이들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고, 아이들의 머리와 내 머리가 다르고, 아이들의 감정과 내 감정이 다름을 인정해야겠다.


빨래통에 들어가 있지 않은 돌돌 말린 양말은 넣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밥 먹고 자기 자리 치울 때까지 기다려주고, 얼굴에 로션 안 바르면 좀 어떤가? 양치질 하루에 2번 한다고 큰 문제 생기는 거 아니지 않은가? 조금 늦게 자면 또 어떤가? 꼭 공부를 상위 1%로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아이들의 시간은 급하지가 않은걸 어쩌겠는가. 내 시간만 급할 뿐 아이들의 시간은 꽤 여유가 있다.


오늘도 나의 문제를 셀프 긍정과 여유로움으로 수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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