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엄마도 함께 자라자.
나는 시골 출신이다. 시골 중에서도 시골. 지금도 동네에 조그마한 구멍가게 하나 없다. 문방구는 중학생이 되어 면 소재지의 중학교에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미용실도 마찬가지이다. 서점이란 곳도 중학교 2학년 말쯤 읍내로 나가면서 알게 되었다. 1시간 반 차를 타고 읍내에 나가야만 병원이란 곳을 볼 수 있는 시골이다. 세상에 직업은 선생님과 목사님, 어부, 농부 외에는 없는 줄 알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세상이 하나가 되면 좋으련만 내가 살았던 시골은 단절 생활, 고립 생활 그 자체였다. 게다가 나의 부모님은 현재의 농어업 기술, 현재의 생업 말고는 다른 것에 딱히 관심이 없는 분들이셨다. 그야말로 먹고살기 바쁜 분들이셨다. 집에는 신문 한 조각 없었고, 읽을 책을 사주신 적도 거의 없었다. 문제집 역시 사주신 적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시골에서 공부는 곧잘 하는 편이라, 선생님들께서 주신 문제집, 책들을 읽기는 했었다. 또한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내게 문제집을 선뜻 내주었다.)
어린 시절 나는 소여물을 위해 건초 썰기, 흑염소 풀 먹여 키우기, 그물 정리하기, 소똥 치우기, 소여물 주기, 개밥 챙겨주기, 패각 끼우기 등의 일을 했었다. 그 외에는 친구들과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숨바꼭질, 비석 치기, 땅따먹기, 말뚝박기 등의 놀이를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해가 지도록 돌아오지 않는 부모님을 대신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청소를 하고 밥을 하고, 가장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시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것도 내 몫이었다. 늘 생업 때문에 바쁘신 부모님은 내게 공부하라는 얘기를 하신 적이 없다. 책을 읽으라는 얘기도 하신 적이 없다. 책이 없었으니 당연한 얘기였겠다.
그렇다고 내가 60대의 사람이냐? 그건 아니다. 난 마흔이 조금 넘은 사람이다. 서태지가 헬기를 타고 전국을 왔다 갔다 할 때에는 나는 서태지를 잘 몰랐다. 다행히 HOT는 알았다. 왜냐하면 그나마 도시로 나와 공부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다. 몇 해 전 '응답하라 시리즈'의 드라마가 떴을 때가 있었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사람들이 추억놀이를 하며 그때를 그리워했다. 그 당시의 물건을 어떻게 구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때의 골목이며 정서를 아주 잘 표현했다고 칭찬의 목소리도 자자했다. 하지만 난 공감하지 못하는 1인이었다. 다만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공감이 되는 한 부분이라도 찾아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처절하게 보일만큼 내 기억의 기억을 더듬었다.
어린 시절 내가 시골에서 태어났고, 하필 내 부모님이 교육에는 1도 관심이 없는 분들임을 한탄하고자 하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나의 성장의 시간이 늦춰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내가 도서관을 좋아하는 이유도, 내가 끊임없이 책을 읽는 이유도, 내가 배움에 대해 늘 갈망하는 이유도, 내 배경지식이 넓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유도, 나는 나의 성장이 아직 많이 부족해서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성장이 계속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이들에게 책 읽기와 글쓰기를 늘 얘기한다. 그리고 늘 꿈을 크게 꾸라고 얘기한다. 한계치를 만들지 말라고 얘기한다. 책을 통해 여러 명의 스승을 만들 수 있고, 여러 명의 친구도 만들 수 있다. 때로는 새로운 부모가 생기기도 한다.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이건 사실이다.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또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정말이다. 어쩌면 내 부모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못 나온 불운으로, 아는 것이 없어 평생을 좁은 세상에 갇혀 사시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핸드폰 문자 사용 방법을 모르시는 분들이다. 그들에게는 답답할 게 없다. 우물 안에서 사는 개구리는 그 세상이 편하고 만족스럽다. 만약 부모님이 학교는 못 나왔다 할지라도 책을 조금이라도 읽으셨더라면 다른 세상이 있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이 궁금했을 것이고 그 세상을 벗어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 몇 해 되지 않았다. 책을 읽어라, 책을 읽어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금 한참 공부하고 자라는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야 내가 책을 읽어보니 책은 참 많은 것들을 깨우치게 한다. 배움의 즐거움이 있다. 한 시각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지 않게 해 준다. 공부의 처음과 끝은 역시 독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학창 시절 안중근 의사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말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깨우치고 있다.
글쓰기를 권하는 이유도 있다. 읽는 것은 지식을 채우지만 글을 쓰는 것은 지식을 완성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써봐야 자신을 알 수 있고,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또한 사람에게서 얻지 못하는 위로를 얻기도 한다. 나는 독서는 꽃을 보기 위해 씨앗을 심고 키우는 것이고, 글쓰기는 꽃을 따는 것과 같다고 생각을 한다. 다 핀 꽃을 따면서 그 꽃의 향기를 맡고,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듯이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의 향기도 맡을 수 있고, 나란 사람의 아름다움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와 내 아이들이 글쓰기를 즐기기를 바란다.
사실 독서와 글쓰기에 관해서 얘기하라고 하면 참 많은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다. 늘 얘기해도 지겹지 않다. 나는 학업 공부만 중요하다고 살아왔었다. 20대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모범 학생이었다. 대학 때도 장학 때도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 생활을 했다. 교과 과정만 잘 따라 하면 내가 성장하고, 꽤 괜찮은 사람이 될 것이고, 꽤 유식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집중을 했었고, 열심히 배우려고 했었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나서 알았다. 교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그게 나를 성장시켜준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을. 학교 성적은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성장은 평생을 통해 이뤄진다고 생각을 한다. 내가 빌린 내 몸이 그 수명을 다할 때까지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배움을 통해 성장은 이뤄지는 것이다. 모든 배움은 공부이다. 못하던 요리를 배우는 것도 공부이고 성장이며, 모르던 영역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도 또 다른 나로 발전시키는 것이며, 공부인 것이다.
내 아이들은 거실에서 자신들의 공부를 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그들의 시간 계획표를 짠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때때로 강의도 듣는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학원을 다니면 나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사이버 대학에서 공부도 하고 있다.
한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자라듯, 내 아이들이 점점 자라듯, 나도 나를 자라게 하고 있다. 아이들과 나는 30년이 넘는 나이차가 있지만 배우기 시작한 시간차는 크지 않다. 배움이라는 것, 성장하는 것 그것은 나이차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언제 시작하고, 또 얼마나 열심히 그 시간을 보냈느냐의 시간차인 것 같다. 영원한 배움, 그리고 성장을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