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둘째 아이가 자다가 나를 끌어안았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아직도 내 팔을 베개 삼아야만 잠이 든다. 그러니 자다가도 나를 끌어안거나 내 팔을 베개 삼고 내 품에 안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 몸이 불덩이다. 자기 전까지도 아무 증상도 기척도 없었는데 말이다.
덜컥 겁이 났다. 코로나인가?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가족은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아직 코로나에 한 번도 감염이 된 적이 없다. 그동안 얼마나 고립 생활을 했었는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만큼 언제 코로나에 걸릴지 몰라, 라는 불안감도 늘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집 근처 체육관에서 수영 강습을 오픈했다고 하여, 뒤늦은 8월부터 아들의 수영 수업으로 노 마스크 수업에 합류를 했다. 1년 넘게 2시간 가까이 뛰어다니는 야외 축구 수업을 받을 때에도 마스크는 꼭 착용하였던 아이였다. 마스크가 습관이 되어 있는 아이도 노 마스크 수업을 받아도 되냐며 의심을 품었다. 불안함이다. 18~20명의 어린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선생님의 수업 진도에 따라 발차기를 하고, 음파 연습을 하면서 중간중간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기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불안하다. 이래도 되나? 나의 걱정이 현실이 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닌 것 같다. 아직 자가 키트는 해보지 않았지만, 해열제에 열이 떨어지고, 목 아픔, 기침, 오한, 두통 등의 증상은 전혀 없이 열만 나는 것을 보니 냉방병이 아닌가 의심을 품어본다. 코로나만 아니면 다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이와 중에도 '나 입문 교육받을 때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하지? 일 할 기회를 또 놓치게 되는 거야?'라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전업 주부 탈출을 시도 중이다. 이제 경제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아이들과 남편을 설득시켰고, 그들의 동의도 얻었다. 그래서 한 재택 업무를 볼 수 있는 일에 지원을 했고, 다음 주면 면접을 볼 예정이다. 그리고 또 일주일 후에 본사에서 2주일 넘게 입문 교육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받을 예정이다. 난 이 과정을 다 수월하게 해내고 싶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아이들의 협조가 간절히 필요하다.
아이들만 두고 오전, 오후를 다 비워본 적이 없기에 아이들만 둘 상황이 걱정이 된다. 입문 교육이 있을 시기는 아이들이 개학을 해서 학교에 다니고, 방과 후 수업이며 학원을 정상적으로 다닐 시기이다. 그러니 자신들의 스케줄을 해내다 나를 만나면 되는 것인데 이제껏 전업맘으로 하나하나 신경 써주고 동행해줬던 터라 혼자서 잘 해낼지 참 걱정이 많다.
워킹맘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는 이게 당연한 일과일텐데 나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이 되는지 모르겠다. 혼자 수영장은 잘 갈 수 있을까? 혼자서 집은 잘 올 수 있을까? 혼자서 집에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혼자서 학원은 갔다 올 수 있을까? 혹시 학원 가는데 너무 더우면 어떻게 하지? 혹시 장대비가 쏟아진다면?
이렇게 내가 걱정하는 부분을 살펴보니 나는 아이들을 참 못 믿는 엄마였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주지 못하는 엄마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보호'였으나 내 아이들은 자율성을 가질 기회를 빼앗긴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이런 걱정은 내려놔야겠다. 잘할 수 있겠지, 라는 믿음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나 또한 아이들에게 얽매이지 않고 내 자율성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이렇게 둘째가 아프고 나니, 또다시 염려가 되지 뭔가! 내 새로운 시도를 아이들의 아픔이 방해하지는 않겠지? 난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아픈 아이들을 홀로 집에 두고 내가 교육을 받으러 갈 수 있을까? 아마 나는 못할지도 모르겠다, 애가 아픈데 어떻게 내가 교육을 받으러 가! 내 마음은 또다시 아픈 아이 앞에서 무너져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일도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할 수 있겠구나!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 이번에도 기회를 잃으면 어떻게 해. 나 일하고 싶은데. 입문 교육만 받으면 되는데... 그러면 아이들 돌보면서 집에서 일할 수 있는데... 왜 이럴 때 친정 엄마도, 시어머니도 내게 도움을 주실 수 없을까? 나는 내가 아까운데... 그들은 내가 아깝지 않나? 나 진짜 일 잘할 수 있는데... 조금만 내 시간을 주면 되는데...'
부정적인 생각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또르륵 흐르는 눈물방울과, 혹여 목놓아 울까 봐 참고 있으려니 아파 오는 목청에,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왜 다른 사람만 편하게 해 주려고 사는 것일까? 내 남편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내 아이들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혹여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들이 걱정할까 봐 그들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나는 나의 속마음을 내 속 사람에게만 얘기해오고, 삭이고, 때가 오겠지 하며 양보해 왔을까? 왜 나를 편안하게 해 주지는 못하는 것일까?
맞다. 나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다. 나는 늘 내 성장과 사회적 역할을 해내는 경제적 인간으로의 갈증을 느끼고 있는데 난 그 갈증에 물을 준 적이 없었다. 물론 시도를 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아이들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배워왔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 배움이 아이들을 돌보면서 내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직업으로 연결 가능한지를 생각해왔다. 하지만 매번 아이들의 돌봄 문제로 포기해 왔었다. 내 안에서는 계속해서 일하는 내가 꿈틀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나의 성품이 이러하니 누굴 탓할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나는 내게 시간을 주고, 기회를 주고, 그리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 꿈꾸는 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인간이 되고 싶으면 되게 해주고 싶고, 요리하기 싫은 날은 요리 안 하게 해주고 싶다. 10년을 가족을 위해서 온전히 나를 써 왔으니, 앞으로 10년은 나를 위해 나를 쓰며 살아보자고 오늘도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