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엄마도 한 명의 경제적 인간으로 살아봐도 되겠니?
나는 전업주부이다. 결혼 후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둘 때에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만 머무르게 될 줄 몰랐다. 전업맘의 대부분이 경력 단절이 된 이유가 있을 테지만, 나의 경우에는 남편의 권유가 컸던 것 같다. 당시 우리는 너무도 순수해서 돈보다는 사랑, 애정, 그리고 이제 막 이룬 가정의 의미가 누구보다도 더 소중했었다.
남편은 군 복무 중이었지만 일반인처럼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신분이었다. 그것도 지방에서 말이다. 서울 출신인 남편이 아무도 없는 지방에서 지내기에는 외로웠을 것이다. 나야 워낙 어렸을 때부터 본가에서 나와서 살았고, 학교를 이유로 여러 도시들을 다니며 살아봤던 경험이 있기에 적응에 문제가 없었겠지만, 남편은 달랐다. 가족과 제대로 떨어져 지내본 경험이 없었다. 그러니 그 낯선 지방 도시가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는 지방 도시에서 말이다.
결혼 후 서울에 직장이 있던 나와 지방에서 군 복무 중인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봤다. 연애 때도 일주일에 한 번 봤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남편은 결심이라도 한 듯 얘기했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내려와서 딱 1년만 시골에서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매일 보면서 인생의 방학 같은 1년을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인생의 방학' 이 멋진 말에 나는 흔들렸다. 당시 임신 초기이기도 했고, 시댁에서 남편 없이 홀로 지내던 나는 그렇게 태어날 내 아이와 남편과 나의 가족을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그때에는 아이를 낳고 1년 정도 키우고 다시 직장에 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참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태어난 첫째 아이는 엄마 껌딱지였다. 예민한 기질의 아이였고, 엄마 외의 사람은 낯설어하고, 익숙한 환경이 아니면 굉장히 불안해하는 아이였다. 거기에 난 모성애가 굉장히 짙은 엄마였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우주 전부로 알고 나만 믿고 젖을 빨고, 내 앞에서 웃어주는 아이를 매몰차게 어린이집에 맡기고 내 일을 할 수가 없었다.(난 시댁이며 친정에서 육아 보조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일하면서 모아둔 돈, 실업 급여와 남편의 얼마 되지 않은 월급과 마이너스 통장으로 우리 세 식구는 근근이 살았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의 걱정보다는 당장 우리의 시간이 너무도 행복해서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1년 후 남편은 군 복무를 마치고 일을 시작했고, 나는 육아 전담이 되어버렸다. 돌이 넘었어도 젖을 빠는 첫째 아이였다. 늘 엄마 품에 있어도 엄마 품이 그리운 아이였다.
잠깐의 경제적 인간으로의 시도를 한 적이 있었지만 첫째 아이는 분리불안을 느끼며 4살 첫 어린이집 생활에 처참하고 치열하게 실패했다. 매일 등원하기 전 오열을 하는 아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 손가락을 빨기 시작하는 아이, 짜증이 늘어나는 아이를 놓고 경제적 인간으로 살기는 힘이 들었다. 나는 못하겠더라. 그렇게 나의 경제적 인간으로의 변환은 실패했다.
첫째 아이를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둘째 아이도 어렸고, 첫째 아이를 키워보니 정서적인 것이 얼마나 큰지 나 스스로 느꼈고, 남편 역시 이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기에 어쩌면 암묵적으로 아이들을 위해 부부의 역할을 분리시켰던 것이다. 남편은 외벌이를 자처했고, 나 역시 육아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로 인해 첫째 아이는 몰라볼 정도로 안정이 되어 초등학교 5학년인 지금은 어느 누구보다도 학교 생활도 잘하고, 어딜 가나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아이가 되었다. 무엇보다 참 잘 웃는 아이가 되었다. 징징거리던 이전의 모습, 엄마가 늘 옆에 있어야 했던 아이는 더 이상 없다.
둘째 아이는 아들이기도 하고, 워낙 순둥이로 태어난 아이이다. 첫째 아이로 에너지를 다 쏟은 탓인지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낀 나는 둘째 아이를 돌이 지나자마자 가정 어린이집에 맡겼다. 첫째 아이와는 다르게 너무도 적응을 잘하고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예쁨을 많이 받으면서 손이 안 가도록 편히 키웠다. 그래서 나는 둘째 아이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둘째가 태어나서 나랑 가장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모든 활동에서 적응을 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슬슬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경제적 인간이 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 오르고 있다. 아직 둘째는 더 엄마의 손이 필요하긴 할 테지만 둘째는 잘할 것 같은 믿음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애들아, 엄마가 이제는 돈을 벌어도 되겠니? 한 경제적 인간으로서 말이야."
"엄마 일하게? 어떤 일?"
작년만 해도 농담 삼아 "엄마 일하고 싶은데 일할까?"라고 물으면 첫째도 둘째도 단번에 "안돼. 그럼 우리는?"이라고 대답을 했었는데, 이 녀석들의 대답은 희망을 갖게 했다.
친한 지인은 나보고 그랬다. 일하는데 애들 눈치, 남편 눈치를 왜 보냐고. 일을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라고 말이다. 난 그 말에 좀 서글퍼졌다. 지인이 내게 그렇게 말한 의도는 "네 뜻이 그러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해." 하며 응원하는 메시지였는데, 내게는 "왜 네 인생인데 남편이며 애들,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고 살아?"라는 질책의 의미로 들렸다. 지인의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내 마음이 꼬였다기보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수없이 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기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해석이 되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먼저이고, 가정이 먼저이니 내가 희생하는 것이 맞다고 수없이 나를 달래 보았지만 매번 내 안에서는 '경제적 인간'인 나의 모습에 대한 갈망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 역시 내 가족들에게 길들여져 있지만 가족들도 나에게 길들여져 있기에, 어느 날 갑자기 내 뜻대로 독불장군처럼 일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남편의 협조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동의도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배려이고, 아이들에 대한 나의 예의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있잖아, 애들아. 우리 가족이 몇 명이지?"
"4명."
"그렇지? 4명이야. 그러려면 2명인 가족보다 훨씬 돈이 많이 필요하겠지?"
"그렇지."
"우리 가족이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우리가 좋고 안전한 집에서 살아야 하고, 때때로 멋진 신발, 옷들도 사야 하고, 여행도 가야 하잖아. 너희들 공부도 해야 하고 말이야."
"그렇지."
"그런데 지금까지는 우리 4명의 가족의 생활비를 아빠 혼자서 벌었어. 그건, 너희가 아직 어려서 엄마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내린 결정이었어. 아빠도 혼자서 돈을 버는 것 힘들 텐데도 너희들을 잘 키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힘든 일을 결정하신 거야. 그런데 이제는 너희들도 혼자서 학교 다녀올 수도 있고, 혼자서 숙제도 할 수 있고, 혼자서 학원도 갈 수 있잖아. 그지?"
"난 다 혼자서 할 수 있지. 근데 밥은 못해."
첫째는 밥이 가장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엄마가 일을 하면 자신과 더불어 동생까지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인 것 같다.
"엄마도 당장 나가서 일은 못해. 많이 쉬었고, 아직은 동생이 어리니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알아볼 거야. 하지만 이전처럼 모든 일을 엄마가 다 지켜봐 주고, 엄마가 도와줄 수는 없어. 너희가 해야 해."
"알았어."
일단 아이들 설득은 통과했다. 나와 같이 아이들의 양육이 먼저인 남편도 이런 과정을 설명하며 나의 뜻을 밝히니 선뜻 동의를 해줬다. 아직 남편의 협조까지는 모르겠다. 집안일은 철저히 내 몫이라고 생각을 해서 퇴근해 집에 온 남편에게 집안일을 시켜본 적이 없으니 남편이 협조하려고 해도 처음에는 좌충우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대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면서 아직 뭔가 확실히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내가 다시 경제적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뜬다. 마치 소풍 가지 전, 여행 가기 전 한껏 들뜬 아이처럼 10여 년의 가정생활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것만으로도 좋다. 이 기분은 계속해서 일을 하며 지친 직장맘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워킹맘이 있다. 겉에서 보는 그녀는 높은 연봉을 받는 대기업을 다니고, 꽤 능력도 있고, 자기 꾸미기도 잘하고, 자신이 번 돈으로 돈도 멋지게 쓸 줄 아는 부러운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는 늘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현모양처로 사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내가 부럽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녀가 참 부럽다. 그냥 경제적인 인간이라 부럽다. 경제적 인간...
내게 경제적 인간이라는 것은 돈을 떠나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돈을 벌기에 더 효과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주말이 더 소중할 것이다. 여러 시선으로 사회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각도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워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이 이유만으로도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설득이라는 관문을 통과했으니 이제 새로운 문을 열고 가보련다. 아이들이 걱정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나를 믿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