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말도 마. 열이 안 떨어져. 해열제를 먹여도 39도 대야. 애가 입맛도 없는지 안 먹어. 너도 알잖아. 우리 은지 엄청 잘 먹는 거. 근데 열이 심하니까 입맛도 잃어버리네. 엄청 무섭네, 코로나."
친한 지인의 전화였다. 그동안 꿋꿋하게 집콕하며 코로나를 용케 피했다면서 좋아했던 우리 가정과 지인네 가정이었다. 그만큼 참 조심했었다. 인맥 떨어질걸 각오하고 칩거 생활을 했으니 말이다.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 건강이 최우선인 데다 두 집 모두 겁이 많아서 자발적 거리두기를 열심히 지켜왔었던 것이다.
어떻게 지켜온 건강인데, 수영장 수업 한 달만에 허무하게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이렇게 걸릴 거 왜 그리 만남의 시간을 아끼며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허무했다고 한다. 그동안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가족을 잘 지켜왔구나, 라는 확신은 있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미세한 바이러스에 맥없이 쓰러지고 마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인간이란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열이 나서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는 아이를 볼 때면 안쓰러워 그 옆을 떠날 수가 없다. 펄펄 끓는 아이의 이마를 한번 더 닦아주게 되고, 목 더미며 팔, 다리, 겨드랑이, 등, 배를 미지근한 물로 수시로 닦아준다. 이런 노력이 내 아이를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는 강한 아이로 만들 수 있다면 밤샘 간호도 마다하지 않는다.
체온계가 40도를 찍으면서 빨간불이 들어올 때는 덩달아 내 정신도 빨간불이 들어오는 것 같다. 해열제를 먹여도 38도대로 떨어지지 않은 걸 보면 간호하는 엄마들의 마음은 급해진다.
미니 얼음팩을 작은 수건에 돌돌 말아서 아이의 겨드랑이에 끼워주는 아이디어 간호도 해보고, 젖은 두건을 씌워 이마의 열을 식혀도 본다. 아이가 아플 때면, 그동안 아이들에게 닦달하던 공부 얘기는 쏙 들어가게 된다. 독서고 뭐고, 글쓰기고 뭐고 아이를 정상 컨디션으로 살려내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가장 원초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먹이는 것, 마시게 하는 것, 편히 쉴 수 있게 하는 것... 이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집 아이들은 감사하게도 건강한 편이다. 첫째는 특히나 잔병치레도 하지 않은 아이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딸아이의 태아 보험료가 가장 아깝다는 농담까지 할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딸아이에게는 건강은 기본으로 깔고서 다른 기대들을 하는 것 같다.
플라잉 요가 시간에 가장 유연했으면, 가장 예쁘게 표현해 냈으면, 학교에서 배우는 악기를 잘 따라 치고 연습해서 멋진 곡을 연주해줬으면, 피아노는 잘 쳤으면, 학교에서 발표는 잘했으면, 친구들에게 인기 있고, 선생님께 인정받는 아이였으면, 책 읽는 것을 즐겨했으면, 글쓰기 대회에서 작은 상이라도 받았으면... 등등등.
지금 보니 자연스럽게 욕심부렸던 것들이 아이의 건강이 기본 밑바탕에 깨질 수 없는 돌덩이처럼 박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었다.늘 밟고 다니는 단단한 도로의 감사함을 모르듯 내 아이의 건강이 감사하다는 걸 잊고 지냈다. 그러고 보니 아이에게 조금 욕심부려 '네 능력을 키워봐.'라고 말했던 순간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옆에서 24시간 지키며 간호하면서 부모가 되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의 모성애 역시, 큰아이가 처음으로 열이 펄펄 끓을 때 밤새 조마조마해하며 물수건을 수시로 짜면서 생겼던 것 같다. 생명의 귀함을, 생명 자체의 본질을 마주하게 되며, 건강이 주는 안정감과 기쁨을 직접 경험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나의 원초적인 본능으로 인한 행동이 고차원의 해열제를 이기기도 한다. 동물의 본성으로 부모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누가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이 옆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내게 씽긋 웃어주는 그 웃음은 아이 안에 건강함이 있다는 신호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또한 내가 그들에게 "이제 그만 조용히 좀 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건강함의 즐거움을 내가 폄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건강 앞에 더 깊이 감사하며 하루 세 끼 먹어줌에, 그리고 이리저리로 참 잘도 돌아다니는 가벼운 그 발걸음에, 스스로 씻어주는 그 능동적 깔끔함에 감사한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