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지 된장국과 할머니

by 골드가든


"보글보글보글"

오후 6시 30분.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에서 혼자서 분주하다.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과 밥, 메인 음식 한 개 정도는 신경을 쓰려고 한다. 밥이야 거의 비슷하지만 국은 몇 가지로 돌리고 돌리는 중이다. 메인 음식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나름 주부 13년 차인데도 할 줄 아는 음식은 거기에서 거기이다. 요즘이야 레시피 공유가 너무도 잘 되어있고, 유튜브에서도 잘 설명을 해주니 남자들도 요리를 조금만 배우면 맛있게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마음이 문제이지 레시피를 몰라서 맛을 못 내는 시대는 아닌 것이다.

"우거지 된장국"을 끓이게 되었다.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서 하다 보니, 된장국보다는 김치찌개가 식탁에 더 자주 올라오고 인기가 있지만 찬바람이 불 때면 간혹 잘 끓여 흐물거리는 우거지 된장국이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날이 딱 그런 날이었다. 봄이 온 듯 개나리, 벚꽃은 피고 벌써 떨어지고 초록빛의 예쁜 잎이 나고 있으며 철쭉은 울타리를 만들어 곳곳에 활짝 피어있다. 하지만 꽃샘추위인지 바람이 무척이나 차서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때! 따뜻한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춥고, 두꺼운 옷을 아직은 입어야 하는 그런 날이었다.

삶은 우거지를 사다 얼려 두었던 것이 기억이 나서 된장을 풀고, 국거리용 멸치와 청양 고추를 썰어 넣어 국을 끓였다. 그러고 보니 우거지가 정확히 뭐였지?, 문득 궁금해졌다. 시골 출신이지만 우거지, 시래기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아욱은 무엇이고, 곰취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순엉털이 시골 출신이다. 얼른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았다.

'푸른 무청을 새끼 등으로 엮어 겨우내 말린 것을 시래기라고 하며 배추 같은 푸성귀에서 뜯어낸 겉대를 우거지라고 한다.'라고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는 말한다. 아~ 우거지가 그거였구나! 우거지의 뜻을 알고 나니, 왜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많은 손주들 중에서도 장남의 첫아들인 오빠와, 나를 가장 예뻐해 주신 할머니가 생각이 난 것이다. 뭐든 이렇게 예기치 못한 상태로 나의 사고는 진행이 될 때가 많다.



내가 초등 고학년이 되려는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오빠는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의 경우에는 혼자서 자취를 했다. 하지만 장손 사랑 지극하신 할머니는 오빠의 밥을 해주겠다며 자진하여 광주로 올라오셨다. 쪽머리 올리신 시골 할머니와 오빠는 그렇게 함께 원룸살이를 한 것이다. 물론 오빠의 고등학교 시절에도 할머니는 이렇게 생활하셨다. 절대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이 가슴이 아팠던 것이었다.

가난한 집의 장녀로 살았고, 가난한 집에 시집을 와서 평생을 부자로 살아본 적이 없는 할머니셨다. 시골에서 평생을 살아서, 5일장 구경이 가장 큰 구경이자 아이쇼핑이었다. 물론 나의 친정아버지가 생활비를 보내 주셨겠지만 손주와 살기에 빠듯하게 사셨을 것이다. 하지만 끔찍하게 아꼈던 손자에게 먹이는 음식만큼은 여러 가지로 정성껏 해주려고 늘 노력하셨다.

방학을 맞이한 나는 할머니와 오빠가 있는 광주에 올라왔다. 방학이니 학원을 다니겠다고 대도시에 온 것은 아니었다. 시골 생활보다는 도시 생활을 해보고 싶어서 엄마를 졸라서 올라오게 된 것이었다. 좁디좁은 원룸에서 세 사람이 생활을 한 것이다. 지금의 원룸은 아주 럭셔리하다. 내 기억으로 그때의 오빠와 할머니가 살았던 원룸은 작은 다락이 있었고, 화장실은 공용으로 썼으며, 작은 냉장고 하나와 가스레인지 놓을 수 있는 공간과 한 사람이 요리를 준비할 수 있는 정도의 좁은 부엌이 붙어있는 그런 곳이었던 것 같다. 방도 세 사람이 쓰니 딱 맞는 그런 크기 정도되는 방이었다.

하루 종일 할머니와 이야기도 하고, 다락을 올라가서 놀기도 하고, 주인집 앞마당에 가서 놀기도 하고, 찻길에서 놀다가 오기도 했다. 그래도 심심했다. 여름의 뜨거운 해가 조금씩 서산으로 넘어갈 즈음이면 할머니는 시장을 간다고 옷을 챙겨 입으셨다. 하루종일 놀거리를 찾았던 나에게는 할머니 따라가는 그 시간이 즐거웠다. 파장 분위기인 마을의 작은 시장은 어수선했다. 채소를 쌓아놓고 팔았던 곳은 흙과 이런저런 쓰레기로 지저분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뒷짐을 지고 느릿한 걸음을 걸으며 걷다가, 정신없이 하루의 장사를 마무리 짓는 채소 장사꾼들이 버린 우거지를 주웠다. 어떤 친절한 상인은 노랗게 말라버린 우거지는 버리라고 하며, 그것보다는 초록빛이 도는 우거지를 주곤 했다.

하얗고 깨끗한 블라우스에 꽃무늬 치마를 입고, 하얀 단화를 신은 깔끔하고 단정한 모양새의 할머니는 우거지 앞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미리 준비한 검은색 봉지에 한아름 우거지를 담으셨다. 담다 보면 어느새 두세 봉지 가득 우거지를 얻게 되었다. 할머니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면서 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상인들은 쓰레기라고 버리는 것들을 왜 할머니는 줍는 것인지...

"할머니~. 이것도 가져가요. 어차피 버릴 건데 가져다 드세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더욱더 쥐구멍이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냥 집에 있을 것을 왜 따라왔을까,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할머니, 우리가 거지야? 왜 이런 쓰레기를 가져가?"

"뭐가 이게 쓰레기여? 시래기도 해 먹고, 우거짓국도 끓여 먹는데."

"아~ 나는 이런 거 싫은데."

투덜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내 양손에는 시래기며 우거지가 한 봉지씩 들려 있었다. 내 투덜거림은 언제나 저녁 밥상에 올라오는 구수한 우거지 된장국 앞에서 사그라들었다.



할머니의 우거짓국은 돈 한 푼 들이지 않으면서 근사한 한 끼를 손주들에게 먹일 수 있는 귀한 식재료였다. 나에게는 시들어 보이는 쓸모없는 푸성귀 따위로 보였는데 말이다. 마트에서 삶은 우거지를 살 때에도, 집에서 건강식이라고 우거짓국을 자신 있게 식탁에 올릴 때에도, 내게 우거지는 값비싼 음식 재료였다. 같은 우거지인데, 그때와 다른 맛이 나는 것은 어쩌면 정성과 마음의 크기가 달라서인가 보다. 난 할머니가 해준 우거짓국을 먹을 때 한 번도 흙이나 돌을 씹어본 적이 없다. 억세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연하디 연한 우거지였다.

보글보글 끓는 우거짓국을 아이들에게 먹이면서 할머니 생각에 갑자기 목이 멘다. 비타민 가득히 아니라, 나는 할머니 정성 가득을, 할머니 사랑 가득을 먹고 있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갑자기 "우리가 거지야?" 하며 큰 소리 냈던 그때의 그 울림이 내 머릿속에서 울리며 눈앞이 흐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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