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의 방향에는 이유가 있겠죠. 지금은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어요.
-에필로그
안녕하세요. 사는 김에 뉴질랜드 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못하게 된다면 어쩌지? 이제 겨우 6개월인 나의 딸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어리석은 생각을 병원에서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안정기가 되기 전까지 매일 매일 죽음에 대한 공포와 싸웠었죠. 누군가는 나아진다 하지만,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알기 어렵죠. 어설픈 위로들은 상처가 되어 돌아 오는 날들의 연속이 었어요.
목숨을 건졌을 땐 말이죠.
"지금 당장 살면 뭐해. 내가 말을 못한다는데. 말하기가 어렵다는데. 당장 침이 말라 입안이 쩍쩍 갈라져 물을 수시로 먹지 않으면 목구멍이 쪼여 와서 기침을 멈출 수가 없는데. 도데체 이런 상태로 내가 어떻게 살아. 사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잖아." 암과의 싸움에서 이긴 건지 진건지 애매했죠. 항암 치료를 하고 신체의 부위들이 달라졌달까. 살아도 힘든 시간의 연속이 었어요. 또한 수술하고 항암만 하면 말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영혼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죠.
대학 병원 입원하고 수술하고 치료하고 항암하고 요양 병원 입원하고 또 치료하고 요양하고. 반복이 되었어요. 그 사이 6개월이었던 딸은 2살이 되었고, 계절은 겨울에서 봄-여름-가을 변하고 있었죠. 요양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삶과 죽음을 간접 경험 하며 이렇게 살기는 싫지만 죽기는 더 싫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 했어요. 사람은 적응의 동물 이라고 하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적응이 되죠. 힘든 시간만큼 저는 참고 견디며 나아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라도 살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죠.
종교는 없었지만 간절한 소원이 있어 누구에게라도 기도를 해야만 했던 그 시간이 지나고 안정기를 접어 들 무렵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었어요.
지금껏 살면서 언제로 돌아가고 싶을까. 제일 건강하고 밝고 빛나던 21살 때였어요. 그때는 겁 없이 호주로 유학을 떠났던 때였거든요. 학창 시절에는 토니 안을 위해, 토니 안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서울로 대학을 갔다면, 21살의 저는 새로운 곳의 동경으로 호주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때의 설렘과 긴장, 흥분을 넘어 오감이 살아 있는 그런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어요.
빛이 꺼져가는 나의 모습에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쳐질 때, 과거의 건강하게 빛났던 나의 모습이 강하게 떠올랐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내가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나의 딸과 사랑하는 남편 함께 새로운 곳에서 시작해 보고 싶다."
때마침 오소희 작가의 책도 읽으면서 내가 오소희 작가의 삶처럼 할 순 없어도 비슷하게 한 번쯤 살아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니 병원에 있는 시간이 무료하지 않았어요. 기운이 날 때마다 이곳저곳을 검색했죠. 호주 말고 다른 곳을 가고 싶었거든요.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 이왕이면 영어를 쓰는 나라, 추운 눈이 내리는 겨울이 없는 나라. 따뜻한 나라. 이것이 처음 저의 검색 조건이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저는 뉴질랜드에 왔답니다.