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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an 14. 2023

워킹맘이 되어보니 보이는 것들.

  워킹맘... 전업 주부였을 때였을 때는 워킹맘, 그리고 휴직 중인 엄마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스스로 돈을 버는 여자들이 부러웠던 것이다. 나보다 학벌이 좋고, 나쁘고, 결혼 전 나보다 좋은 직장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일하는 엄마들이 부러웠다. 독립적으로 보였고, 꽤 능력 있어 보였고, 멋있어 보였다. 드라마에서 보는 뾰족구두를 신고 있지 않고, H 라인의 스커트를 입고 있지 않아도 말이다. 그 시절 난, "워킹맘"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원하던 워킹맘이 되었다. 계획대로라면 둘째 아이가 초등 4학년쯤 시작하려고 하였으나 그 시기를 당겼다. 일하던 엄마들도 휴직을 한다는 손이 한참 많이 가는 초등 1학년때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토록 나는 한 해, 한 해를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다. 전업맘으로서의 무능력감이 더 심해지기 전에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워킹맘이 되어보니, 전업 주부로서의 삶이 참 따뜻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남편이 만들어주고, 내가 가꾸던 세상 안에서만 살았으니 경제적, 육체적으로 힘든 것을 모르고 편히 지냈던 것이다. 하지만 난 이제, 전업 주부로만 살았을 때에는 보지 못했던 세상의 차가움과 이기적임을 보고 있다. 마음이 지치고 시리도록 아플 때가 있다.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말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이기적인 모습에 놀라다가도, 세상의 중심- 경제 활동을 위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저렇게 이기적이어야 하나?라는 에너지 낭비가 될만한 질문을 내게 한다. 모든 사람들은 이기적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체면을 차리기 위해서라도 이기적인 모습을 조금씩은 감추는 것이 살아가는 기본 방식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누구나 남보다는 내가 더 잘 되고, 내게 행운이 오기를, 내게 좋은 것들이 오기를, 내게 편의를 더 봐주기를 기대하며 산다. 이건 본능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을 대놓고 표현하지는 못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게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한, 보이지 않은 룰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배우지 못했는지 모르겠으나 아주 당당하게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하지?'. 그 사람이 미워 보였다. 그리고 가슴이 시리도록 차가웠고, 기운이 빠졌다. 이게 세상이구나....  맞다, 결혼 전 일을 할 때에도 느꼈었고, 이 부분을 나는 힘들어했었지! 따스함을 느끼고 싶었는데, 세상은 생존을 위한 투쟁의 공간이었구나!


    워킹맘이 되어보니, 돈이 보이기 시작했다. 돈의 가치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돈을 쓰는 것이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돈이 생각보다 쉽게 나가게 됨을 알게 되었다. 내게 들어오는 돈은 참으로 어렵게 내 집 안으로 들어오지만 내 집 밖으로 나가는 돈은 어찌 그렇게 행동이 날렵한지 모르겠다. 더 붙잡고 싶은 돈, 그 자체의 존재감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업주부들이 돈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은 웬만한 전업주부는 다 알 것이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을 쉽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은 아껴 써야 하는 돈으로 여겨져 커피값도 아끼며 산다. 나 스스로 백화점을 이용해 본 적도 없다. 마트에 가면 괜히 안 사도 되는 물건을 사게 되는 경우가 생겨서 마트 장도 가급적이면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만큼 남편이 주는 돈은 아꼈다.

      내가 돈을 벌면 그 돈은 좀 더 쉽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돈을 벌어보니 더 못쓰겠다. 그러면서 돈이라는 것의 가벼움을 느낀다. 올 때는 그렇게 무겁게 느릿느릿 오더니 나갈 때는 번개가 번쩍하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나간다. 혹시 내가 무심코 썼던 생활비는 없었는지, 새어 나가는 돈은 없는지 살피게 된다. 이는 경제적으로 눈을 떠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전에 20대야 경제적 재산이라는 영역보다는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었고, 나 스스로 경제적 인간으로 고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고는 바로 전업 주부가 되었으니 버는 것보다는 아껴 쓰는 삶에 더 초점을 두고 살았기에 돈의 일부분만 보았던 것이다. 들어오는 돈의 무거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워킹맘이 되어보니 보이는 것 세 번째는 시간의 중요성이다. 전업 주부로 살 때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었다. 물론 어느 때에는 참으로 느리게 가는 것 같았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아이들을 케어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꽤 빠르게 흘렀었다. 그런데 이건 역치가 낮은 투정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워킹맘의 하루는 전업맘의 하루의 속도보다 적어도 1.5배로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전업주부들의 시간을 낮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워킹맘의 시간은 그 정도로 여유 없는 빽빽한 일정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후에 일을 시작한다. 오전에는 아이들의 등교 준비, 남편 출근 준비, 그리고 집 청소 및 정리, 주방 설거지 및 정리, 빨래 세탁, 그리고 화장실 청소, 분리수거를 한다. 늘 하는 일인데도 늘 할 일이 생기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잠깐의 커피 타임을 가지면 바로 점심시간이 되고, 아이들이 돌아온다. 나도 일을 준비하고 일을 한다. 일을 하는 틈틈이 아이들의 학습을 봐주고, 저녁 준비를 한다. 그리고 또 일을 한다.

    일이 끝나면 아이들 학습 여부를 체크하고, 아이들이 먹은 저녁 식사거리를 치운다.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정리를 하고, 아이들 잠잘 준비를 도와주면 11시이다. 이게 어디 나만의 생활이겠는가? 워킹맘의 대부분의 삶이 이러지 않을까? 뭐 하나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1시간, 30분이 너무도 중요하다. 시간이 가는 것이 아깝다. 똑같은 24시간을 살지만 각자 다른 시간의 속도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각 그룹마다의 평균은 있을 것이다. 워킹맘의 시간의 속도는 평균 몇 km/h 일까?




     마지막으로 워킹맘이 되니 보이는 것이 있다. 워킹맘이 그리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워킹맘의 고민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워킹맘이 되면 당당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워킹맘은 아이들에게 늘 미안해진다. 적어도 전업주부였을 때 나는, 내 아이들에게 미안한 부분은 없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위해서 내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을 위해 운전기사 역할도 했었고, 아이들을 위한 요리사도 되었었고, 아이들을 위해 집사도 되었었다. 아이들을 위해 개인 과외 선생도 되었고, 아이들을 위해 전담 도우미도 되었었다.

   하지만 워킹맘은 시간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느 선에서 자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세심하게 아이들을 케어할 수가 없다. 공간적, 시간적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늘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갑자기 오는 비도 맞고 와야 하고, 찬바람을 맞으며 홀로 걸으며 수영장도 가야 한다. 혹 놓고 온 물건이 있으면 스스로 묻기도 해야 한다. 배가 고프면 혼자서 간식도 챙겨서 먹어야 하고, 때로는 혼자 밥을 차려 먹어야 하기도 한다. 나는 이 부분이 미안하다. 함께 해주지 못하는 것! 함께 시간을 써주지 못하는 것을 말이다.


     한 때 간절히 워킹맘이 되고 싶었고, 여전히 나는 워킹맘으로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다른 세상의 냄새를 맡고 있고, 다른 세상의 기온을 느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워킹맘이 되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따뜻한 관심, 따뜻한 말 한마디의 고마움을 이제는 느끼고, 안다. 그리고 감사한다. 워킹맘이 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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