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인생을 등산에서 배우다.

오르막길에서 배우는 인생, 그리고 반성.

by 골드가든


산은 참 신비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등산하는 것이 괜히 꺼려진다. 왜 그럴까? 바로 산을 오르는 것 때문이다. ‘등산’을 얘기하면서 산을 오르는 것이 싫어 꺼려진다는 것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말이다. 정확히 내가 싫어하는 것은 산의 ‘오르막’을 걷는 것이다.


작년 가을의 일이다. 갑자기 찾아온 가을이 나무마다 잎사귀에 물감을 짜 놓은 듯 너무도 예뻤다. 눈이 부시도록 원색의 나뭇잎은 빨갛고, 노랗고, 푸르렀다. 마치 7살, 11살 우리 아이들이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선명한 빨강, 노랑, 갈색, 녹색을 콕콕 찍어 알록달록 물든 나뭇잎을 색칠해 놓으면 내가 그 위에 하얀색, 검은색으로 군데군데 명암을 넣은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도 예쁜 가을을 사랑의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가을의 단풍잎들이 금세 나뭇가지에서 갈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벌써 가을의 끝자락으로 와 버렸나 보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한 마음이 되어 집 근처에 있는 산을 등반하기로 했다. 이 나뭇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붉고 누르스름하게 물든 산을 가까이에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올해의 가을을 사진으로도 담고 싶었고, 무엇보다 눈으로 담고 싶었다.


그렇게 ‘등산’을 싫어하는 내가 가을에 취해 산을 오르게 되었다. 우리가 오른 산은 ‘계양산’이었는데, 이 계양산은 입구부터가 험난하다. 가파른 오르막이기 때문이다. 두어 달 전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계양산을 입문하기 위한 산 계단에 길게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파른 그 계단길을 오르는 것은 여전히 숨가팠다. 코 위까지 정직하게 썼던 마스크는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마스크 밖으로 내 코를 내밀어 시원하게 거친 숨을 내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리로는 몇 미터 안되는데 한 10여분 오르는 것 같았다. 멈춰 서기를 여러 번. 이 오르막이 얼마나 남았나, 왜 내가 여길 오기로 한 건가, 오만 잡다한 생각을 투정으로 내뱉으며 먼저 오르고 있는 이들을 올려다보았다. 20대 젊은 청년들, 60대쯤으로 보이는 부모님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연령쯤 되어 보이는 아이 엄마·아빠들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아직 10대도 안되어 보이는 꼬마들이 눈에 띄었다. 걸음걸이가 어찌나 가벼워 보이던지... 그 아이들 중에는 7살짜리 내 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숨이 가빠서 뜨거운 콧김을 내뱉고 있는 나와는 달리 내 아들의 다리는 새털이라도 달아 놓은 듯 가볍게도 보였다. 같은 오르막을 걷고 있지 않는 모양이다. 역시 유독 여러 번 쉬기를 반복하시는 분들은 나보다 더 나이가 있는 분들이셨다.


10여분의 지옥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평지가 나온다. 그곳에서 봐도 인천시가 넓게 펼쳐 보이니 이만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다. 가을을 가장 최전선에서 보겠다는 결심으로 산을 오른 나의 패기는 이미 산의 초입에 두고 왔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이미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남편과 아들이 잠시의 쉼도 없이 나와 딸아이를 앞서 완만한 오르막을 걷고 있었다. 내 옆을 지키겠다며 나의 발걸음과 속도를 맞추어 걷는 딸아이도 이미 투정이 산을 이루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엄마, 아빠의 권유로 산을 오르게 되었으니 그 마음도 이해한다. 이런 투정에도 딸아이와 나는 계속해서 걷게 되었다. 딸을 다독여가며.


가을볕이라 뜨거웠다. 이마와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초입의 가파른 계단으로 호되게 당하고 나니, 그 뒤의 계양산은 만만하게 보였다. 딸아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 딸도 재잘재잘 말을 했다. 그 여러 말속에는 딸아이가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딸아이의 ‘덥고 힘든데 괜히 따라왔어.’라는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래도 딸아이는 참 배려심이 있다. 무심코 내뱉는 불평과 투정이, 같이 걷는 옆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아는 모양이다.


약간의 경사를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새 산 중턱까지 오게 되었다. 좁은 정자에서 땀을 식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앞서 갔던 남편과 아들도 물을 마시며 잠깐 쉬고 있었다. 딸아이는 아빠를 보자마자 어리광을 부린다. 또 그 어리광을 받아주는 사람이 아빠다. 아들은 언제 왔는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얘기한다.

“아~ 난 이런 산 싫어. 너무 사람들이 다니기 쉽게 만들어놔서 곤충이 없어.” 그러고 보니 아들의 등산에도 목적이 있었다. 남편과 나의 목적만 생각했다. 가을이 자기 자리를 겨울에게 내주기 전에 가을을 깊이 보자, 라는 것이 나와 남편의 목적이었다면, 아들의 목적은 가을 숲에 있는 곤충을 보고 싶고, 만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제야 아들이 등에 메고 있는 무당벌레 모양의 가방이 보였다.

“메고 있는 가방이 무겁지 않니?”

“응. 괜찮아. 내 소중한 것들이 있거든.”

“꽤 무거워 보이는데... 혹시 엄마가 볼 수 있어?”

아들은 기꺼이 그의 가방을 열어 보여 주었다. 가방 안에는 곤충 책과 작은 채집통, 연습장, 연필, 지우개, 물병, 그리고 약간의 군것질거리가 들어 있었다. 등산 얘기가 나오자마자 사라졌던 이유가 이것을 챙기려고 그랬나 보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어느새 등산에 길들여진 탓인지 처음만큼 힘들거나, 겁이 나거나, 괜히 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법 올라온 것인지, 등산길 양옆으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그늘과 바람은 그들이 주는 선물이었다. 나무를 눈높이에서 보고, 가까이에서 보니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이 꽤 말라있었다. 그 밑으로 낙엽도 꽤 많이 쌓여있었다. 최근에 떨어진 낙엽과 작년에 떨어진 낙엽, 그리고 그 전 해에 떨어진 낙엽들의 추억이리라. 그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백 명은 되었을 것이다. 그 수백 명의 사람들 중 한 명으로 내가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낙엽과 붉게 물든 단풍잎도 내 옆을 지나가고 있다. 한 공간 안에 있으면서 우리에게 가을을 보여주는 그들에게 감사했다.


계양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1시간쯤 되는 듯했다. 정상에 거의 도달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경사! 다시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며 어느새 딸아이가 내 옆에 있었다. 유독 오르막길에서는 딸과 나는 한 팀인가 보다. "정상에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얘기를 들었어. 우리 꼭 산 정상에서 아이스크림 먹자." 하며 서로를 달래며 무겁디 무거운 발거음을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내 눈에만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좁은 등산 길도 오르는 방향, 내려오는 방향이 있다. 선을 그어 정해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오른쪽은 오르는 방향, 왼쪽은 내려오는 방향으로 알고 가고 있다.

왼쪽으로 내려오는 사람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도대체 정상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라고. 체면을 차리는 것을 보니 아직은 정신을 붙잡고 있을 만한 힘은 남아 있나 보다. 딸아이와 나는 ‘아이스크림’을 얘기하며 오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산 정상으로 가는 우리의 목적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점점 허벅지는 무겁고, 단단하며 뭔가에 짓눌려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쯤 되면 나올 법도 한데, 왜 정상은 보이지 않는 것인가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이미 나의 위치는 오르막길에 많이 올라와 있기 때문이었다.


윤종신이란 가수가 작사 및 작곡하고 정인이라는 독특한 보이스를 가진 여가수가 부른 ‘오르막길’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 일지 몰라. 한 걸음 이제 한 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인생의 오르막길을 암시하는 듯한 이 노래가 저절로 떠올랐다. 노래 부를 조금의 힘이 남아있었다면 흥얼거려볼 텐데 그런 힘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간간히 어린아이의 “야호”하는 소리가 내게 “힘내”라는 소리로 들려 걸을만했다.


점점 좁아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정말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가 보였다. 40이 넘은 나이도 잊은 채 시끄러울 정도의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 순간은 난 40대의 아줌마도 어린아이도 아닌 그냥 힘든 등산객일 뿐이었다. 한 개에 2000원씩 하는 아이스크림은 1시간 넘게 오르막, 내리막, 더 경사진 오르막을 올라 산의 정상에 도달한 나에 대한 보상이었다. 보상은 거기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땀을 식힐만한 순도 100%로의 시원한 바람,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미소, 꿀맛 같은 휴식 타임, 도시를 360도 어느 방면으로도 둘러볼 수 있는 것은 크나큰 선물이었다. 울긋불긋 물든 산을 그림 관람하듯 볼 수 있는 것 또한, 힘들게 정상을 오른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리라.


난 제대로 산을 올라와 본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으레 겁을 먹었다. 오르막길은 힘드니 등산은 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그 많고 많은 운동들 중 등산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라고 생각했다. 산을 타는 것은 많은 경비가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내 멋대로 단정해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오만한 태도였는지 이제는 안다. 경험해 보지 않고 섣불리 판단해 버리는 나의 나쁜 태도를 정상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꾸짖는 것 같다. 나의 이런 태도를 깊이 반성한다.


등산을 하다 보면 인생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정상만 바라보며,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정상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과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고, 가끔은 내리막길을 걷기도 한다. 숨이 차올라 더 이상은 안될 듯 헉헉거리다가도 잠시의 휴식으로, 혹은 주변 사람들의 다독이는 말에 힘을 얻어 다시 오르기도 한다. 산을 오르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하지만 모두들 한 곳을 바라본다. 때로는 짜증도 나고, 괜히 불평도 터져 나온다. 어쩌겠는가? 인생을 오르는 길이 너무도 힘든걸.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볼멘소리나 짜증 같은 부정적인 말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옆에서 같이 걸어주는 사람들까지도 기운 빠지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물 한 모금의 귀함을 알게 되고, 가끔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귤 하나에 격하게 감사하기도 한다.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오르막이 없을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있다. 삼성을 이끌어가는 이재용,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에게도 오르막은 있을 것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그 오르막이 더 높을 것이니 오르는 동안의 고달픔과 목마름, 지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반드시 정상은 나오더라! 계양산을 오르는 내내 정상이 보이지 않아서, 나는 의심을 했다. 정말 계양산에 정상이라는 부분이 있기는 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힘겹게 올라가는 나는 , 나와 반대로 내려오는 사람들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정상이 있기는 한 거냐고. 만약 내가 이렇게 물었다면, 그들은 단칼의 말보다는 웃음으로 대신 답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부드럽지만 힘 있는 말을 덧붙였을 것이다. “조금만 힘내세요. 거의 다 왔어요.” 오르막길을 걷고 있는 등산객에게 이보다 더 큰 희망의 말이 어디 있겠는가.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인생의 오르막길에서 정상이 영영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잦은 오르막에 지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거의 다 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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