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리석다. 나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내 자존감이 낮아서도 아니다. 내 배움의 태도에 대해 반성하고 있는 중이다. 난 직업을 학생으로 적을 수 있는 중,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이나 배운다고 생각을 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고,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정해진 범위를 주고 시험 보는 것만 공부다,라고 제한을 두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저녁 준비를 하다 유튜브로 김미경 강사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평생 직업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학생"이라고 하셨다. 이유인즉슨 배움에는 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평생 배워야 하는데, 모든 배움에는 사람들은 언제나 처음은 초보 학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이 얼마나 와닿던지...
생각해보니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초보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처음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도, 말을 시작했을 때도, 한글을 배울 때에도, 숫자를 배울 때에도, 학교를 다닐 때의 모든 학년에서도, 대학에 입학해서 전공 공부를 할 때에도, 직장에 들어가서도 늘 초보였다. 공부를 오랫동안 하였지만 늘 새로운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결혼을 하고 처음 요리를 할 때에도 나는 초보였으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때도 초보 엄마였고, 아이 학습을 시킬 때에도 나는 초보자였다. 심지어 부동산 계약을 할 때에도, 대출을 알아볼 때에도 초보자였으며, 재테크를 할 때에도 초보자였다. 지금도 여전히 글쓰기 초보자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나의 초보의 어리숙함이 왜 이렇게 사랑스럽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처음 병원에 근무했을 때였다. 큰 병원의 시스템이 모두 생소했다. 물론 입문 교육을 받았지만 실전과 실습은 달랐다. 실습이 실전이 되지 못함을 그때 알았다. 그래서 나는 바쁜 간호사 선생님들 틈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신입. 거기에서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 빨리 포셉 좀 갖다 줘." 알려주셨던 것 같지만 단번에 기억이 나지 않아 버벅거리고 있었다. 한숨을 쉬면서 퉁퉁거리는 빠른 발걸음과 거친 손놀림으로 내 앞을 지나치는 선배 간호사의 모습을 보며 한없이 주눅이 들고, 나의 어리숙함이 참 많이 싫었다. 빨리 이 어리숙함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티 내고 싶지 않았다. 그 초보의 허둥지둥이 부끄러웠다.
영어 회화를 배울 때도 그랬다. R과 L 발음을 구별해서 못하니 자꾸 영국인 대머리 선생님은 나를 혼내셨다. 연습 많이 해오라고. 그런데 내가 내 발음을 듣기에는 구분이 되는데 왜 저 선생님은 구분이 안될까, 의문을 품으면서도 영어를 이제 갓 배우고 못하는 내가 잘못이려니 하고 자책했다. 2달이 지나도 나의 R과 L 발음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그도 그럴 것이못한다, 못한다 하니 더 자신감도떨어지고, 나는 원래 영어를 못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3달치 결제가 끝나자 재결제는 포기하게 됐다. 이때 나의 영어 초보, 그 어리숙함을 자연스럽고 사랑스럽게 여기고 당당히 여겼더라면 아마 아직까지도 R과 L 발음에 주눅이 들지는 않을 텐데,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누구나 평생 모르는 것을 배워가고, 그 배움에 있어서는 초보이니 그 위치에 당당해할걸 이제야 후회가 된다. 사실 난 지금도 주식 공부의 초보이고, 부동산 공부에 초보이고, 다시 일하기 위한 직장에서 초보이고, 초 5 여자아이의 엄마 역할에서도 초보이고, 남자아이 엄마 역할에 초보이다. 어디 그뿐인가. 취미로 하는 도자기 핸드 페인팅 민화 과정에서 초보이다. 항상 초보 수준에만 머무른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런데 난 매일 배워도 같은 걸 배우지는 않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요리도 어제와 오늘의 요리가 다르고, 청소의 스킬도 배워가며 더 편한 방법을 찾고, 글쓰기도 그렇다. 난 앞으로도 계속 초보로 배워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학생으로 살기를 원한다. 이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필터 없이 전달되어 내 아이들 역시 자신이 초보 학생임에 당당하고 부끄러워하거나 주눅 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