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말을 걸었다. 아이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지? 순간 뇌를 풀가동하며 좀 전의 나의 행동과 말을 생각해보았다. 아~. 아무 생각 없이 한 내 말이 딸아이의 귀에 들렸고, 그리고 뜻하지 않은 상처를 주었나 보다. 사건인즉슨 이렇다.
나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예쁜 딸과, 초등학교 1학년이 된 개구쟁이 아들이 있다. 특별히 학습에 관련된 학원을 다니지는 않아서 늘 나와 함께 집에서 공부를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엄마표 공부를 고집하며 집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불필요한 학원들을 줄인 게 계기가 되면서 학원비가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아이가 집에서 공부하기를 원했다. 나 역시 학원에서의 평가와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로 인해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맘 편하게 내 아이에 맞춰서 공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집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첫째 아이는 2년째 집 공부이니 이제 스스로 공부 계획도 세우고, 공부하는 방법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집 공부라는 것을 처음으로 해보는 둘째에게 관심을 가지며 공부를 봐주게 된 것이다.
그런데 둘째 아이를 가르치다 보니, 이 녀석이 첫째보다는 이해력이 좋고, 흡수력이 좋지 뭔가? 그래서 남편과 둘이 있을 때에만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남편보다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강점과 약점을 발견하는 횟수가 더 많다. 나는 평소에도 아이들의 정보를 남편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아이들의 정보이고, 이것을 공유해야 더 나은 육아와 가이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아이가 울먹이며 엄마인 나에게 얘기했던 그날은 내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날 둘째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늘 엉덩이를 들썩거리지만 나의 설명을 들으며 곧잘 이해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말로 표현하고, 심지어 문제까지 다 맞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야~. 정말 가르칠 맛 난다.”라고 말을 내뱉고 말았던 것이다. 이건 비교를 하려고 의도한 말은 아니었다. 문제는 평상시 거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 집의 분위기는 거의 모든 상황이 오픈되어 있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공부하는 곳과 아들을 가르치던 곳의 거리가 있어서 딸아이에게 내 말이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 화근이었다.
솔직히 그날 아들에게 설명했던 내용은 딸아이 2학년 때 가르쳤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딸아이는 2학년 때에도 내 설명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게 2학년한테는 아직 어려운 내용인가? 그럼 좀 있다가 해야겠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갓 1학년이 된 둘째가 그것을 이해하고, 문제까지 다 맞으니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일어났다. 엄마도 사람인데 비교하며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딸아이가 그 얘기를 듣고서는 분명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과 거짓으로 하는 말은 어른이고 아이이고 상관없이 다 안다. 그러니 내가 진심에서 아들에게 한 칭찬이 딸아이의 마음속에서도 화살이 꽂히듯 콕 박혔을 것이다.
딸아이의 닭똥 같은 눈물을 보며 당황한 나는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 각자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나는 쌍둥이조차도 지문이 다르듯 각자 가지고 태어나는 강점과 약점이 다르다, 그러니 칭찬도 다르게 해줘야 하는 게 맞지 않겠냐, 이걸 무시하고 다 똑같은 칭찬을 하면 그 칭찬이 진짜이겠냐, 엄마도 네 강점과 장점을 두고 얼마나 칭찬을 많이 해줬었냐...’ 등등 위로가 될만한 말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여전히 딸아이는 훌쩍거리고 있었다. 이런 말로는 딸아이의 마음은 충분히 위로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딸아이는 학습과 관련된 태도에서 칭찬을 주로 받았는데 딸아이가 원했던 칭찬이 아니었나 보다. 보통 아이인 딸아이는 학습 태도가 아닌 학습 성취에 대한 칭찬을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들릴까 말까 작게 말했던 나의 말이 딸아이에게는 확성기에 대고 말한 것처럼 크게 들리지 않았을까?
그때 나는 깨닫고 배웠다. 내가 하고 싶은 칭찬과 아이가 듣고 싶은 칭찬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딸아이는 자신이 듣고 싶어 했던 그 칭찬을 위해 열심히 해왔고, 그 칭찬을 받을 때는 더 힘이 나서 공부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딸아이에게 칭찬을 많이 해준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딸아이는 칭찬에 목말라했다. 그래서 나는 늘 의아하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남이 떡이 더 커 보인다’라는 속담처럼 자신에게 하는 칭찬보다는 동생에게 하는 칭찬에만 더 집중하고 그것까지 탐내는 욕심 많은 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이 있고 나서는 그 생각이 어쩌면 틀렸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칭찬의 개수보다 칭찬의 종류, 그리고 칭찬의 질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꾸중이나 잔소리보다 칭찬하는 것이 당연히 좋다. 심리학에서도 처벌보다 칭찬으로 행동을 개선시켜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 칭찬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이다. 하지만 칭찬이라고 해서 다 좋은 칭찬은 아니라고 한다.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두고 칭찬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은 요즘 엄마들이라고 하면 거의 알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나의 경험상, 칭찬의 종류 중 자신이 듣고 싶은 칭찬을 들었을 때는 일반적인 칭찬보다 더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힘이 들 때 힘을 내게 해주었던 칭찬들의 대부분은 내가 평소 무의식적으로 듣고 싶어 했었던 칭찬들이었다. 나는 국문과를 다니던 중 다시 수능을 보아서 간호대로 다시 입학해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졸업 후 병원에 입사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신규 간호사 시절, 이제껏 공부에 대해 크게 열등감이 없었던 내게 시련이 닥쳤다. 바로 병원의 “태움”이라는 문화 속에서 자존감은 바닥으로 내려갔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해도 늘 선배들이 보기에는 부족함 투성이었다. “넌 머리를 장식으로 들고 다니니?”, “지난번에도 내가 이거 알려주지 않았니? 왜 한 번에 다 깨우치지 못하니?”, “너 이렇게 몰라서 환자 죽일 거니?” 등등의 말은 매 근무시간마다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도 빨리 업무를 익히고 싶었고, 더 의학지식 및 간호 지식 등을 익히고 싶었다. ‘인정’이 목말랐던 것이다. 그래서 근무 전후로 병원 내에 있는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점점 선배들이
“오늘 네가 내 일을 도왔니? 너 일 끝내기도 벅찼을 텐데... 고맙다. “
”점점 손이 빨라지네. “
”일이 익숙해지나 봐? “
등등의 칭찬을 받게 되었다. 야단만 맞다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뭔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칭찬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근무 전 타임으로 일을 하셨던 선배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막 업무를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그 선배가 근무 시간 내에 하지 못했던 것을 마무리 지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 너 학습력이 좋다. 학습 능력이 있어. 요즘에 열심히 공부하나 봐! “
그 칭찬을 받는데 가슴의 답답함이 뻥 뚫리며, 지하에 있었던 자존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여러 칭찬 중 내가 공부하는 그 노력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잠을 이기며, 놀고 싶은 욕구를 멈추며 병원 지하의 도서관에서 홀로 공부했었던 그 노력의 시간에 대해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의 병원 생활은 달라졌다. 나 스스로 ‘나는 공부하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니 근무 시간이 기다려지게 되었다. 또한 자신감이 생기니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원했던 칭찬을 받은 이후 삶이 바뀌게 된 것이다.
성인인 나도 이러한데 아직은 어리고, 자아 형성이 덜 된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딸아이는 학습 태도가 좋다는 칭찬보다는 ‘이렇게 성실히 열심히 하니 점점 네 실력이 좋아지고, 성적이 뛰어나게 되었구나. 그래서 가르치는 엄마도 재미있어.’라는 칭찬이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의식적으로 딸아이에게 이런 종류의 칭찬을 했다. 병원을 다녔을 때 나처럼 딸아이도 ‘나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 노력하면 결국 이루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하지만 살짝 기분만 좋게 하는 칭찬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칭찬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적절한 한 마디 칭찬으로 내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