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도서관살이

슬기로운 방학 생활

by 골드가든

"누나 특강 끝나고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2시간이 남았네. 어떻게 할까? 집에 갈까? 아니면 도서관 갈까?"

아들은 방과 후 수업으로 피아노 수업을 듣는다. 방학 중이지만 쉬지 않고 일주일 2번 수업을 듣고 있다. 교문 앞에서 피아노 수업을 마친 아들에게 난 물었다.


도서관 갈래? 집에 갈래?



우리는 방학 중이다. 작년부터 사이버대학에 편입한 나도 방학이고, 아이들도 방학이다. 요즘 아이들은 방학에 더 바쁜 것 같다. 나는 방학이면 정말 놀기만 했다. 놀다 놀다 더 놀게 없고 이제 그만 지겨워서 학교가 가고 싶을 정도로 눈 뜨고, 잠을 잘 때까지 놀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놀이에 배고파한다.

놀이에 배고파하지만 그 허기짐을 채워주는 것도 쉽지 않다. 함께 놀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이라지만 놀이터엔 친구가 없다. 아이들은 방학 중에도 자신들의 스케줄에 따라 살아간다. 학원 특강과 음악회, 운동, 가족 단위의 휴가... 빽빽이 짜여 있는 타임 스케줄이 있다. 그 사이에 친구와 놀이 시간은 따로 정해두지 않는다.

초등 5학년인 큰 아이만 해도 영어 특강을 듣는다. 반 친구들이 듣기도 하고, 자신도 듣고 싶다는 이유에서이다. 방학 중에도 맘 편히 놀지 못한다. 이전 학기 복습도 해야 하고, 다음 학기 예습도 해야 한다. 아이들의 방학이 불쌍할 정도이다. 초등 1학년인 아들만큼은 방학 동안 좀 편히 지내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어떻게 해줘야 편하게 지내게 해주는 것인지 모르겠더라. 일단 기존의 방학 후 수업이 오전에 있고, 놀고 싶어도 혼자서 놀아야 하니 난감하기만 했다. 난 아이들에게 물었다.

"애들아. 우리 방학 때 뭐하며 지낼까?"

"몰라요."

답이 없는 건 애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른인 나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데, 경험치 낮은 아이들은 오죽할까? 몇 번이나 방학을 겪어봤다고 답이 나오겠느냔 말이다.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


아는 집들은 아이들 방학을 이용해 "강원도 한달살이", "제주도 한달살이"를 떠났다. 참 용감하고 부러운 가족이다. 나 역시 용기내고 결단해서 제주도 한달살이, 혹은 제주도 보름 살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아이들 둘만 데리고 나 혼자서 가기에는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런 용기 없는 나는 "도서관살이"를 하기로 결단했다.




제주도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풍경과 생활을 동경했던 사람들은 제주도로 잠시 떠나길 결심한다. 그리고 영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영어권 나라로 잠시 떠나 살 다오기를 갈망한다. 다 자신들의 갈망대로 계획을 세우게 된다. 나의 갈망은 지적 욕구였다.

육아가 내 뜻대로 아이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나는 육아를 야무지게 잘 해낼 자신감은 없다. 내 욕심대로 아이들이 자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집에 사는 아이들은 엄마 말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살기를 원한다. 내 육아의 기획력이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내 실행력이 부족한 탓인지 내 아이들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난 여러 육아서의 성공한 육아법을 적용해 볼 수가 없다.

대신 내 육아는 내가 바라는 아이들 이상형, 그 환경 속으로 넣기 식이다. 참 무식한 육아법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나는 지적 욕구가 있는 엄마이다. 과하게 많지는 않지만 난 내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책을 통해 알아가고, 즐거움을 깨우쳐가는 아이들로 자랐으면 좋겠다.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 들였으면 좋겠고, 평생 배움을 멈추지 않는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 당장 눈앞의 성적이 아닌 진짜 배움의 즐거움을 아는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


엄마인 내 욕구가 이러하니, 난 자연스럽게 방학 중 도서관살이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난 평소에도 도서관 오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학기 중에도 일주일 한두 번 정도는 꼭 왔었다. 하지만 내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행동의 제한이 많다 보니 아들은 특히 더 힘들어한다. 책을 좋아하는 딸은 그나마 낫지만 아들은 책도 싫어하니 도서관이 싫은 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엄마의 도서관살이는 시작되었다. 엄마의 설득 반, 자의 반으로 시작한 아들의 도서관살이. 뛰기도 하고, 누워서 애벌레처럼 기어 다니기도 하고, 의자에서 뛰어내리기를 하면서 도서관 적응 중이다. 그러다 책을 읽기도 하고, 이 책 저 책을 꺼내 쌓기 놀이도 한다. 도서관 마룻바닥에 엎드려 그림도 그린다. 2층 계단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 친구를 만나면 잠시 놀기도 한다.

여름방학의 도서관살이가 2주째 진행 중이다. 매일은 못 오지만 틈만 나면 도서관이 제2의 거처인 양 도서관으로 오니, 아들은 제 집처럼 이 공간에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



어쩌다 그냥 뽑은 책이 재미있으면 보물이라도 찾은 듯 함께 즐거워하고, 1분일지라도 잠시 엉덩이 붙여 책에 빠져보는 즐거운 경험도 한다.


여름방학의 도서관살이가 평생 기억에 남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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